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고마운

외통인생 2008. 9. 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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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2.030118 아내,고마운

애들을 위해서 서울에 왔노라고 처형께 한 내 대답이 메아리 저서 나의 귓전에 맴돌고 있다. 핑계에 머물고 마른 ‘자식 사랑’이 되어버린 그 참사의 흠을 메워보려고 안간힘을 쏟는 내게 이즈음 아내의 거동(擧動)은 많은 용기를 주고 있다. 그렇게 잘도 외어대던 자식 사랑이 고작 하나는 저승에 보내고 하나는 불수의(不隨意) 상태로 애처로운 나날을 이어가게 하는, 도치(倒置)된 결과를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나 싶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그 후의 나날은 우리 부부에게 형극(荊棘)의 길이었다. 이런 죄 많은 우리 부부에게 조그만 틈새로 빛이 보일 조짐이 있어서 무척 상서롭다.

신은 우리에게 참회와 개전(改悛)의 기회를 주셨으니, 나머지 삶에서 이미 잃어버린 딸의 넋을 위로하고 이지러진 아들의 삶을 추슬러야 하는 일을 일깨워 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찼던 내 일탈의 길을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주심으로써 무엇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지를 암시해 주셨다. 곧 살아있는 아들에게 성심을 다해서 온전한 한 인간으로 손색이 없도록 보살펴서 키우라는, 그리하여 두 번 다시 오만(傲慢)과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라는 신의 말씀이 잔잔하게 변화하는 아내의 행동에 담겨 들려오고 있다.

아내는 조금씩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기회를 아내의 정서 생활에 도움 되도록 도왔다. 아내는 일직이 내가 가진 신앙의 틀에서 많이 벌어져 떨어져 나간 종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제까지 사람 만나기를 꺼려서 두문불출하던 생활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 것이 나에게 희망을 안겨준 그것인데, 꺼림칙하기 그지없지만, 차차로 바로잡을 요량으로 모르는 척, 오히려 아내를 도왔다.

아내는 속죄(贖罪)의 방편으로 나 몰래 관심을 기울인 것이었는데 그만 특정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이를 집에 들이는 데까지 이르렀고 그 빈도는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현세에서 낙원을 이루고 현세대가 가기 전에 특정한 날을 정하여 그날에 최후의 심판이 오고, 그때 죽은 이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아내로서는 더없이 큰 희망을 품게 하는 달콤한 해석에, 그만 ‘수희’와의 만남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수희’는 내가 보내지 않았다. ‘수희’는 그 날밤 내 곁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보지 못하고 있다. 그 ‘수희’가 나 몰래 어디론가 떠나가 있다가 성큼 자라서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 애를 만나려면 내가 이렇게 믿음의 길을 택함으로써 이룩될 것’이라고 아내는 믿고 있다.

아내의 몽유병 같은 정신적 방황에서 딸과의 재회는 이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현실 속에서 꿈에 그리는 ‘수희’를 만날 것이라는 확신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두 자식과 아내마저 잃을 것 같았던 극한에서, 아내의 정신적 회귀는 나를 적이 흥분시켰고 새롭게 힘을 주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맑은 정신만 회복된다면 그다음에 참 신앙의 길을 찾아 줄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는데, 여기 털끝만치도 내 양심과 신앙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고 믿는 내 믿음에 흔들림이 없다.

