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숙부는 묫자리 이야기를 벌써 전에 아내와 나누신 듯, 별말 없이 내 인사를 받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담담하게 내게 시선을 옮기고 떠날 채비를 서두르시는데, 영문을 모르는 내가 되묻는 말에 묵묵부답으로 일어섰다.
아내와 언약 된 장소가 틀림없는 그 묘지는 우리가 ‘청평’에 자주 드나드는 길목에 있는 어느 공원묘지고, 그리로 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다는 결론을 본 뒤끝인 것 같다. 이유는 아마도 묘소에 자주 들릴 수 있는 이점을 생각했을 것 같다.
승용차로도 두어 시간 가야 하는 거리이니 서두르자는 말씀에 처숙부는 아무 토를 달지 않았다. 단지 묘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급박함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런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바삐 몰아치는 내 생활 안에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든 장모님의 묫자리 이야기는 내게서 어느새 슬며시 비켜 새어버렸다가 비로소 오늘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묘소에 관해서 어떤 곳이 좋고 어떤 곳이 나쁜지를 전혀 알 수 없는 내가 묫자리 보기에 따라나선다는 것이 어쩐지 어울리지는 않았으나, 나는 단순히 처숙부를 모시는 처지일 뿐이라고 스스로 한정 짓고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경이나 처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아내가 입버릇처럼 들려주든 장모님 평소의 말씀을 빌리면 죽음의 공포를 헤아릴 만하다. 아내가 전하는 장모님의 말씀인즉 답답해서 어떻게 땅속에 들어가 있으며 산속에 무서워서 어떻게 혼자 있느냐는 둥, 살아있는 사람과 같은 처지에서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처숙부와 아내는 은연중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을 물색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아직 생각해 보지 않은 죽음의 의미를 애써서 예측해 보는 것이다.
죽음은 그토록 두려운 것인가? 마음으로 준비된 죽음과 돌연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차를 운전하면서 상념(想念)에 빠진다.
오래전에 형으로부터 전해 들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어림할 수조차 없었던 산소(山所)를 또다시 곱씹어 보는 것이다.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산소, 전화(戰禍)에 휩쓸린 마을, 그 소용돌이에서 홀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을 어머니의 한 맺힌 삶, 이후 돌아가셨을 할머니의 산소, 내 가슴을 저미는 낱낱의 일들이다. 모두가 내 상상으로 이리되고 저리 받드는 마음으로 모시는 제사의 의례로선 풀리지 않는 사무치는 한이다.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와 누나도 모셔졌으리라는 막연한 바람(希望)은 땅을 꺼뜨리는 한숨을 뿜어도 시원치 않고 하늘을 보고 주먹을 쥐어도 풀리지 않는 한을 어쩔 수 없어서 내 몸 동이고, 그만 주저앉아 외어보는 외마디 소리요 무아지경에서 손 놀리는 만지작거림이다.
어찌하랴! 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받은 그 길을 나 모르게 조용하게 걸을 수밖에.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남의 무덤을 찾았건만 내 육친의 무덤은 누가 찾아 주는지! 가슴은 점점 메어온다. 아무려나, 내 눈으로 할머니의 무덤을 확인하고 아버지의 무덤 앞에 무릎 꿇는 그날까지 살아, 눈 부릅뜨고 찾아 나서리라!
비록 한 발짝도 진전이 없는 고향길이지만, 언젠가는 내가 가는 이 길로 그 끝을 찾아서 가리라!
비록 오늘은 여기에서 멈추지만.
장모님의 묘소에서나마 부모님과 할머니의 그림자를 더듬으리라!/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