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외통인생 2008. 10. 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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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화로 발굽에 양 발바닥을 맞대고 손 불을 쬐다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비비면서도 발딱 일어나지 못하고 그저 저만치 물러앉아서, 이번에는 팔짱을 끼고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얹어 턱을 괴고 고종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누나는 이야기하다 말고 다가와서는 귀가 무릎 밑으로 내려가면 ‘때가 된 사람’이라면서 유난히 허리가 둥글고 무릎이 올라간 내 자세를 보며 머리를 지그시 눌러서 귀를 오금 아래로 밀어 넣는데, 신기하게도 내 귀는 오금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누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얼굴빛이었지만 그대로 정색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불현듯 생각나는 것은, 그러면 나는 벌써 늙은이의 체형이 되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머지않아 늙는다는 것인지 궁금해지면서 슬며시 걱정되었지만 되묻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고 말았다.



이 일이 늘 마음에 새겨지더니만 이제는 그 거슬리는 말이 살아, 내 체형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과제로 남겨주면서 어려운 고민을 하게 했다. 누나의 말뜻은 수명이 짧다거나 고생이 많다는 뜻도 있겠다. 그래서 무슨 수라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으면서도 또렷이 이것이라고 붙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신체적 조건 때문에 늘 남다른 고민을 하면서도 이것은 나만의 특수성이라는 생각으로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결함을 고치려고 남모르게 몸을 벼르는 습성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삼면거울에 비친 날 보게 되었는데, 내 어깨가 굽어 있었다. 옆으로 보니 머리는 가슴 앞에 나와 있고 어깨는 구부정하게 치올라가 앞으로 굽어 있었다. 잠시 등을 펴고 가슴을 내밀어 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자리로 되돌려지는, 그렇게 굳어진 체형이 되어버렸음을 보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당황했다. 문득 이거 이렇게 되면서 점점 오금 밑으로 귀가 내려가는 체형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했다. 필시 좋지 않은 징조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행동해야겠고 그 방법을 곰곰이 따져봤다.

운동에 특별한 소질이 없는 내가 동대문운동장을 찾은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의외다. 당연히 입장할 리는 없다. 여태까지 보지 못한 많은 운동기구를 차례로 만져보며 점포를 돌았고 그럼으로써 솟구치는 욕구의 갈증을 축일 수 있었다.

급해졌다. 가슴을 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가 하면 상체를 단련시키는 것이 어떤 기구인지를 알아보면서 그것들을 차례로 맡았다. 아령, 줄넘기, 장력 기, 완력기,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이면서 사 모았다.

갑자기 우리 집 좁은 마당이 운동장으로 보였고 아침저녁으로 기구를 손에 들고는 내 의지를 시험이라도 할 것처럼 덤벼들었다.

몇 달 후 줄넘기의 줄이 끊어지고 완력기의 용수철이 닳아서 떨어져 나갔다. 즉시 또 사들였고 그때마다 체형의 변화를 조금씩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내 독단으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결과를 살피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따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아마도 일찍 집을 떠나서 혼자 치이다 보니 누구하고 의논할 상대가 마땅치 않아서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이것 또한 성정의 탓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난 기괴한 사람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니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대로 계속한다면 늘 걱정하든 우리 식구의 앞날이 밝아지리라는 믿음도 굳어지리라! 이만한 보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싶어서 날아갈 그것같이 기쁘다. 사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나를 옥죄면서 초조와 긴장에서 한시도 늦출 수 없는 나날이던 것, 그 구렁에서 빛을 받는 느낌이다.

누구하고도 약속한 바는 없었지만, 어렵사리 정한 내 다짐이고 혼자 한 그 다짐이 오히려 나를 한시도 느슨하게 하지 못하는 또 다른 구속이 되어있음을 느끼고, 이 구속은 우리 식구를 위하고 나를 위한 것이기에 소홀하게 할 수 없다는 다짐으로 스스로 또 얽히고설키는, 내 버릇이 도졌으니 어쩌면 홀로 이 험난한 세파를 헤치는 적은 꾀로 여겨서, 달게 받아 열심히 실천할 따름이라는 각오가 새롭다.

이때까지 나를 위해서 내 손으로 운동기구를 장만한 적은 없다. 이번이 처음이니 그 감회가 더 커진다. 앞으로의 내 삶에서 등과 어깨는 내 건강의 지표로 삼을 것이고 이제까지 내가 내 체질을 조절한 것처럼 내 어깨와 등도 바로잡을 것이다.

배변주기(排便週期) 조절, 걸음을 걸을 때의 발디딤 자세 교정, 외짝 눈뜨기, 양 장지 손가락 끝을 맞대어서 떼지 않고 맞닿은 두 검지와 검지 사이로 빼내는 짓, 내가 마음먹고 하고자 하는 것은 이룩했기에 이번에도 반드시 어깨와 등을 펴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한다.

이런 것들 모두가 나를 있게 한 섭리 자의 존재를 의심치 않음으로써 이룩된다고 여기며 더욱 자신하고 밀고 나간다.

아들과 딸들도 이렇게 세상을 홀로 서서 사는 방법을 일깨워야 할 텐데, 도무지 나 이외의 누구에게도 그 힘이 미치지 못하니 그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 날듯이 가벼운 몸의 움직임이 착지(着地)의 발가락 소리를 죽여 줄과 어우러지며 하늘이 열리고, 하늘 높이 치킨 두 주먹의 아령을 보고 별들이 눈웃음치면서 숨어버린다.

이렇게 새벽은 열리고 내 마음도 열린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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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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