소꿉질

외통인생 2008. 9. 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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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질

5472.020823 소꿉질

괴나리봇짐을 들고 이 골짝에 들어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살아갈 실마리를 얻을 수는 없을까하여 잠시 들러 보려든 생각이 스쳤을 뿐이었는데, 생각은 그에 접히고 나도 모르게 어제가 오늘에 이어있다. 봇짐이 커지고 무게가 더했음을 느낄 뿐이다.

 

작지만 옹골진 양은궤짝과 새파란 민머리의 어린이가 공책에 연필 한 자루 놓고 금방 나간 것 같았던 그 앉은뱅이책상하며 냄비나부랭이와 그 위에 이불 한 채가 얹혀 진 손수레를 바라보며 이제는 이것들이 나를 동반하여 얼마나 키워주려나 생각해본다.

 

어엿한 가장이 되어서 손수레를 밀며 꿈마저 얹고 있다. 수레 꾼 아저씨는 이삿짐이 오붓하단다. 하긴 그렇게 비쳤을 것이, 저네가 꾸려 가는 소꿉 장난감에 비하여 너무나 단출한 우리 소꿉인데도 번쩍거리는 양은 궤짝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비감으로 한숨짓다가 한 순간 희열에 차 가슴 설렌다. 이것이 사선을 뚫은 보람인지 스스로 물으며 아직 생을 마감 안 했으니 아직은 모르노라고 답하며 한숨과 기쁨이 번갈아 밀려온다.

 

산다는 것, 그것은 내게 있어서 숨 쉬는 것 외엔 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때를 생각하면 식솔이 생기고 울타리가 쳐진 지금쯤은 푸근해야 되련만 허전한 마음의 빈자리는 누구의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잠시 뒤돌아본다. 장마철이면 군용 비옷이 하늘을 나는 허수아비가 되어 천장을 가려 빗방울을 모으는 단칸방, 밤이면 쥐들의 사랑놀이 전쟁으로 천둥치는 방, 약 먹은 쥐가 숨어죽어 분해(?分解)의 향을 피워서 우리를 개 코 짓을 하게 만든 방, 더는 머물 수 없는 방을 뒤로하고 떠난다.

 

문간방이긴 하지만 새집단칸방으로 옮기는 즐거움, 괴나리봇짐이 손수레더미로 바뀌기까지 당한 괴로움은 이곳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랬으니 내 평생 몇 번이나 이사를 더 해야 할지 가늠조차 안 되는 길이련만 누군들 관심이나 가지랴! 아무렴 이사는 신나는 것이다.

 

남들은 방(方)을 보고 택일을 하고 하다못해 손 없는 날을 택한다지만 나는 내가 쉬는 날이 길(吉)일이라 여기고 털끝만치도 동요하지 않는, 우직한 실존적 자세를 변함없이 다지고 있으니, 그런 내가 택일 무시로 인한 득과 실을 또한 따져볼 이유가 없어서, 마땅한 행보는 내 마음 가는 대로다.

 

현실과 합리를 우선하는 내 태도에 ‘에이꼬’도 공감하여 우리의 이사는 잘 풀리는 편이다.  첫 번째 둥지를 헌 뒤에 마련한 두 번째 보금자리는 안채의 반대편에 멀리 떨어진 남쪽 샛문 채에 달려있다.  마당 한가운데 예쁘게 만들어진 동산이 가려서 살림집이라기보다 호젓한 정자 같아서 운치가 있다.  만인이 넘보지 못할, 나무 끝에 매단 둥지다.

 

그러나 여기도 우리의 의사와는 아랑곳없이 육 개월 만에 한 울타리 안의 본채에 딸려지은 방 두 개를 들인 초가의 방 한 개를 세 얻어서 세 번째 이사를 하게 된 나는 사정이야 어떻든 앞으로 수 없는 이사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방은 이마 위에 파리 두 마리가 앉은 듯이 휑하게 넓어서 어울리지 않는다. 제비의 까치집 차지다. 우리 보금자리로는 클 뿐 아니라 과분한 세를 내느니 알맞은 크기의 다른 집으로 찾아 나섬이 좋겠다는 ‘에이꼬’의 청대로 몇 달이 지나서 또다시 네 번째 이사를 하게 되지만 어쩐지 앞날이 보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이번 집은 큰 개울을 낀 제방 길에 방 한쪽이 잇대어 있고 이어서 다른 한쪽은 개울로 나가며 제방 길로 들어서는 귀퉁이에 닿아있다. 두 면이 길에 연해있어서 모래밭에 만든 바다새집처럼, 한데 드러내 놓인 보금자리다. 동과 남이 한길에 접한 가각(街角)집이니 오가는 이의 발자국소리로 새벽을 열고 주정꾼의 고함소리로 통금시간을 알리는 집이다.

 

바다새는 눈에 띄지 않게 위장하는 재주라도 있지만 우리는 깡그리 드러내고 ‘내 여기 있소’ 의 ‘쇼윈도’다. 차라리 그게 나은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더 쪼그라들어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확대 발전만이 남아있는 지극히 평안한 나날을 잇고 있으니 말이다.

 

걱정은 돈이 있을 때 생기는 법, 젊음으로 마찰의 현실을 극복하여 초월하려하고 행(幸)의 평점(平點)을 능가하려한다. 도약 전 웅크림이고, 날기 전 날개짓이다.  이사는 간교한 인간의 특권이기 전에 우매한 족속의 차꼬이다. 지고 다니는 생활을 생각해 보지만 맹랑한 현실은 용납하질 않는다.

 

어둠이 깔리면서, 냇물에 비치는 건너편 가로등이 황금 비늘처럼 번쩍이고 아직 가시지 않은 저녁연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시골의 초저녁을 별과 이어서 여름밤의 고향마당 멍석 위에 감도는 모기향과 뒤섞여 아련히 인다.

 

냇물은 흘러가나 합수(合水)뚝은 여기서 멀기만 하다. 합수의 추억은 먼 하늘로 날아간다. 인생은 시공의 순간, 점(點)적 점유인데 왜 이리 복잡한고!?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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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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