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간단하다.
‘시골에서 편히 사시지, 힘겨운 서울살이를 왜 시작하려 듭니까?’
처형의 말씀에 거침없는 내 대답은 ‘애들을 위해서입니다’ 다.
자나 깨나 한 곬으로 뜻을 모으던 서울에 입성은 했지만 앞으로 남매의 장래를 생각하면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우선은 내가 서울에 닿으니, 소식은 전해야 하겠기에 인사차 들른 나를 배웅하는 문간에서 하신 이 물음은 이후 내 갈 지표에 늘 물음표로 남아 있다. 물음은 정확히 내 의중을 짚었고 그 정곡을 찔렀다. 난 그 대답에 대해서 천금의 무게를 느끼며 서원(誓願)하듯 토했으니, 이제부터 변명의 여지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뛸 수밖에 없다.
유전(流轉)적 삶을 살수밖에는, 별 방도가 없는 내가 여기 서울까지 오는 데는 마치 준령의 마루턱의 숨은 풀잎에 맺힌 한 방울 이슬이 천계(天界)를 벗어나 땅속으로 스몄다가 두메의 샘으로 솟아서 거기서 천더기 지게꾼의 지게 다리 적시고, 자질세라 급하게 작은 읍(邑)을 끼는 개울에 흘러들어서 아귀(餓鬼)의 온갖 더러움을 여과시켜 거기서 능멸의 억울함을 때 벗기고, 자적(自適)인 깊이로 대하(大河)에 합류하며 숭어를 품어 거기서 사공의 애간장을 낚고, 대해의 아가미 갈대숲에서 거역의 밀물을 맞아 소용돌이치며 거기서 작은 둥우리 하나 틀어 업(業)은 물이 된 것이니, 내 어찌 여기까지 온 구비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랴!
언제나 같이 서광은 기대에 머물고 암울(暗鬱)만이 눈 앞에 펼쳐지는 서울의 하루다. 바라느니 모처럼 모인 식구가 흩어지는 일 없이 내일을 꿈꾸며 살고 싶을 뿐이다. 정말로 이런 티끌 같은 희망이라도 사라지지 않도록 서울에 온 이유를 당당히 굳혀야 하는데, 마음에 닿지 않는 서울의 집 구조다.
조양(朝陽)이 천연으로 소멸하는, 예로부터 꺼리는 북향집인 데다 부엌이 구들 고래보다 훨씬 낮아야 불길이 빨려들며 역풍에도 내지 않는 아궁이일 텐데, 그렇지 못한 집이다. 푸석 돌산을 깎아 지으면서 깊이 팔 수 없었던지, 은신의 구실만을 염두에 두고 엮었던지, 아무튼 처음부터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 집이다. 서울 입성의 발판으로라도 삼으려고, 마음에는 없는 집이었지만 우선 발붙일 곳으로 삼았다.
마음에 들도록, 어렵사리 새로 지은 대구의 집을 아내의 치료를 위해 팔고 옮긴 이 집, 처음부터 안정감 없는 집이었는데 아직은 탈 없이 지내고, 내 다짐을 이 집을 기틀로 해서 하루하루 지켜가고는 있다.
지극히 불안한 집에서 우리 네 식구는 서울의 공기에 익숙해지며 시골 사람티를 조금씩 벗어나, 나는 그 어려웠던 숨쉬기와 버스 타기도 길들어졌으며 갖은 소음에도 무감각해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서울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그래서 오긴 했어도 걸맞은 뒷받침이 없어서 언제나 외롭고 불안하다. 서울에 온 목적, 그것은 어쩌면 좋은 징조의 빛을 찾는 것, 다름이 아니고 그 좋고 나쁜 일이 일어날 동기가 미리 일어날 빌미가 보이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좋지 않은 느낌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삶의 지혜가 있으련만 유독 나에게만 없으랴. 싶어서 애써 지우련다.
내 하루는 해를 보지 못하는 하루다. 해는 내게서 사라진 지 며칠이나 되었고 이즈음은 어린 시절의 꿈길에서만 본 해를 그린다. 별과 달만이 나와 동행하는 벗이 될 뿐이다. 그 별 속에 우리 식구의 말이 있고 몸짓이 있다. 서울에 올 이유는 그 별들을 따 갖는 게 아니라 다만 별들의 사랑을 내 행복 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오로지 별들과만 노닐므로 해서 나의 행로의 좌표가 되겠기에 별만을 보고 움직일 따름이다. 그것은 나를 서울 온 이유를 합당하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서울 온 이유는 별들만이 바로 알 것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