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채비했는지, 한여름의 물놀이 준비를 제대로 해놓은 아내는 나더러 날을 비우란다. 하긴, 자라는 애들의 학교생활에서의 저들 체면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들이 이야기가 나오면 어찌할 바를 몰라서 쩔쩔매며 궁한 모양새를 했던 내 어린 시절을 그대로 대물리지는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던 터라, 마냥 등 붙여 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무릅쓰고 날을 비우기로 작정했다.
자랑거리라곤 아무것도 없었던 나, 늘 기죽고 주춤거리며 때마다 남의 이야기만 들으면서 주눅 들었던, 지난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아내의 권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덕재’는 제 아버지가 가재도구와 집기를 만들었다고 재잘거리며 침 튀길 때, 신작로 길이 나면서 잘려 나갈 우리 집, 터에서 없어질지 모르는 배나무 때문에 속상했던 그때, ‘덕재’의 자랑은 내게 얄미운 할미새 같았다.
해마다, 커다란 배를 우리에게 안기던 배나무의 가지가 몽땅 잘리고 몸통만 남아 옮겨져서 열리지 않는 것에 속상하고
기죽었던 내게 ‘덕재’는 자기 집 울안에서 탐스럽게 익어 가는 감나무를 자랑했고, 가을이 되어 촘촘하게 엉겨 붙은 감을 가지 채 쳐서 선생님 드린다며 벽에 늘어뜨려 걸어놓고는 역겨워 외면하는 내게 재빨리 뒤돌아서 눈길을 가로챘다.
앞집 ‘정환’이는 삼촌한테 탭댄스 배웠다면서 발을 굴러 다가왔다. 학교에서는 형들 자랑, 삼촌 얘기가 기관총 소리처럼 튀었고, 한편에선 어딘가를 다녀온 얘기로 어깨를 으쓱였다.
자수성가 아버지의 작은 귀퉁이나마 보았기에 행여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조심스러워서 집에서는 늘 입을 다물었고, 할머니께서 이르신 ‘때린 사람은 웅크려 자고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의 훈계를 새겨서 학교에서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미운 친구에게 예의마저 갖추느라 주먹을 쥐고 이를 악다물었다.
이런 내 경험에서, 애들에게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고,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하고, 더욱 넓게 보면서 친구들의 이야기 총을 맞받을 수 있게 하고, 참여하고 교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내 짐을 실은 인생의 궤도 차는 무심히도 정거장 없이 달리기만 하다가 지금의 정거장 집에 머물고 있는데, 아내의 채비가 비로써 연료로 되어 폭발 시동 걸리고 있다.
우리가 일상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반복 평이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돌출하여 이변이 된 오늘의 나들이가 애들에게는 굵게 패여 기억될 것이고, 더구나 쉽지 않은 교통편 때문에 고생할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애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당연히, 형님 댁 다섯 식구와 우리 네 식구가 움직이려니 만만치 않은 행차다. 동대문 어귀에서 만나서 ‘청평’ 유원지행 관광버스를 타고 떠났다. 춘천행 버스 길은 도로포장은 되어있으나 마주 오는 차와 꼭 부닥칠 것 같이 좁고 구불구불 구부러지고 오르막 내리막길이어서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땅에서 맥을 이어가는 우리 가문의 모든 이가 이 작은 네 바퀴 버스에 실렸기 때문에 불안은 더욱 컸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내 노파심이요 쓸데없는 걱정일 뿐, 차는 이미 서울을 벗어나서 한 시간을 넘게 달리고 있었다.
버스가 굽이진 고갯길을 올라가면서 몸을 창가로 밀 때마다 산마루가 곱사등이 같이 이어지고,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내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진외가 나들이 때에 버스로 ‘추지령’을 오르면서 본 고향의 어느 마을에 내 마음을 끌어 옮겼다. 그리고 그때 그 건너편 산자락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황철나무 이파리가 눈에 선했다.
길가의 버드나무가 황철나무 잎처럼 뒤집혀 보인다. 애들을 핑계로 어른의 추상(追想) 여행이 되어버린들 어떤가? 상념에 가득 찼으되 모처럼 나들이는 오늘의 일상사를 묻고, 잃어버린 동심을 파헤치면서 외롭고 답답하던 소학교 생활을 새겨내니 내 마음은 한가로워지면서 오히려 풍선처럼 떠서 너울거린다.
