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외통궤적 2008. 9. 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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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1.020926 앞산

나뭇잎이 물결을 이루며 반짝이는 앞산, 발길에 닳아 넓게 닦여진 등산길, 언제나 해를 가려주는 우뚝 선 봉우리, 내 생활 속에 가까이 다가올 앞산에 해가 성큼 올라왔다가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 집 지킴이 앞산의 하루다. 산은 이웃해서 나를 놓아두지 않고 유혹했다. 어둠을 뚫고, 끌리듯이 빨리는 새벽 등산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의 첫 장이다.

나를 포근히 감싸 안고 다가오는 그 이름 ‘앞산’, 할딱이며 금방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와 밥상머리에 앉아 수저를 들어도 될 것 같은 산 이름 ‘앞산’, 이름 그대로 오지랖에 쌓일만한 동산인 것 같은 그 이름 ‘앞산’이다.

그렇지만 결코 작은 산이 아닌 것은, 이 산이 ‘달구벌’의 중심에서 보아 비록 나직이 보일망정 사방에 둘러친 높은 산 중 남쪽에 보이는 그 한 산이었기에 앞산이라 이른다는 것을 산에 오르면서 안다.

하여 뇌어본다. 사방에 어렴풋이 보이는 산을 그나마 제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었든 옛사람들은 남쪽을 바라보게 앉히는 집 덕에 넓은 벌판 건너 저 멀리 앞에 보이는 산밖엔 늘 볼 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리고 특별한 인연이 없어서 그저 앞산이라 불렀을 것이다. 응당 방위 의식은 집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했고 언제나 대청마루에 해 드는 쪽을 남쪽으로 하고 해가 뜨고 지는 쪽은 부수적으로 동과 서의 방위(方位)개념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도 앞산이 마루에서 바라보이는 남향이니까 난 정확히 달구벌의 ‘대구시민’임은 말할 나위 없고, 앞산이 내 집 앞에 있기에 ‘앞산’이라고 부를만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산 이름의 유래가 선명해지며 그 유래에 따른다면 적어도 ‘앞산’이 앞에 보이지 않는 집에 사는 사람은 그때의 생각으론 모두 대구에 살 첫째 조건에서 일탈(逸脫)한 것이다.

무심히 생각해 보면 ‘앞산’이 앞에 보이는 남향집에 사는 사람은 산에 오를 때 산의 이름을 그대로 대어 친구를 불러 모을 수 있고 지표(指標)로 할 수 있을 테지만, 북향이나 동향이나 서향집에 사는 이는 아마도 ‘옆 산’이나 ‘뒷산’이라 해야 집과 산이 그나마 빗대져서 의사 전달이 될 터인데, 이 점이 딱하고 우습다.

참으로 괴이한 것은 어떤 향(向)의 집에 사는 사람이든 대구 사람은 모두 달구벌 남쪽 산을 앞산이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말할 것 없이 대구 사람의 생활 공간의 배치가 남쪽을 향했고 앞산을 기준 하는 생활이 은연중 나타나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 겨레의 삶 방식이기도 하겠지만, 차라리 방위를 정해서 남산이나 서산이나 동(東)산을 이름 지었다면 집이 북을 향했어도, 동을 향했어도 달구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확히 ‘앞산’을 가리킬 것이련만 ‘앞산’은 북향집에서는 북쪽 산을, 동향집에서는 동쪽 산을, 서향집에서는 서쪽에 있는 산을 ‘앞산’이라 부를 텐데, 이점이 나의 의구심이었지만 대구에 사는 누구도 앞산을 헷갈리게 하질 않으니, 태생(胎生)과 이주민(移住民)의 감각적 차이인지도 모른다.

난 정확히 대구시민이 되어 앞산을 앞에 놓고 집을 마련했다. 비록 달구벌의 한가운데서 멀리 보이는 앞산은 아니라도 고개를 치켜서 나무그루를 세며 올려볼 수 있는, 문 앞의 앞산이니 이것이 다를 뿐이다. 앞산을 바라보며 새로운 환경에 닥뜨려 적응하려는 그 사이 틈을 비집고 가라앉았든 옛일들이 샘같이 솟는다.



집 지을 때다.

