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외통인생 2008. 10. 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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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5511.030321 기와

 

동틀 무렵은 서민의 숨결조차 몰아치는 생명의 시간, 어둠 속에서 오늘을 여는 희망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쪼개어 새벽을 여는 몸부림에, 바위처럼 무거운 눈꺼풀은 손등에 밀리고, 지친 문짝은 오늘을 더듬는 내 손길에 힘을 얻어 구른다. 질주하는 차 소리가 하늘을 째어 가른다. 달은 출렁이고 별은 꽃잎처럼 날린다. 나는 아직도 줄 넘으며 하늘보고 도래 질 한다.

 

세상은 나를 조롱하나 줄과 아령은 나를 흥분시키고, 줄넘기 동작의 마디를 세어 시작과

마침을 정확히 재고 있다. 호흡을 조절하면서 해야 하는 아령도 정해진 회수만큼만 정확하게 하고 다음 코스로 이행한다. 내 도막난 아침시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용변시간을 저녁으로, 강제하여 체질을 변화시켰을 만큼 절박한 아침이다.

 

순서에 따라 빈틈없이 이어지며 뿜어내는 숨결이 하늘에 닿았는데, 느닷없이 ‘기와 손보세요!’를 외치는 소리가 카랑카랑 들렸다. 나는 얼른 뛰어나갔다.

 

일복차림의 두 사람이 골목어귀에 들어섰다. 그들은 들으랍시고 ‘기와!?’를 외마디 크게 소리치더니 보라는 듯이 내 눈앞에서 손수레를 멈추고서 엉뚱한 곳을 보며 또 소리치는 것이다.  손수레 위에는 기와부스러기와 밧줄과 사다리가 실려 있다. 어제의 일 흔적이 아직 손수레에 남아 있으니 영락없는 기와장이기에, 잠깐 멈추어 섰게 하고 안으로 달려가 아내와 의논했다.

 

도배하고 이사 와서는 부엌도 입식으로 만들면서 아쉽지만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고쳤는데, 여름을 지나보지 않았지만 꼭 손을 보아야 할 것 같은 지붕이다. 올라가 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다가오는 장마철에 비라도 새면 말끔히 도배질 한 벽도 얼룩질 것이고 새로 단장한 화장실에 빗물이 스밀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참에 이분들에게 지붕 손보는 일을 맡겨서 찜찜한 걱정거리를 털 수 있겠다고 여기고 지붕을 훑어보도록 승낙했다. 그리고 이들과 마주하며 흘러버린 시간을 메우려고 동동걸음을 쳤다.

 

신경은 다시 출근으로 모아졌고 조반을 두꺼비 파리 채듯 먹는데, 우당탕 탕 요란한 소리가 나기에 또 나가 보았더니 집둘레에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너부러져 있었다. 막 사다리를 내려오는 두 사람의 입소리가 심각하다. 그들은 깨진 기와를 세어 이어 받으면서 합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갈아 끼울기와를 들어냈다는 것이다.

 

확인할 길은 없었다. 오직 그들의 직업윤리에 맡기는 단순 의식만이 나를 작동시킬 뿐이다. 기와가 많이 낡아서 칠십 여장은 갈아 끼워야 하겠고, 우리도 지금은 식전이니 밥을 먹고 오면서 갈아 낄 기와를 사 올 것이니 계약금과 기와 값을 미리 주었으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계약금과 기와 값을 합쳐 불렀다.  기와 값 오 만원, 지붕 손보는 품삯 계약금 삼 만원 도합 팔 만원을 주어야 오늘 하루 안에 지붕을 말끔히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서슴없이 주었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회사로 떠났다.

 

저녁 무렵에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종일 기다려도 기와일꾼이 나타나지 않아서 이상해서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문득 생각났다. 오늘 하루 안에 일을 마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그 대신 두벌일을 하지 않도록 아침 먹고 오면서 갈아 낄 기와를 사오도록 하겠다는 그들의 말에 함정이 있었음을 몰랐다.