분명 내 성정 탓이겠다. 완벽한 것 외에는 내놓지 않는 성미, 애들마저 내 기준의 틀에 맞추어 다듬으려는 짓, 옳은지 그른지 생각하게 한다. 마냥 온전히 애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경험의 배설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생각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임이 아닌가 하여 머뭇거리면서 결국 반전하여, 미흡했던 내 과거의 한 시절을 되씹게 한다.
자기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든지 나타낼 수 있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내게 없는 것은 무엇이나 다 좋은 것이고 부러웠던 철부지 시절이 부끄럽다.
애들을 위한답시고 나선 놀이 길은 내 머릿속에서 점점 빛바래고, 마침내 흐릿하게 지워졌다. 내 마음 모르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더니 고향의 넓은 ‘갱(강)변’으로 내달리며 출렁이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모래 위를 걷는 맨발바닥이 간지러워 즐거웠고, 하얗게 씻겨서 모래땅에 박힌 모나지 않은 돌을 팔 벌려 딛는 징검다리 걸음은 하늘을 날려는 황새 짓이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내의 손이 내 무릎을 치고 있었고, ‘왜 발바닥을 비비고 어깨를 젓느냐’며 정색하여 나를 보고이었다. 나는 짧은 순간 꿈을 꾸고 있었다. ‘좋아서!’ 대답은 간단하지만, 들과 바다와 산이 아우러진 고향의 넓은 들판에 자국 낸 내 수많은 발자국을 주어 보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입만 크게 벌렸다가 다물 뿐이다. 비에 씻기고 바람에 흩날린 자국을 담아낼 말과 짓을 찾을 수가 없다.
꿈의 고향길과 현실의 물놀이 길이 범벅된 채 시공(時空)은 수없이 뒤집히고, 마침내 정오가 되어서야 ‘청평’에 도착했다.
굽이굽이 산자락을 따라 흐른 물은 산 구비를 밀어제치지 못하고 머물면서 짙은 녹음을 빨아들여 검푸르게 물들였다. 물과 함께 머문 조약돌과 모래는 내 고향 개천과 진배없으나 흐름이 더딘 탓인지 조약돌은 때가 끼어서 윤기 없고 모래는 덜 씻기어서 고인 물을 흐렸다. 이름하여 ‘안전유원지’긴 하지만 냇물은 팔 놀릴 너비도 마련할 수 없게 그저 목욕탕과 다름없다.
고향의 한적한 ‘갱(강)변’ 물놀이가 눈앞에 전개되면서 또 시공을 넘었다. 그때 물놀이하던 나는 발가벗었지만, 오늘의 물놀이는 거추장스러운 옷 나부랭이를 걸쳤고, 그때의 물놀이는 우리끼리의 물놀이였는데 오늘의 물놀이는 애들을 핑계 댄 어른들의 물놀이인 것을, 애들은 철저히 통제됐고 일정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물놀이는 애들의 구속 놀이가 되었고 어른 향수(鄕愁)의 봇물을 터뜨린 물길이었을 뿐이다. 그마저, 서로를 보고 한숨짓는 사람 구경이 되었는데, 어른들은 그냥 물속에 몸만 담그고 서 있다가 나오는 것이 고작인, 법석의 물놀이다.
서너 시간쯤 놀았을 것이다. 귀로의 버스는 지친 애들의 잠자리가 되기엔 너무나 옹색했다. 무릎에 누운 애들의 무게가 내 마음도 함께 짓누른다.
과연 얘들이 컸을 때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의 꿈을 꿀 수 있을까? 늘 집에만 갇혀 자라는 애들에게 물놀이는 귀찮은 시달림이고 공포의 낯섦은 아니었을까? 늘 노는 데만 눈 팔았던 열어젖힌 내 어린 시절과 지금 얘들의 정서는 다를 것이란 생각에 미치면서,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무려나, 학교에 가거든 아비같이 입 닫고 있지 말고 무슨 말이든 재잘거려라!
내 그 소리를 들으려면 이런 고생인들 마다하겠니? 너희는 배나무와 감나무가 아무 소용이 없는 오늘의 너희지만 떠들썩하게 아무것이나 붙여서 생각하고 떠들면서 그 감정을 항아리에 담아라! 그렇게 해서 훗날에, 오늘의 너희가 미래를 꿈꾸듯 과거를 회상하여라. 어른들도 곯아떨어진 버스 속 긴 밤길, 새우잠인들 어떠하랴! 나 또한 고향 꿈만 꿀 수 있다면!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