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고 동그란 쇠뭉치 위에 빽빽이 빗긴 하얀 눈금이 신비로이 반짝이며 눈길을 끌어 미혹(迷惑)시키고, 엄청난 보물이라도 감추어놓은 듯 위엄 떨던 그 우체국 금고에 달렸던 잠금 장치가 우리 집 쇠 농에도 붙어 들어 왔다. 어릴 적 한여름의 한 길가, 우편(체)국의 열어 제친 쌍 문을 통해 본 그 어마어마하게 겁주던 숫자 회전반(回轉盤) 잠금장치, 바로 그것이다.
우체국의 철옹성 금고가 둔갑(遁甲)을 몇 번이나 했기에 내 앞에 나타났고, 앞으로 얼마나 요술을 부리다가 내 곁을 떠나갈지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온 재산이 이 겁나는 철제 장롱, 이름 하여 캐비닛 장 속에 틀어 박혀서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들어있는 것이라야 뒤꿈치가 닳아빠져서 알른거리는 짝 진 양말과 고무줄이 늘어나 헐렁이는 속옷나부랭이를 비롯해서 솔기의 털이 달아 반질거리는 외투까지, 여름과 겨울철의 두 철 단벌옷이 고작이고 게다가 숟가락 젓가락 사기그릇 몇 점이 곁들어있다. 굳이 숫자가 박힌 회전반의 체면을 살렸다면 우리 결혼금가락지와 맏이 녀석 돌 반지가 그나마 둔탁한 쇠뭉치 다이얼을 돌리는 손을 망설이지 않게 했음직하다.
한해에도 몇 번씩 이사한 우리 내외의 단출한 살림을 이 쇠 농이 지탱하면서 수월하게 했지만 모양은 볼품없이 안살림을 삭막하게 한 흉물스런 쇠 덩이였다. 이 쇠장이 아니었더라면 때 없이 이사하고, 그리고 짐작조차 못했든 흩어진 식솔을 수습하며 옮길 때마다 부서지는 장롱 때문에 무진 애를 태웠을 것이 뻔하다.
새로 사야하거나 부서진 곳을 고쳐야하는 번거로움도 그렇지만 내 바쁜 발을 묶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그러면서 백 번 잘했구나싶긴 해도 뜨내기살림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남부끄럽던 시절이었다. 이렇듯, 이삿짐 꾸리고 나르는 날의 내 심경을 아무도 짐작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때마다 그래도 바탕이 무쇠이니 이것으로 먼 훗날의 꿈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고 다짐하던 지난 세월이었다.
오늘을 사는 것도 내가 사는 것이요 내일을 사는 것도 내가 사는 것이거늘 거기에 걸 맞는 살림을 누가 탓하랴싶다. 떠 들어온 고리장이나 얼레빗 참빗장이 내외가 외딴집 문간방에 차린 살림보다는 한결 낫다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니 마음은 한결 부드럽고 포근해진다.
고기비늘처럼 촘촘히 눌어붙어서 더덕이 진 초록색 겉칠이 나무재질과는 비할 바 없이 차갑게 와 닿건만 던져버릴 수 없다. 이제 안방 주인이 되어버린 쇠 장롱의 크기조차 어느 때는 방안 가득히 차서 괴물처럼 버텨 섰다가도 다른 집으로 이사 가서 보면 이번에는 방 한쪽 귀퉁이를 한없이 초라하게, 외로이 지키고 있는, 너무나 눈에 익은 푸른 장롱이 우리 내외 눈가늠이 되어서 방의 크기가 좁았다 넓었다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쇠 장롱만 작아졌다 커졌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토록 캐비닛 속의 인간이 되어버렸다.
아내와 함께 밤새도록 밑그림을 그리며 방과 마루와 부엌을 배치하고 그 크기와 문짝의 위치와 모양을 그려내서 지었던 내 집을 팔고 내일이면 떠나야하는 이 밤에, 보따리마다 눈물 고이고 구석마다 한숨이 배는 마지막 밤을 홀로 새며 한없이 넓어 보이는 공간에 한 점의 작은 손궤로 보이는 쇠 장롱의 기구한 운명과 교감하며 애꿎은 담배만 태워댄다.
조이는 폐부(肺腑)의 압박을 못 이기고 뿜어져 나온 뿌연 연기는 입안에도 들어가지 못한 생 때기 파란 연기의 띠에 둘려서 천장 위를 치고 싸늘한 철제장의 모서리를 가리더니 밑으로 내려오며 다이얼을 맴돈다. 연기는 내 속을 씻고 내 얼을 홀려서 까만 쇠뭉치 다이얼을 맴돌다가 희미하게 사라진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내 실체는 아닌 것이다! 나는 저 연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심사(心思)는 연기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끈적이는 담뱃진에 엉켜서 덩그렇게 서있는 쇠 장롱 언저리에 찐득거린다.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번듯한 나무 장롱을 사고 싶었을 것이다.
헌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사를 할 것인지 얼마나 옮겨 놓을 것인지 알지 못하는 터에 버젓한 나무 장롱인들 무슨 소용에 닿겠는가 싶었을 것이고, 바로 그때에 그 시꺼먼 다이얼 잠금 장치가 매혹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출장지에서 돌아와 보니 육중한 쇠 장롱이 방안을 차지하고 있기에 끄덕인 고개가 지난날의 내 호기심을 지극히 간명簡明 하게 표현한 결과의 산물이 저 괴물이다. 끌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이 마당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서지지 않을 것이란 확실한 믿음 하나만이 날 위로 할 뿐이다.
잔금조차 어음으로 받고 소유권을 이전해 주는 내 긴박한 입장을 집을 사 들어오는 상대에게 설명할 이유는 더욱 없고, 조건의 승낙을 믿음으로써 이끌어가는 간 큰 내게 감히 부도처리로의 배신은 없을 것이란 믿음은 온전히 무에서 시작한 내 생의 굳은 밑바탕 디딤돌의 힘이다. 그래서 지금 빈방에 홀로 누운 내 머리엔 추호도 염려의 빛이 스밀 틈이 없고 오로지 보잘것없는 빈 철 궤와 빈 장독 그리고 단출한 살림살이를 싣고 가야할 길만이 눈에 선한데, 예측하기 어려운 내 앞길도 새로 난 고속도로만큼 뚫렸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이다.
이제까지 나를 있게 한 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나는 내 진로에 의문을 갖지 않았던 것처럼 내일도 그렇게 담담히 살아갈 것이다. 괴괴怪怪 히 흐르는 달빛이 마루문을 열고 내 고민에 동참하는 한 밤, 철궤의 다이얼은 내 눈을 점점 끌어들이며 눈금의 선을 굵게 희게 들어내더니 드디어 쇠 장롱을 작게 쪼그라뜨리며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내 영혼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