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외통인생 2008. 10. 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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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이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터전이 돼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때가 있는 것 같다. 쉼터가 오히려 마음에 짐을 지울 때도 있다고 푸념하게 되는 때는, 집 손질을 해야 하는 바로 그 때에 떠오르는 회의(懷疑)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의 크기와 모양을 한정할 수는 없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이 제각기 제가 살려는 집을 마련할 텐데 그 목적이 우리 사람들하고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 새끼를 보살필만한 은신처면 그것으로 되고, 거기에 터전을 삼아 보금자리를 틀고 살진대 유독 사람만이 생육의 조건을 넘어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늘리고 붙여 짓고 산다. 그리고 거기에다 매달려 세월을 앗기고 마음을 쓰면서 몸 고생을 하는데, 이는 모름지기 사람의 끝없는 탐욕이 스스로를 옭아매어 고생하지 않나 생각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누구나 마다하지 않고 쾌히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또한 신기하다. 어쨌거나 나도 그 부류에 속해서 날뛰고 있으니 볼만한 내 모습에 웃음도 머금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이냐는 의문조차 품을 여유 없이 휩쓸려서 살고 있는 터에 오늘은 그 쌓였던 일감이 터지는 날이 되었다.

 

양철 차양의 삭아 빠진 구멍으로 새는 빗물이 내 피부라도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속상할 이유는 없는데도 서두르는 나의 바탕이 도를 넘기에 더욱 고민거리다. 나라고 해서 좋고 나쁜 것을 외면하고 살아야 하는 특종일수는 없고, 응당 남들과 같이 군소리 없이 제 손으로 고치든지 아니면 남의 손을 빌려서 고치고 삯을 내든지, 하면 될 것인데 이렇게 뇌까리는 것은 또 무엇이며 차라리 모른 체 하고 흘러버리면 될 법도 한데 그것도 못하는 주제에 이런 생각을 늘어놓는 것 또한 웃음거리다.

 

하지만 나는 생각해본다. 구멍이 나서 하늘이 보인다고 내 몸 속에 비가 스밀 것도 아니고 그 구멍으로 흐른 빗물이 넘쳐서 방안으로 들이칠 걱정도 없으련만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보며 이리 재고 저리 괴는 내 몰골이 이런 바탕에서 솟는 속상한 짓인 것을 안다.

 

집을 지을 때 아예 서까래를 더 길게 내든지 아니면 차양을 하지 말 것이지, 속옷을 입고 바지저고리도 입고 도포도 입고 그 위에 또 탕건과 관도 갖추고 부채도 들고 거기에 장죽도 들었으니 남이야 뭐라든 활보만 하면 되는데 손에 든 부채가 낡아서 바람이 새는 걱정과 갓 속에 비가 스밀 것 같다는 걱정과 장죽에 댓진이 엉겨 연기가 제대로 안 빨릴 걱정을 하는 꼴이니 이게 될성부른 짓인지 되묻는다. 허나 엄연히 달려있는 차양의 구멍은 나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한낮의 툇마루에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떨어진 햇빛, 그 동그라미 속에는 나뭇결에 흐르는 듯 빗긴 나이테가 눈길을 잡는데도 그 특별한 구석의 동그라미를 지워도 되겠는가? 삐뚤어진 차양을 굳이 바로잡아서 어쩌자는 것인가?

 

고쳐서, 아주 만족스럽게 고친들 이렇다. 심정적으로, 비록 창과 출입문이 제대로 달린 실물크기의 집이 커다란 동그라미 깡통이나 커다란 유리 상자 속에 들어있어서 그 곳이 아무리 반들거리고 반 듯 하드래도 그 속에 들어가 살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절박한 압박감은 없을 성싶은데 왜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고 안달하는지 되묻는다.

 

극단적 사고일 수는 있으나 출발은 그렇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그 성취를 순간적으로 만끽한다 치더라도 그것은 하고 싶은 욕구의 충족이다. 회의로 가득 차있는 내게는 그것조차 기대하기 어렵고, 그래서 그 중간의 조화, 즉 고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내 육신의 움직임이 고작 나를 위로하는 이 일의 중심이 되곤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집 손질도 작은 한 부분일 뿐, 여전히 어딘가 못마땅하고 덧칠한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리다가 만 그림 같기도 하다. 도포(道袍) 입고 고무신 신은 것 같고 은장도(銀粧刀) 대신 라이터를 찬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니까 집은 작건 크건 내 육신의 거쳐요 내 식솔의 보금자리 이상으로 기능 지우려면 내 몸집이 커야하는데 그렇질 못하다.

 

지나가는 길손을 묵어가게 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줄 수 있는 여유와 시설을 갖추고, 풍유를 즐기는 전국의 유랑아들이 거쳐 가며 한나라의 운명을 논하는 정객이 묵을 공간이 필요하다면 혹 모를까 그렇지 못할 바엔 그저 토담집 봉창에 달 밝은 밤에 나무그림자 비치고, 한겨울 눈 내리는 날 눈송이 나뭇가지 제치는 소리 들으면서 지낼 수 있는 집이면 되련만, 그도 농경사회의 한 때로 추억될 뿐이다.

 

모든 것은 시류에 걸 맞는 삶이라야 지금을 산다고 하겠기에 생각을 접고, 이도 저도 못마땅한데 닭장 같은 복합 주택으로 가서 눈이라도 지그시 감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나 확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자리를 찾는다.

 

낡고 허물어짐은 짓느라고 파괴된 자연본연회기의 과정인데 손질은 이를 거역하고 저항하는 인간만의 불손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만은 마음이 편해질 수 없는 이치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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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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