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외통인생 2008. 9. 14. 21:58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오두막

5473.020827 오두막

돌부리에 채는 것도 인연이라는 옛 얘기에 맞게 처이모네 이웃으로 이사(移徙)온 첫 연(緣)에 터전이 마련되고 그 언저리를 맴돌기 이년 만에 초막(草幕)보다 엄청 큰 기와 삼 칸 집을 겨우 마련 할 수 있었다. 결혼하고 칠 년 만에 지은 제비집이다.


골목길을 꼬불꼬불 돌아 끝머리에 깊숙이 박힌 막다른 집이라서 비할 데 없이 아늑하다.  굳이 내 기분을 드러내자면, 굽이진 미로는 침입자가 중도에 포기할 만치 충분히 길어서 들어 닥치기 어려우니 조용하고 아늑하기로 치면 모름지기 애기가 어머니의 아기집속에 있을 때 이렇게 편안하지 않았겠나 싶은, 그런 구석진 집이다.


이엉 이은 나직한 돌담이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라 할 나무문을 떠 바치듯 밀어 죄고, 설주에 얹힌 지붕이 머리에 닿을 듯이 낮아서 소꿉장난 집 같은가 하면 맞은편에 버텨선 석류나무는 고난의 상징처럼 마디마디 불거져 이 집 나이를 말하며 나를 맞고 있다.


예쁜 텃새 한 쌍이 석류나무 가지에서 깃을 가려 다듬다가 파드득 날아간다.
새는 때 없이 오가는데, 우리는 칠 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집까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눈앞에 작은 쪽마루를 드린 안방을 가운데 두고 그 오른쪽엔 아궁이를 마당으로 낸 작은방이 달리고 안방 왼쪽에는 솥 걸린 부엌이 달려있어, 나란한 삼간이 대문으로 들어가는 나의 눈을 비껴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아늑한 집이다. 난리가 나도 찾아들 수 없는 깊고 깊은 곳에 자리했다.


석류나무에 가린 뒷간이 내 눈길을 붙잡아 고개를 기울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석류 알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해우(解憂)의 맛을 볼 것이니 그만하면 족하고, 밤이면 밤대로 멋대로 옹이진 가지에 걸린 둥근 달 속 계수나무를 바라보며 취해서 디딘 발을 허공에 띄우는 별난 맛이 있을 상 싶으니, 그때에 그까짓 세상사를 한꺼번에 날릴 테니 이 또한 흠이 아니니라. 석류나무는 내 나무가 되었다.


뒷벽을 트고 처마 밑까지 서너 뼘 늘이고서 기둥과 부엌 벽 사이의 좁은 공간을 고콜 같은 벽장을 만들어 어린놈 장난감 수납장을 만드니 십상으로 좋다.


기둥과 대들보와 서까래를 온통 문질러 검정 색을 베껴내니 나무 색으로 드러났다. 흙벽은 그대로 새 벽지로 하얗게 도배하니 또한 분통같이 깨끗하다. 바늘 꽂을 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던 지난날의 절박한 소망하나가 거뜬히 이루어졌으니 그 생각 새삼 밀려오며 내 마음 한구석을 저민다.


저울로 달 수 없는 평안의 무게, 자로 잴 수 없는 극치의 희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동그란 무지개 속 아늑함이니 나에게는 내 전부를 들어내어도 표현할 수 없는, 우주의 크기에 버금가는 내 둥지인 것이다.


초록색 둥근 갓을 쓴 외등이 접시 같은 무대(舞臺)마당을 비추어 밝히고 방안에 드리운 파란색 꼬마 등이 네모자비 모기장 속의 꼬마 녀석 잠재우는 장치되어, 이제부터 길고 긴 인생연극 무대의 보잘것없는 주연이 된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홀로 선 무대다. 석류나무 뒤에 숨은 광에서 천장에 닿도록 가득히 쌓인 연탄을 보고서야 연극은 금방 현실로 다가와서 텅 빈 마당한가운데서 삶의 진수를 맛본다.


무대와 객 사이를 오가는 나의 분주한 영육(靈肉)의 활동 영역은 넓은 듯 좁은데, 문밖에 나가면 무변(無邊)의 황무지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허지만, 그래도 발붙일 곳은 점하나 작은 곳, 이곳뿐인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먼 길로 돈벌이 떠나는 주연(主演)은 축약(縮約)된 일장(一場)의무대에 한 달 후에 오를지 두 달 후에 오를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꼬마는 매달려 바지가랑을 잡고서 석류나무가지 위에 앉아 예쁘게 깃 다듬는 한 쌍의 텃새를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재잘거리며 손짓하고 있다. 함께, 조연 ‘에이꼬’의 귀밑까지 올라가는 입술 사이로 잘 박힌 옥수수 알처럼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다.


만장한 관객의 눈길이 닿지 않는 막후일망정 더 넓은 삶의 무대에서 나의 혼을 갈고 닦으려고 대문을 나선다. 그리하여 또다시 돌아와서 오 촉(燭) 꼬마 등 불빛을 받으며 작은 무대를 현란하게 하련다. 비록 보는 이 하나 없어도! /외통-

'외통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동차1  (0) 2008.09.15
발가락  (0) 2008.09.15
소꿉질  (0) 2008.09.14
금고  (0) 2008.09.12
외계인  (0) 2008.09.11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