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느껴 보질 못했고, 더군다나 더듬어 보려 해도 내가 아는 바를 토대로 끌어내야 비롯될 것이기에 그 밑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그런 내가 곡절 끝에 아파트 하얀 방에서 잠을 청하니 온갖 생각이 밀려와서 일렁이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빈틈이 있어서 거기에 마음을 쑤셔 집어넣었다가 언젠가 한가할 때 꺼내서 다시 생각할 겨를을 만들 수도 없고, 조금은 구부러져서 비슷한 나무나 산허리를 그리면서 빗대어 내 마음을 집 밖의 풍광에 어울려 보는, 흐름도 막힌다. 몸은 방 안에 있되 몸과 마음이 함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서 편안해질 수 있어야 하련만 이 방은 그렇지 못하다.
문밖의 인기척이 숨 쉬는 대지의 소리와 더불어 포근하고, 새소리는 바람결에 창호지 스미며 나뭇잎 그림자는 얼굴 간지를 때 눈 감기는 집, 온갖 소리가 수평으로 들리다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집, 집이란 으레 그런 것인데 여기, 나는 도무지 안정되질 않는다.
창밖은 허공인데, 그나마 시선을 가로막는 건너편 고층아파트가 나를 한층 하늘로 밀어 올리고 있다. 사람들 목소리는 아스라이 저 밑에서 들린다. 마치 어렸을 적에 뒷산에 올라 내려다본 우리 동네에서 들리던 닭 우는 소리의 거리감으로, 나는 한껏 떠올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허공에 매달린 잠자리(寢)다.
방안의 4 모서리의 구석마다 이룬 3각(角)의 모음이 한 푼의 오차 없이 반듯해서 영락없는 쇠 상자 같다. 거기다가 모서리를 이루는 띠 돌림이 또한 기하학적 정리(定理)를 구현(具現)한 듯 굴곡 없이 직선인데, 저것이 혹 어디에서 구부러지지나 않을지 몸서리조차 인다. 보이는 모든 게 점과 선과 직각으로만 이룩된 입체 공간 속에서, 어쩌면 내 몸의 모든 부분이 직선과 직각으로 다듬어질 것 같은 섬뜩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사람은 직선을 갖지 못했다. 또 그 연장인 평면은 어림도 없다. 어느 부위든지 부드럽고 유연하게 이루어진 우리의 아름다운 육체인데, 집도 여기에 걸맞게 지을 수는 없는 것일까? 빗대어, 누에고치 모양으로 부드러운 유선형의 집은 안 될까. 그렇게만 된다면 난 그런 곳을 택하고 싶다. 그 실, 뾰족한 구석 공간은 쓸모없다. 그런 구석은 아마도 이 집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집 지은 사람 말고는 누구의 발자국도 닿지 않을 것이고 오직 사람의 마음을 송곳 끝이나 칼날같이 예리한 성품을 만드는 데 부추길 따름이다. 인간의 한계임을 드러내고 섭리와 어긋나는 한 표본이다. 이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평안을 이룩되지 않을 것 같다.
옷이 몸에 맞듯이 집도 우리가 출생의 뜻에 맞게 흙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높은 곳을 향해서 마음을 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이것마저 내 뜻과 상관없이 흘러간다.
마치 유리 상자 안 같기도 한 아파트 팔 층의 우리 ‘집’은 이렇게 내 정서에 안 맞을뿐더러 정확히 말해서 우리 집이 아니라 우리 방이라고 해야 할, 어느 여관방에 머문 기분이다. 지붕이 있어서 해 그림을 방안에 들이고 마당이 있어서 나무그루와 풀포기를 볼 수 있고 뒤란이 있어서 봉숭아 분꽃을 심고 외양간이 달려서 두엄 향이 짙고 새를 인 흙 돌담 이뤄진 밖의 웃음소리가 넘어오면 밖에서 길손이 알밤을 줍는, 이것들이 땅 위에서 일어나고 땅과 맞붙어 있는 그런 집이래야 우리네 집인데 아직은 우리 집이란 말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색한 연유는 어릴 적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어쩌다가 친구의 집을 들렀는데 그 집 마루의 유리 창문의 미끄러져 구르는 도르래 소리가 철로를 달리는 기차의 쇠뭉치 소리와 닮아서 문지방을 넘을 때 건널목을 지나는 것 같았고, 방안에 들어서니 미끄러운 장판이 유리판 위에 얹힌 파리처럼 내 몰골을 드러내어 손발 둘 자리를 못 찾던 일이 있었다. 그런 느낌이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꿋꿋이 드러나는 것은 내 태생이 대대로 이어온 시골의 농가에서 땅 기운을 받아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 위에 매어진 다락이거나 원두막에서 잠시 눈 붙이는 여름 한나절의 정취로 여기긴 이 한 밤이 너무 길고, 집이라고 여겨서 이 방에서 지내자니 살날이 기약(期約) 없어 아득하다. 이제 나는 옛 생활을 접고 커가는 애들이 그들의 느낌에, 그들의 정서에 걸맞게 내 마음을 고쳐볼 다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자니 송두리째 내 어린 시절을 도려내야 할 텐데 어느 세월에 될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내 집을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입원실 호실, 갓난아이 발에 채운 번호, 주민등록번호, 학생 번호, 군번, 죽음을 앞둔 병실 번호, 영안실 번호, 화장장 방 번호로 채워진 우리의 일생은 번호표의 굴레로 채운다. 거기다가 아파트 동 번호, 호실 번호, 차랑 번호, 도로 번호, 통장번호, 대기 번호, 이렇게 수의 범람 속에 사는 우리는 특색 없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처럼 되어서, 숫자를 깡그리 외지 않고는 한 시도 살아갈 수 없는데, 내 감정의 실마리 저 끝은 언제나 산허리, 구릉, 대밭, 밤나무, 배나무, 뽕나무, 돌담, 싸리 울, 기와집, 초가집, 양철집, 집 가호 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특색을 지닌 집의 그림을 담고 있어서 아직도 쉽사리 구분하고 분간되어 떠오른다. 어느 집을 막론하고 같은 집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사람의 얼굴이, 체격이, 성품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자연스럽다.
우리는 이런 자연스러움을 잊어버리고 산다. 난 그래서 초겨울 어두운 퇴근길에 이 집을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산 밑이라거나 어느 골짝인 것이 아니라 온전히 번호로 일관된 집 아닌 방을 찾자니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한, 밤중의 내 ‘방’ 찾기다.
닭의 움직임을 적게 하여 많은 알을 얻으려고 만든 층층이 닭장이 이제 사람에게 미쳤으니, 역으로 닭 모양으로 사람이 욕을 보게 된 꼴이다. 욕은 돌아가신 분에게도 미칠 것 같다.
이런대서 제사를 지낼 때, 산 사람도 찾기 어려운데 돌아가신 옛 어른들은 어떻게 방을 찾아 들어오실지 자못 흥미롭기 짝이 없다. 절은 땅에 엎드려서 해야 하는데 여기는 땅에서 한참이나 올라온 공중이니 조상들은 땅 위에서 서성거리고 자손들은 위에서 내리 보는 형국일 테니 마땅한 도리가 또한 아닐 것 같은데, 모두 거리낌 없이 지낸다니 앞으로 우리 조상님들도 한동안은 어지러울 것이다.
조상님들이여! 저희가 내려갈 수 없으니, 흙냄새를 담아 이곳까지 올라오셔서 방 번호를 잘 기억하시어 드시고, 잡수시옵소서.
저희는 조상님을 모실 자리가 여기밖에 없습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