나는 아내의 우울증을 믿음으로 밝혀볼 생각으로 이미 우리 집에 드나들던 사람, 곧 나와 종파가 다른 사람의 아내 접촉을 방임했고, 성경 공부 때 방문하는 그 사람과 간간이 믿음에 관한 이견으로 논쟁을 벌였고 그때부터 그들은 내가 뿜어내는 관심의 표명이 흥미로운 연구 거리로 되었던지, 방문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마침내 아내의 공부 나들이에 나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고 난 아내와 함께 종종 종교모임에 참석했다. 내가 그들의 관심 대상이 되면서부터 아내는 힘을 얻어 생동하기 시작했다. 봉사의 이름으로 나들이하게 되었고, 나날이 먼 산만 바라보던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나로선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아내의 신앙 깊이가 더해서 나의 신앙과 돌이킬 수 없도록 빗나갈까 염려가 되기는 해도 문밖에 나가면 세상의 잡다한 일들을 보고 생각하고 끌어들이면서 버리든지, 얻던지, 지우든지, 새기든지, 마음을 쓰고, 몸으로는 비비고, 뭉개고, 그치고, 구부리고, 펴는 운동으로 대사를 촉진하니, 이 어찌 바람직하지 않겠나 싶어서 흐뭇하다.

엄마의 마음이 밝고 활기찬데 아들인들 어찌 후유증이 아물지 않겠는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늘의 이 시간에 별다른 의미를 둔다. 미래의 희망과 설계는 오늘의 이 시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오늘의 이 시간에서 실마리를 물어 이어가는 것이고, 흘러간 과거 또한 오늘의 이 시간에서 생각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는 언제나 있고 영원히 있기 때문인데 이제가 없다면 미래의 시간도 없고 과거의 역사 또한 없을 것이기에 오늘의 이 이야기는 곧 과거와 미래 본디이다.

나는 이것을 잊고 발버둥 쳤다. 지금 자각하며 이제를 정점으로 생각하기로 하니 아내의 오늘이 기쁘고 즐겁기만 하다. 비록 장차(將次) 내게 무거운 짐이 지워진다 해도 지금은 날아갈 그것같이 가볍다. 미래의 짐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벼워질 게 확실하다.

아내는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봉사활동에 쪼개면서 서서히 악몽에서 헤어났고 더불어 세상일에 몰두하는 친구들과 만나면서 폭넓게 사고(思考)하기 시작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줄곧 아들과 함께 등교하였고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들을 지켜보다가 수업을 마치고서야 함께 집에 오는, 이런 정성이 쌓여서 아들의 뇌신경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철커덕 소리의 쇠붙이를 붙인 보행 보조 가죽신을 벗기고 걸음을 걸렸을 때 우리는 눈조차 의심했다. 분명 절어야 할 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어느 쪽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변해 있었다. 우리는 얼싸안고 울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은 눈만 멀뚱멀뚱 두리번거리다가 번쩍거리는 신발을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신겨 달라면서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 부부는 아들의 천사 같은 마음에 감동하여 또 한 번 오열했다.

‘재영’이는 ‘신을 도로 신을 테니 엄마야 울지 말라’고 매달렸다. 우리 식구 모두는 서로를 위로하느라 또 얼싸안았다. 기쁨과 회한의 노래가 춤으로 바뀌면서 눈물을 버무렸다. 아들의 천진(天眞)성이 어른의 이중(二重)성 막을 뚫고 비치면서 서로의 눈물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이어가는 산동네의 군상들 틈에 끼어서, 날마다 힘겹게 살아가는 달동네의 아우성에 힘을 얻어, 몸을 부지하여 하루를 잇는 오두막 삼간집을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되찾아 들어오는 나를 돌이켜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한 생명이 소리 없이 사라진 그 현장에 해를 두고 머무는 미련한 우리 내외의 절통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립문 밖 길가의 잡초가 푸르게 무성하다. 지난겨울에는 다시는 땅 위에 돋아날 것 같지 않던 이 풀들은 어떤 연유로 다시 돋는단 말인가? ‘수희’는 어쩌면 풀 돋듯이 다시 돋아날지도 모른다. 한시인들 보고 싶지 않은 이 집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는 내 말 못 할 심경을 저 땅 위에 돋는 새파란 풀이 대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면서 ‘수희’의 얼굴을 되살린다. ‘수희’는 반듯이 부활하리라!!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 나란히 밤길을 걷는 우리 내외의 그림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짙고 또렷하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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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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