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통쾌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면서 한편 모멸감조차 느끼게 한다. 일생에 두 번 다시 당해서는 안 될 이런 일이기에 생각해 내서 곱씹는다. 이유는 말할 나위 없이 내가 당했고 전혀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았던 일이 내 눈앞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곰곰이 이어서 더 생각하면 우리 내외처럼 속(俗)되지만 조금은 살기 편하고 안정되게 살아보려는 몸부림쯤은 누구나 있는 평범한 사람살이인데도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의 탕평(?) 구조가 작은 쾌감조차 주고 있다.
워낙 정체(停滯)의 두려움과 시련을 겪었기로,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오직 밝은 빛이 있는 곳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어둡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래서 명분도 체면도 다 버리고 그 빛을 쫓아서 때로는 자세를 낮추어 기고 어떨 때는 잡는 이를 뿌리치는 매서운 독을 품어냈고, 더러는 오기를 부려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때에 따라서는 죽은 시늉도 마다하지 않았다. 더욱이 어떨 때는 우격다짐으로 내 일이니까, 내 것이니까, 우리의 일이니까, 하면서 밀어붙여서 발돋움하기에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생각해 본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기막힌 현장을 보고 말을 잃었다. 우리는 분명 대문을 잠그고 나갔다. 외출했다 돌아온 우리는 그대로 잠겨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집안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죄다 밖으로 나와 있었고 짓밟혀 있었다. 어느 방엘 가보아도 마찬가지다. 장롱이라야 옷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가져간 것이야 없겠지만 야릇한 흥분에 싸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 마치 우리 집에서 무언가 값비싼 물건이라도 잔뜩 잃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휩싸여서 섬뜩해지고 흩어진 것들이 하나하나 도둑들의 손길을 거친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이 모두가 그들의 덫으로 보이고 어딘가에 그 어떤 함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의문과 괴기(怪奇)한 무서움에 싸였다.
한참 인기 있는 ‘여로’도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처지였고 그 시간에는 TV가 있는 가게로 가는 형편이었으니 따져보자면 우리는 도둑들이 보는 수준을 밑돌았음이 확연하다. 아직 이 집을 장만하느라 마련된 목돈을 갚기 위해 몸부림치며 남의 비싼 이자 돈을 쓰고 있어서,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듯 우리 집도 전화는 당연히 없고 사치품인 TV도 없고 이름도 생소한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나 세탁기는 어림도 할 수 없는 터였다.
우선은 발을 돋우기 위해서 발판 위에 무거운 짐을 실을 수가 없었고 단지 반듯한 방 세 개로 큰 기쁨을 얻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에 아무런 부담 없이 식구대로 외출할 수 있는 처지였다.
‘집은 그럴듯하지만, 속 빈 강정임’을 문 앞에 써 붙이고 나갈 수도 없지 않은가? 아니, 무슨 효험이라도 있을성싶었으면 그렇게라도 했겠지.
도둑들아! 헛수고와 시간 낭비에서 교훈을 얻어라! 내 미안함은 저치고 그대들의 사업(?) 교본에 첨가할 한 대목이 생겼으니 그만하면 소득도 큰 소득이라고 외치고 오히려 위로해 주고 싶다. 우리로선 당치않은 충격적 사건이었음을 알리고 싶다. 암, 다 알고 있겠지! 설마 우리 집 같은데 도(盜)선생이 눈독을 둘일 줄이야 미처 생각 못 했으니 이 또한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내 생활 지침에 하나 덧붙여서 치부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거동을 지켜본 염탐꾼이 우리의 외출을 보았고, 그들은 우리의 보따리와 차림새를 보아 멀리 가는 것 같은, 적어도 한나절쯤은 비우리라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틈을 내는 데는 어김없이 들어맞았어도 소득에는 차질을 준, 그들의 오판이었다. 우리의 방임도 잘못은 있되, 그것이 오직 도(盜)선생에게 미안한 잘 못뿐이니 이런 해괴한 일이 또 있겠는가?
딴에는 새로 이사 온 집을 골라서 때를 노렸을 것이고 어느 집이나 있을 만한 물건이야 있을 것으로 알았겠지만, 그렇게 그런 수준에 못 미친 사람이 무엄하게도 이런 데로, 이런 붉은 벽돌집으로 이사 왔느냐는 욕조차 하지 않았겠느냐 생각하면 입가가 째어진다. 그래봤자 삼십 평 땅인데 그 동네 수준에 맞을 것이란 계산 아래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을 것이고 대담하게 담을 넘던지, 지붕을 탔든지 했을 것이다. 갓 이사 왔으니까, 이웃도 잘 모를 것이고 들키면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가 슬며시 빠져나오면 된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열심히 이 방 저 방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지만, 나오는 것은 넝마 같은 옷가지뿐이고, 다급해진 도선생은 하다못해 육중한 물건이라도 홧김에 끌고 가려고 해도 눈에 뜨이는 것이 없으니, 손길은 더 분주히 움직이면서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아주까리기름 먹고 통시 앉아있는 소리를 냈을 것이다. 샅샅이 뒤져보아도 눈에 들 만한 것을 못 찾았을 도선생이 마지막으로 담을 넘으면서 했을 법한 소리가 자꾸만 생각난다.
‘더러운 집구석, 이런 주제에 집은 뭐 하러 둘러쓰고 있나?’ 아니면 ‘우리가 재수 옴 오른 날이라 생각하자! 징후가 좋지 않으니, 오늘은 이만 손을 씻자! 안 잡히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자!’ 머 이렇게 내뱉었던가 했을 것이다.
궁금한 것이 하나둘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도선생과 한번 만나서 그때의 심경을 물어보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는 우리 집의 가난 광고였는데, 우리 귀엔 안 들어와도 모름지기 그들 세계에선 박장대소하는 얘깃거리가 됐거나 저들의 정보와 냄새 맡기 기술을 한탄하며 쓴웃음을 지었을 것을 생각하니 퍽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생각마저 들고, 도둑맞은 사람의 심경이 이렇듯 야릇하기는 아마도 드문 일일 것 같아서 또 그들과 한번 만났으면 싶어진다.
우리가 도둑에게조차 외면당한 생각을 하면 조금은 섭섭하고 못내 아쉽다. 값진 것을 도둑맞고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는 못해도 아낙들의 재잘거리는 뒷소리는 듣고 싶었는데 헛소리할 수도 없는 가난의 단면이 서글프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