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외통궤적 2008. 9. 2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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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8.021122 모닥불

경제이론이나 법에 어두운 내가 회사 창업의 참뜻도 모르면서 일 년 남짓 몸담고 있었으니 지금 각 주주의 권익을 어떻게 싸잡고 아우르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

손해를 입혀서 상처가 될지, 이익의 두둑한 쌈지가 들릴지 모르는, 안개 속에 있으면서도 이 일은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각자의 이해를 어떻게 조정해서 골고루 돌아가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힌다.

비록 ‘합자회사’라고는 하지만 열심히 책과 씨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소스라친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무수히 변화되는 상황과 여건을 슬기롭게 뚫어서 종내(終乃) 웃음을 짓게 하는, 내 힘이 요구되는데, 아직은 상황설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장은 이미 출자자의 의견을 모았고 그에 쫓아서 어떤 형태든 회사를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회사의 자산은 집기와 몇 대의 버스와 무형의 자산인 허가받은 운행노선(運行路線)뿐인데, 태반의 버스는 주인이 따로 하나씩 있고 회사의 노선을 운행하면서 벌어들인 운임(運賃)의 일정액을 회사에 납입하고 나머지는 차주의 몫이 되어 차량 유지와 운행 경비에 충당하는, 외형상은 회사지만 그 실은 회사의 탈을 쓴 차주들의 집합체다. 그중에는 개인의 차를 집어넣지 않은 순수한 출자자도 있다. 이들은 회사소유 차량에 더 신경을 쓰게 되어서 일반 차주와 구분 지어지는 집단이다. 그러니 차주의 입김이 드셀 수밖에 없다. 노(勞)의 입장에서 성토하면서도 때로는 회사의 입장으로 승무 요원과 다투는 이중적 입장이기에, 뿌리인 회사의 경영 주체인 저들이 오히려 다른 입장으로 변신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또한 두렵다.

사분오열되어 주주 상호 이합(離合)과 차주 간의 집산(集散)이 얽혀 밤낮으로 들끓더니, 회사의 열병은 백출하는 의견으로 벌겋게 반점을 드러내고 고열에 시달린다.

통째로 재력가에게 넘겨서 전체의 규모를 키우자, 하거나, 그렇게 되면 우리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우리 차주는 힘 없이 밀려난다거나, 차주의 입장을 보호하는 조건으로 포괄 승계하도록 하자거나, 차주의 입장조차 백 가지로 갈린다.

기사와 승무원은 회사가 통째로 넘어가면 우리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서 공구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오고, 주주는 주주대로 이대로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길길이 뛴다. 자본잠식은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웃돈을 주고 사 들어온 실질적인 출자자는 물러난 허울의 출자자를 법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이중의 고통 속에 헤매며 졸아드는 그들의 자본을 건지거나 불리려고 안간힘을 쏟

는, 보이지 않는 다툼에서 중용(中庸)이란 말뿐인 것을 실감할 뿐이다.

요행히 대구의 모회사에서 일괄 승계하는 매매 형식을 갖추고 인수하겠다 하여 추진하게 되었는데, 몇 번의 절충 끝에 매듭은 지었으나 회사를 털어 낸 지금은 쬐던 오뉴월 모닥불을 등지고 떠나면서 살갗에 이는 바람을 손바닥으로 비비는 허전함을 느낀다.

서서히 달라진다. 주말의 발걸음을 재지 않아도 되고, 한 주일 내내 어딜 가나오나 팽팽히 당기든 보이지 않는 줄을 끊어 버린 홀가분한 기분이 차라리 오뉴월의 열기를 씻어 내리며 상쾌하다. 그러면서 역경의 생에 걸맞게, 짧은 동안에도 다양한 일자리의 수많은 유형의 장애 돌파 체험으로 보이지 않게 사회에 적응하려 하지만 아직도 나는 홀로 외롭게 처진 것 같은 초조감은 떨칠 수가 없다.

무릇 사람이 하는 일치고 영원한 것은 없겠지만, 자기가 만든 일감에 당대를 바쳐 헌신함은 양태(樣態) 여하 불고해 보람이라 하겠다.

한결같은 샘이 초록의 풀밭을 넓히는 보람에 비기고, 난관을 헤친 긍지가 짙어 하늘처럼 푸를 텐데, 사람과 일과 때가 어우러지지 않는 나의 짧은 생은, 더러는 내가 뛰쳐나오고 더러는 일이 날 마다하며, 졸아드는 샘이 틔는 움조차 오므라들게 하고 보람은커녕 패퇴의 장(將)처럼 굴욕마저 맛보는 시련의 연속이다.

관련지어진 모든 사안은 변명 여지가 전혀 없는 내 능력 여하로 인한 결과의 변증이다. 지금 난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뉘라서 후손의 누를 보려고 당장 고통을 달게 이겨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만 나 또한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삶의 본질인 것을 망각하고 일터를 주도적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내 앞에 무수히 스치는 기회를 포착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최 단점일 것이 틀림없지만, 시간의 흐름과 행동의 파장이 순화되지 않는, 날 때부터 불협화음이 내재 된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지금의 삶이 제대로 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왜 내게 주어지는 일터는 숙명적으로 단명인가? 그것은 내가 모르는 가운데 내 능력인 자력(磁力)과 외부 조건 자장(磁場)에 부동(浮動)하여 가는 내 궤도(軌道)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궤(軌)를 찾아낼 때까지는 부합과 이탈이 부단한 연속일 것이다. 그 궤도를 찾아서 좌충우돌 아픔을 겪음으로써 비로써 조금씩 궤도수정도 될 것이고, 비로써 마찰이나 저항 없는 길이 찾아질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내 위치, 내 좌표를 찾아본다.

뜨겁게 달구는 태양도 싸늘하게 얼어오는 내 몸을 녹이지 못했고 그래서 모닥불은 계속 쬐고 싶다.

오뉴월의 모닥불도 쬐다 말면 서운하다던가!?/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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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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