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3.020827 오두막
돌부리에 채는 것도 인연이라는 옛 얘기에 맞게 처이모네 이웃으로 이사(移徙)온 첫 연(緣)에 터전이 마련되고 그 언저리를 맴돌기 이년 만에 초막(草幕)보다 엄청 큰 기와 삼 칸 집을 겨우 마련 할 수 있었다. 결혼하고 칠 년 만에 지은 제비집이다. 골목길을 꼬불꼬불 돌아 끝머리에 깊숙이 박힌 막다른 집이라서 비할 데 없이 아늑하다. 굳이 내 기분을 드러내자면, 굽이진 미로는 침입자가 중도에 포기할 만치 충분히 길어서 들어 닥치기 어려우니 조용하고 아늑하기로 치면 모름지기 애기가 어머니의 아기집속에 있을 때 이렇게 편안하지 않았겠나 싶은, 그런 구석진 집이다. 이엉 이은 나직한 돌담이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라 할 나무문을 떠 바치듯 밀어 죄고, 설주에 얹힌 지붕이 머리에 닿을 듯이 낮아서 소꿉장난 집 같은가 하면 맞은편에 버텨선 석류나무는 고난의 상징처럼 마디마디 불거져 이 집 나이를 말하며 나를 맞고 있다. 예쁜 텃새 한 쌍이 석류나무 가지에서 깃을 가려 다듬다가 파드득 날아간다. 새는 때 없이 오가는데, 우리는 칠 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집까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눈앞에 작은 쪽마루를 드린 안방을 가운데 두고 그 오른쪽엔 아궁이를 마당으로 낸 작은방이 달리고 안방 왼쪽에는 솥 걸린 부엌이 달려있어, 나란한 삼간이 대문으로 들어가는 나의 눈을 비껴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아늑한 집이다. 난리가 나도 찾아들 수 없는 깊고 깊은 곳에 자리했다. 석류나무에 가린 뒷간이 내 눈길을 붙잡아 고개를 기울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석류 알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해우(解憂)의 맛을 볼 것이니 그만하면 족하고, 밤이면 밤대로 멋대로 옹이진 가지에 걸린 둥근 달 속 계수나무를 바라보며 취해서 디딘 발을 허공에 띄우는 별난 맛이 있을 상 싶으니, 그때에 그까짓 세상사를 한꺼번에 날릴 테니 이 또한 흠이 아니니라. 석류나무는 내 나무가 되었다. 뒷벽을 트고 처마 밑까지 서너 뼘 늘이고서 기둥과 부엌 벽 사이의 좁은 공간을 고콜 같은 벽장을 만들어 어린놈 장난감 수납장을 만드니 십상으로 좋다. 기둥과 대들보와 서까래를 온통 문질러 검정 색을 베껴내니 나무 색으로 드러났다. 흙벽은 그대로 새 벽지로 하얗게 도배하니 또한 분통같이 깨끗하다. 바늘 꽂을 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던 지난날의 절박한 소망하나가 거뜬히 이루어졌으니 그 생각 새삼 밀려오며 내 마음 한구석을 저민다. 저울로 달 수 없는 평안의 무게, 자로 잴 수 없는 극치의 희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동그란 무지개 속 아늑함이니 나에게는 내 전부를 들어내어도 표현할 수 없는, 우주의 크기에 버금가는 내 둥지인 것이다. 초록색 둥근 갓을 쓴 외등이 접시 같은 무대(舞臺)마당을 비추어 밝히고 방안에 드리운 파란색 꼬마 등이 네모자비 모기장 속의 꼬마 녀석 잠재우는 장치되어, 이제부터 길고 긴 인생연극 무대의 보잘것없는 주연이 된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홀로 선 무대다. 석류나무 뒤에 숨은 광에서 천장에 닿도록 가득히 쌓인 연탄을 보고서야 연극은 금방 현실로 다가와서 텅 빈 마당한가운데서 삶의 진수를 맛본다. 무대와 객 사이를 오가는 나의 분주한 영육(靈肉)의 활동 영역은 넓은 듯 좁은데, 문밖에 나가면 무변(無邊)의 황무지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허지만, 그래도 발붙일 곳은 점하나 작은 곳, 이곳뿐인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먼 길로 돈벌이 떠나는 주연(主演)은 축약(縮約)된 일장(一場)의무대에 한 달 후에 오를지 두 달 후에 오를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꼬마는 매달려 바지가랑을 잡고서 석류나무가지 위에 앉아 예쁘게 깃 다듬는 한 쌍의 텃새를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재잘거리며 손짓하고 있다. 함께, 조연 ‘에이꼬’의 귀밑까지 올라가는 입술 사이로 잘 박힌 옥수수 알처럼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다. 만장한 관객의 눈길이 닿지 않는 막후일망정 더 넓은 삶의 무대에서 나의 혼을 갈고 닦으려고 대문을 나선다. 그리하여 또다시 돌아와서 오 촉(燭) 꼬마 등 불빛을 받으며 작은 무대를 현란하게 하련다. 비록 보는 이 하나 없어도!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