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도 어려울뿐더러 대중없이 기다려야 하는 택시는 버스보다는 돈도 꽤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에게 조금은 겨운 교통수단이다. 또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먼지 내는 꼴도 그렇고, 번번이 비켜서야 하는 짜증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울려대는 경적은 아예 귓구멍을 막아야 할 형편이니 자동차는 내가 필요할 때는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걸어 다닐 때면 깡그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이는 넋두리다.
모두 내 형편에 따른 생각일 뿐이지만, 감정은 속일 수 없다. 따지기 전에 처지를 바꾸어 보면 되련만, 그게 어려워서 좁쌀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 비좁은 골목을 누비며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니 여기 빈민촌에선 색다르게 보인다. 심한 거부감도 느끼게 하는데, 특히 아침 출근 때에는 좁은 골목을 차지하고서 사람들을 설 자리조차 없는 길가로 몰아가면서 먼지를 씌워 뭇사람들의 눈꼴을 사납게 하는 대목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자. 자가용차를 가질 것이라면 그만한 도로 여건이 마련된 동네로 이사 가든지, 아니면 아예 차를 갖지 말든지, 할 것이지 누구의 비위를 역하게 뒤틀어 보고 싶은 사람처럼 걸맞지 않게 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배경의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도로를 빽빽이 메워 올라가는 사람무리를 비껴달라고 빵빵거리며 올라가는 검은색 차는, 자국이 나는 눈총 알이라면 아마도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벌집이 되었거나 그 열기에 녹아서 형체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유독 그 한 대의 차만이 아침 시간에 도도히 밀어붙이는 데는 아주 질색이지만 그것은 각자의 속마음뿐이고 어디다 호소할 곳은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일 때, 더군다나 그의 지난날을 잘 알고 있으니 더욱 괴롭다.
아는 체하자니 첫 대화야 이럭저럭 오가겠지마는 몇 마디 오가다 그만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아예 모른 체 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아서, 그 차가 올 때면 언제나 눈을 판다. 그것이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마치 내가 그에게 무엇이나 바라고 접근하는가 여길까 보아 지레짐작으로 그 근원을 없애려는 심사도 있다. 혹시라도 내가 대등한 조건을 갖추었더라면 그렇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그렇지 못하여 어중되다.
자동차는 내게는 먼 나라 일이었다. 그 생김새도 시꺼먼 것이었고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기용으로 출근하는 그를 보고 많은 걸 느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과연 난 언제 저런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시뿌연 하늘은 해를 가리고 도로는 광란의 자동차 질주로 먼지만 자욱한데, 내 걸음은 다른 사람 발에 채어 발 놓을 자리를 놓치고 더듬는다. 이것이 나다.
그런데 그는 운이 좋아서 의원회관에 출근한다는 소문이다. 나는 그보다 앞서서 설쳐댔건만, 운이 없어서 그만 탄 이가 달리다가 도중에 말과 함께 넘어졌다. 혼자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 경주가 몽땅 몰수당했으니 작은 끄나풀조차 놓치고 이렇게 운 탄 사람을 부러워하는, 낙마 자비가 되더니 뿔뿔이 다 헤쳐서 저마다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거기에 무슨 한을 담아서 두겠나 싶어서 이렇게 하늘을 올려보고 외면한다.
같은 고을의 의원 출마(馬), 그 이름은 ‘민의원의원.’ 개혁의 세상 바뀜으로 낙마(落馬)하는 말잡이 기다리던 나, 지금 내 눈총을 받는 ‘국회의원’ 말잡이는 말이 아니라 먼지 날리며 좁은 골목 사람 물결 뭉개는 말꾼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야릇하다. 삐뚤어지고 꼬인 내 심사다.
이래서 난 오뚝이가 되지 않으면 저런 차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시 내가 차를 갖는다면 반드시 넓은 차도가 있고 차고가 있는 집을 마련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날 내신 분을 믿어 의심 없이 따른다면 반드시 이룩될 것이다.
아귀다툼의 아침 버스는 생활의 현장이니 이를 외면하고는 저런 검은 승용차는 어림없을 것이란, 착하게도 야들야들한 생각만 하는 풋내기, 서울내기의 넋두리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