 

그러니까, 그들은 내 조급한 출근길을 잘 이용했다. 하루를 넘기면 이틀 품삯을 주어야한다는 그들의 말에 속아서 아침밥시간을 이용해서 아예 올 때에 기와를 사 오도록 한 것이 걸려든 미끼였다. 그들은 그런 것을 노렸고 나는 그 미끼 낀 낚시에 걸려든 천치였다.

 

어디다가 하소할 데도 없다. 벙어리 가슴앓이는 이런데 두고 하는 말이리라. 속았다. 한순간의 분노를 고비로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습의 방법을 생각했다. 떨어져 깨어진 기와 쪽을 저녁 늦도록 치우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파출소에 신고를 한다면, 신고를 받는 순경들은 오히려 웃음으로 나를 위로, 아니 비웃겠지? 이웃에게 말한다면? 일을 시작함에 앞서서 생각 없이 서두른 나를 한 번 더 올려다보겠지?  그렇다. 소개자도 없고 사무실도 없고 그들의 연락처도 모르면서 기와 값을, 품삯의 일부를 주었다는 그 사실이 바보의 짓이다.  그들은 나를 믿게 하려고 기와작업을 하는척하면서 성한 기왓장을 마구 뽑아서 던져 깨버리는 이중의 악행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돈을 받아갔다.

 

우연이 아니고 계획된 사기행각, 강탈행각이었다. 그냥 돈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집을 부수고, 그리고 집 부순 대가로 돈을 받아갔으니 이런 마른벼락 맞을 짓을 대낮에 하고 다니는 그들의 배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오히려 그것이 더 궁금했다.

 

다 잊고, 일주일 남짓을 기다렸다가 일요일 날 수소문해서 기와 공장을 찾았고 거기에서 지붕전체의 기와를 갈아버리는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기행각이 자주 발생한다면서 공장주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 기와 공장에서는 나를 측은히 여겼던지, 작업방법과 지불방법 기와의 색과 막새와 다른 기와를 정확히 계산하고는 그 값을 알려주면서까지 자세히 안내하고, 여러 가지의 방법을 제시하며 선택하도록 친절히 안내하니 며칠전 기와장이에게 속았던 내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았다.

 

돈도 돈이려니와 천신만고 끝에 붙든 터전 위에 내린 햇순같이 여린 뿌리를 마구 뽑아 던져버린 그들, 조각난 기와 조각을 궤 맞추어서 지붕을 이을 수 없듯이 내 조각난 마음을 붙여 아물릴 수는 영영 없을 것 같아서 더욱 서글펐다.

 

거기에는 털어 버릴 수 없는 내 어릴 때의 감성이 아롱이고 있었다. 아련히 배어있는 우리 집의 그림자가 선명히 드러나고 있기에 더욱 아리고 쓰리다. 이 백 호 남짓한 우리 동네에서 ‘면소’와 ‘주재소’와 기차 정거장과 그 부속건물들과 ‘술회사집’과 학교관사만 기와나 양철 지붕이었다. 그 밖에 토박이 집으로는 암 기와와 수기와 사이에 풀이 한 뼘씩 자란 ‘종곡 집’과 빨간 양철지붕의 ‘돼지네 집’ 말고는 깡그리 초가집이었는데, 기둥과 연목(椽木)을 다듬어서 지은 우리 집 지붕에 흙까지 얹고서 미쳐 기와를 얹지 못한 채 한해 두 해를 넘기면서, 풍채는 기와집인데 지붕에 기와를 이지 못한, 잘 차려입고 갓을 쓰지 못한 그 모양이 어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그 지워지지 않는 그림위에 빨간 기와를 얹는다. 이렇게 착각에 빠지면서 그나마 도둑맞은 마음을 밀어내고 있었다.

 

옛 고향집에, 지금은 타고 없어졌을 고향집에, 부연을 달아 기와를 얹고 차양을 했다면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또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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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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