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먼발치에서 아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꺼질뻔한 불씨였던 아들이 꺼지지 않고 반짝여 오늘에 이른 대견함에 뿌듯할 때가 더 많다.
늘 어미의 마음을 사로잡아 구렁으로 끌어가던 아들, 우리 가족의 아픈 참사가 이젠 먼 옛날 이야깃거리로 될 만한데도 난 여전히 그때를 잊지 못하고 헤맨다. 제 어미도 벗어나지 못하리라. 그때 상처는 보이지 않는 아들의 그림자로 되어서, 때로는 크게 그려지고 때로는 사라질 듯이 작아지기도 한다.
우리가 강남으로 이사 올 때 아들의 그림자는 거의 없어진 듯이 보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이사 올 수 있었다. 아들의 의견은 깡그리 무시된, 우리 집 이사하기에서 아들은 한마디 거들지도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 눈에 아들의 상처 그림자는 이즈음 더 크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럴 것이다. 신개발지인 잠실벌에서 미아리까지의 교통편은 알아보기조차 힘들 정도다. 드문드문 버스 편이 있으나 그것도 아들이 학교까지 가는 데는 세 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었으니, 차편도 차편이려니와 시간은 또 얼마나 걸렸겠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들의 의견을 들어 반영할 틈이 없도록 짜여있는 계획에 나는 입을 뗄 수가 없다. 학교 근처에 방이라도 얻어줄 준비라도 되어있거나 아니면 그럴 마음이라도 있어야 이 물음도 가능한데, 하루도 보지 않고는 마음 놓을 수 없는 상태의 아들에게 그런 배려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아예 염두(念頭)도 두지 않고 있으니, 이리도 저리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니 아들의 상처 그림자는 또, 내보기에 자꾸만 커진다.
한 번쯤은 물어볼 만도 한데 난 그런 아비의 정을 펴지 못하고 그 어려운 통학의 길을 마음으로만 무사하길 빌 뿐이었다. 사람의 됨됨이는 반드시 그 사람이 얼마나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성장했느냐에 있지는 않은데, 아들을 그런 길로 두는 건 우리 내외의 일방적 횡포다. 그것은 아들의 장래를 부모의 그늘에 두고자 하는 마음, 과거에 대한 보상 심리가 은연중 발동했을 것임을 숨길 수 없다. 그것은 아들의 마음을 흔들림 없는 심지(心地)로 굳혀지게 했을 것이고, 그래서 오가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아들은 힘을 얻도록, 가능한 한 어렵게 길러서 심신이 연마되도록 한다는 미명(美名)으로 집 늘리기로 했을 법하다. 아들의 수학(修學) 조건과 장래에 있을 교육비의 두 가지를 함께 해결하는 능력 부족의 한 단면인 것을, 여러 가지 합리적 호도(糊塗)로 자위(自慰)하려는 내 유약(柔弱)한 모습일 수도 있다.
아들은 온전한 품격으로, 정부투자 기관의 한 요원이 되어 주었다.
아들아, 고맙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