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랭이

외통인생 2008. 10. 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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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4.0608 바랭이

잠시라도 햇빛을 받지 않으면 시들어 쳐질 것 같이 물렁물렁한 줄기와 잎을 지닌 토마토포기는 언제나 목마르다. 물 끼를 머금은 잎에서는 솜털이 아침이슬을 붙들고 씨름하는데, 토마토 줄기 따라서 오른 바랭이 머리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씨를 맺으려 깨알처럼 하얀 꽃줄기를 뽑아내며 토마토 잎 사이로 태양을 향해 소리친다.

진정 내 생명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존재하나이까. 바람과 햇빛을 온전히 토마토의 줄기에 기대어서만 얻을 수 있는 바랭이의 삶, 기생(寄生)은 온전히 바랭이의 뜻이 아니라 푸름에 목마른 내 작태(作態)의 소산이다. 토마토는 내 뜻이다. 그러나 바랭이는 흙과 더불어 딸려 온 잠재 생명이다. 나는 토마토를 키우지만, 바랭이는 아랑곳없으니 홀로 옆으로 뻗을 수 없는 사과 상자의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제 살길을 찾아서 위로 치켜 뻗으면서 자기 노래에 취하고 있은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속이 들여다보일 듯이 맑게 채운 토마토 알 또한 내 사치스러운 놀이로 빈 사과 상자에서 간신히 자라는 기막힌 일생이지만 토마토는 흙을 밟지 못한 내 발바닥 기운이 눈으로 뻗쳐서, 오늘날 상자 토마토를 보는 대리 만족을 얻는 꾀쟁이의 산물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정성을 알 리 없는 토마토와 바랭이는 그래도 타고난 유전(遺傳)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나를 즐겁게 한다.

내 작은 속이 넓은 하늘을 담을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온통 하늘과 바람과 빛과 구름과 비를 온몸으로 받아 자라는 풀포기를 보는 것으로 채워보겠다는 생각이 올해에 이루어졌다.

어디를 보아도 푸른 잎사귀 하나 없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붉은 벽돌과 회색 시멘트뿐인데, 시멘트 마당의 갈라진 실오리 틈새로 물기가 배어 그나마 생명의 갈증을 눈으로 적셨다. 흙을 밟을 수 없는 시멘트 마당은 단층(單層)의 이점을 깡그리 포장하였으니, 옥상층의 마당과 진배없는 우리 집 마당이다. 흙이라곤 시멘트 바닥에 꺾어진 붉은 벽돌담이 닿아 이어지는 삼면 모서리에 밤낮으로 불어와 쌓인 먼지를 내 게으름으로 훔쳐내지 못하고 버려둔 것이 덕지덕지 앉아 그나마 엷은 흙냄새를 바람결에 맡을 수 있게 한 것뿐이다.

흙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누나가 심은 방학 일기와 과제, 토마토를 바라보면서 함께 커가든 봉숭아의 물기가 토마토의 팽팽한 알맹이 속과 그렇게 닮아서 작은 꼬챙이로 찔러 보고 싶은 충동에 자지러지던 일이 새롭고, 받침나무가 힘겹도록 달려서 빨갛게 익어 쳐진 토마토를 처음 먹었을 때 역겨웠던 그 맛이 생생히 되새겨졌다. 그 토마토포기의 열매를 다 먹을 즈음에서야 그 맛에 길들어서 아쉬움으로 매만지던 일, 난 순식간에 세월을 거슬렸다. 다시 이제 돌아왔을 때 벌써 고개를 흔들며 행동에 들어가 있었다.

옳거니, 빈 사과 상자에 흙을 채우자. 그리고 거기에다 푸름도 가꾸고 흙냄새도 심자. 그렇게 흙과 푸름의 자연을 옮기자. 어디에 가서든 흙을 파 오자. 그래서 쌀을 그릇에 비우고 빈 쌀자루와 부삽을 들고 오름 길을 따라 무작정 올랐다. 정상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평지가 군데군데 있고 새싹이 돋는 이름 모를 풀도 파릇파릇하다.

흙에 삽을 꽂고는 눈을 감았다. 고향마을로 달려 우리 밭의 흙에 코를 묻고 힘껏 들이켜 본다. 이 냄새는 감자구덩이를 팔 때의 그 흙냄새고 논두렁 가래질할 때 나는 흙냄새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지만, 굳이 가를 재주가 없는 천 길의 깊이에서 뿜어내는 내 본향의 냄새다.

몇 삽을 떴는지 모르겠다. 차마 헬 수 없는 우주의 내 본향 흙, 그것은 아무도 갖지 못하고 누구도 제 것이 아니니 오직 그와 더불어 살아 숨 쉬는, 그것들 것이다. 난 엄청난 힘으로 세상을 떠서 옮기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라 진실로 우주의 한끝을 옮기는 거창한 작업을 하는, 그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이 흙으로 생명을 가꾸고, 아니 이 흙 속에 이미 있는 절대자의 손길을 내가 빌러 옮기는 그것으로 생각했을 법하다. 거기에 생명의 씨가 있었던 것을 알 리 없는 당달봉사이거나 청맹과니였던 난 훗날 심지 않은 풀이 자라는 신기한 현상에 기가 죽어있었으니, 그것은 내가 키우는 것은 토마토고 제가 자라는 것은 바랭이풀인 것을 알고서였다.

그래서 한 포기의 잡풀일지라도 뽑아 버릴 수가 없다. 난 농군의 처지에서도 아니고 잇속을 생각한 장삿속도 아닌, 나름의 작은 소망을 여기 상자에서 찾고 있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애들은 나날이 익어 가는 색깔에 황홀하고, 아내는 미구에 맛볼 쟁반 위의 토마토에 군침이 돌 것이지만, 난 버팀나무가 받치고 있는 ‘땅 감나무’의 ‘땅 감’에서 아득히 사라지는 세월의 저쪽에 묻힌 누나의 손길에 매료되고, 몇 번이나 책망을 들으면서도 살려온 잡초 바랭이풀을 열심히 지켜보면서 생명의 힘을 주는 절대자를 보았다. 가끔은 고향의 감자밭에 무성(茂盛)한 바랭이와 싸우시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그리면서 남몰래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신이여! ‘바랭이’도 ‘토마토’와 같습니까? ‘토마토’는 ‘바랭이’와 어떤 사이입니까!?/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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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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