부엌을 타일로 단장한다는 데, 흙으로 바른 부뚜막을 잊지 못하는 내 철부지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어머니의 흰 흙칠 단장의 손놀림이 뇌리에 잠재되어 있음은 아무도 모르는데 굳이 들추어 가며 이야기해서 무엇 하겠나 싶기도 하고 얘기한들 절실한 내 마음의 언저리에 근접이나 할까, 싶어서 아내와 그 형제들에게도 입도 떼지 않았으나, 이 조그만 진척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함께 의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용수(湧水)다.

하지만 억누르고 또 억누르며 혼자 만족할 수밖엔 도리가 없다. 고향 소식은 전혀 하얗게 묻어두고 꿈길 속의 망향으로만 남아있나 싶을 때, 손끝에 닿는 타일의 촉감이 세월을 뛰어넘어서 내 앞에 또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난다.

유리알 같이 반짝이는 사기타일을 붙인 부엌은 방안 같다.

바닥타일은 갈대 자리와 비교되고 갈 자리 위에서 자란 내 몸에, 그때 밴 촉감이 아직 둔화(鈍化)하지 않았는지, 돌같이 차갑게만 느껴진다. 부엌 바닥만도 못했던 내가 자란 갈 자리 방이 아련히 끈적이며 사라지지 않는다. 갈 자리 생각에 한동안 취해있었다. 갈 자리에서 사기타일로 옮아감은 분명 향상의 징표이지만 왜 난 포근히 잦아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내 심성이라 치더라도 어딘가 숨을 곳 없는 유리 상자에 들어앉은 불화(不和) 감조차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 본원(本源)이기 때문인가 해서 숨을 죽이고 받아들인다.

내 주위의 모든 게 변하고 있지만 나를 묶고 있는 고향의 부모는 한시도 떠나지 않으시고 내 주위를 에워싸고 나를 보호하는구나, 고까지 생각하며 희비의 극점(極點)을 서성이고 있다.

하얀 타일이 발바닥조차 거부할 듯 욕실을 들인 우리 기와집의 툇마루 밑 퇴들 바닥타일이 앞산 위 한낮의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때, 지붕 귀마다 달린 풍경(風磬)이 춤을 추었고, 반듯한 집 한 채의 바람을 이루지 못해 어둡던 마음이 반짝 빛나는 풍경(風磬)의 나래 빛에 밀려 휙 사라졌다.



아침 등산로는 누구나 중턱에 있는 암자를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다. 많은 시민의 건강을 돌보는 ‘앞산’은 대구의 명물이 되어 지금은 이름이 풍기는 동산 같은 ‘앞산’의 오명을 털고 우리 모두에게 위풍 있는 산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다시 작아 보인다. 고만고만한 집 틈에 끼어있는 우리 집도 함께 위압한다. 그래도 ‘앞산’은 그 이름과 달리 큰 것이 좋다.

작은 축에 들며 막다른 골목에 있는 우리 집은 팔고 온 시골의 집과 비슷한데, 이것도 내 능력껏 한 짓이니 뉘에게 동정의 눈길을 동냥할 수는 없다. 이것만으로도 다행인 것은 문패를 내 것만 달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직장동료의 대구집을 업무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동료의 집은 중심가에 있었으나 북향이었고 문패는 네 개씩이나 달려있었다. 판자로 댄 나무 문설주에 달린 문패가 키 재기를 하듯이 나란히 비비고 올라와야만 붙어있을 수 있다는 듯, 밭게 붙어있다.

삶의 각박한 경쟁을 말하듯이 촘촘히 붙어있는 문패들이 내 눈길을 붙들었다. 생각에, 그래도 목련화 나무 한 그루 심고 쉴만한 마당을 내고 그 밑에 꽃밭을 만들고 문설주에 내 이름 새긴 문패, 하나만 자랑스레 다는 여유를 가졌으니 이만하면 나로선 대만족이다.

새벽을 째고 시내에서 온 오토바이 부대가 등산을 마치고 요란하게 볶아칠 즈음 풀 섶에 맺힌 이슬이 햇빛을 굴절시켜 우리 집으로 비칠 것 같은 착각에서, 그 빛을 추적한다.

빛이여! 우리 집 타일을 비추며 복사(輻射)되어 풍경(風磬)을 비추고 바람과 함께 울리면서 식구의 잠을 깨워라! 그리고 행복의 아침을 열게 하라! 내 바쁜 돈벌이 대신 집 지어준 친구여! 이 소리를 듣고 기뻐하라!!/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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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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