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2

외통궤적 2008. 10. 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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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벽이 창으로 가득히 시원스레 넓다. 미닫이 유리 창문에 덧달린 장지문 위에 드리워 매달린 커튼이 무겁게 끌리어 양쪽으로 갈리니 나는 그 허리를 동였다. 잠시 방안을 서성였다. 눈부신 햇살이 방안에 넘쳤다. 아직 가시지 않은 콩댐장판 냄새가 창틈으로 들어온 상큼한 바람을 타고 짙게 풍겼다. 방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진하게 풍기기도 하고 엷게 흩어지다가는 마침내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밤새도록 들이키고 내쉰 숨결에도 전혀 맡지 못했었는데 밀폐된 방안에 들어온 신선한 공기가 내 마비된 후각을 자극했는지, 콩기름냄새가 새삼스럽다. 내 속마음의 창마저 열려지면서 묻히고 잊혔던 색깔조차 선명히 드러났다.


오늘따라 커튼의 양 갈래가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서 다가왔다. 느낌으로, 방안공기와 외부공기의 무게도 달랐고 방안의 온도와 외부온도도 달랐으며 명암(明暗)도 달랐다. 이제까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자각(自覺)이다. 모든 것은 오늘에 비롯된 것이 아니련만 오늘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는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일상의 그 날을 아무런 느낌 없이 살다가 이제 새삼스레 느끼는 그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제에 있었던 장모님의 일이 마음에 와 닿아서 떠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다르게 보이고 느끼면서도 확연하게 구분지울 수 없는, 야릇한 기분으로 범벅되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아내의 절친한 친구가 생활이 어려워서 외제 물건을 취급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의 권유로 깡통들이 토마토주스를 대 먹게 되었고, 그 토마토 주스가 몸에 좋다면서 장모님이 계시는 어느 처형 댁으로도 보냈다. 그 곳에서의 벌어진 일이 있은 후이기에 더 골똘해진다.


간혹 있는 장모님의 구토에서 붉은 물이 섞여 나왔다는 말을 비로써 들은 나는 혹시 마신 토마토 주스가 섞여 나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부터 해봤지만 그렇게 단정하진 못했다. 내가 잘 모르면서 장모님의 병을 가벼이 여기는 소치로 비쳐질까해서다. 내 가벼운 생각과 처신을 들어내지 않으려는 심산(心算)에서 그냥 눌러 참으면서 상념에 빠져들었다. 애써 아물리려는 마음은 오히려 집요하게 헤쳐지며 가라앉질 않는다.




아버지의 구토(嘔吐)를 자주 목격하던 나는 구역질의 막연한 공포였었음인지, 장모님의 예후가 보통을 넘는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고 그러면서 슬며시 두려워졌다. 애써서, 장모님이 뱉어낸 붉은 색은 토마토 주스가 식도에 남아 있다가 그대로 따라 올라온 것일 거라는 나대로의 편한 마음을 가지려 애쓰는 하룻밤을 지냈다.


번갈아 생각나는 것, 고통으로 토해내는 두 분의 자태이지만 한 분은 현실이고 다른 분은 망각된 기억의 되살림에서 엇갈린다. 그것은 아버지의 속병을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더욱 그렇고 장모님의 건강에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됨은 내가 다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새겨진 한의 응어리가 장모님의 건강이상을 계기로 서서히 녹으면서 겹으로 떠오른 것이리라.


부모에 대한 사무친 회한(悔恨)이 내가 모셔야 하는 어른이신 또 다른 부모를 맞으면서 들고 일어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환영(幻影)일 지도 모른다. 우리 어머니는 누가 걱정할까?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서 쪼그리고 앉아 고통을 토해 내실까? 이런 물음을 나는 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커튼은 양쪽으로 나뉘어 열렸지만 한쪽은 짙게 어둡고 다른 쪽은 밝고 화사하게 보이는 까닭을 헤아릴 여유는 없다. 이 또한 내 마음에 친 커튼을 활짝 열어 제치지 못하고 그대로 쳐 놓은 결과일 것이다.  부모님은 생선의 가운데 토막만을 저에게 주셨는데, 이제 어머니를 대신해서 토마토 주스를 장모님께 드렸건만 장모님에게조차 내 어머니께 대한 효성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개 속에 길을 잃고 좌표(座標)마저 찾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내 모양, 열려진 커튼의 양쪽 색이 사뭇 대조되어서 보이는 이 아침이다. 내 마음의 역 반사인지도 모를 일이다.


장모님이 늘 건강하셔서 우리 부모님의 모상(模像)이 되어주길 바라든 내게 오늘은 뚜렷하게 서로 갈리어 따로 보이게 하는 이 아침의 창이다. 창에 걸린 커튼 색이 다르게 보이는 이 아침, 내 마음의 창에 드리운 커튼이 맑고 화사한 색으로 변하여서 보이는 창과 양쪽으로 열려 드리운 커튼이 가볍고 화사하게 변하기를 바라는 이 아침이다. 토마토주스로 연유한 내 마음 한구석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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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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