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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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5.030921 출퇴근 등교하는 새까만 남녀학생과 말쑥이 차려입고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뒤섞인 정류장 언저리는 보도가 꽉 막혔다. 빽빽하게 들어서서 서성이는 사람을 줄이라도 세우려는 듯이 인도의 연석을 끼고 가지런히 서 있는 가로수가 몽당비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 다듬어져서, 앙상한 가지만 위로하고 있다. 이른 아침의 버스정류장은 거대한 인간 공장의 부품 적치(積置)장처럼 낱낱은 또렷하나 안정감 없이 흐트러져서 무질서하다. 도로표지판과 전봇대와 교회의 안내 간판과 학교 안내간판 동사무소 안내간판 파출소 안내 간판마저 길가까지 밀려 나와서 버스 오는 쪽 길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이것들은 타고 갈 버스의 번호와 목적지를 분간 못 하게 가로막아 저마다 무언의 항변으로 날카롭게 흥분한다. 버스를 놓치고서 팔을 젓다가 남모를 한마디를 내뱉으면서 뒤를 돌아보노라면, 가게에서 내놓은 즐비한 가구 나부랭이들이 그렇지 않아도 북적대는 버스 정류소의 언저리를 더 비좁게 했대서 짜증을 더한다. 앞이 조금 더 트였던들 멀리서 오는 버스의 번호나 가는 곳 표지를 보며 기다릴 테고, 미리 탈 준비를 할 수 있을 터여서 숨통이 조금은 트일 것 같다. 한껏 비탈진 찻길을 오르면서 뿜어내는 버스 뒤꽁무니를 쫓아 행여 못 탈세라, 걸치는 사람 사이를 뚫고 달려가면 어느새 또 시꺼먼 연기를 뿜으면서 달아난다. 얼굴을 숙이며 코를 막고 돌아서는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니다. 차를 놓친 그들은 내남없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발을 동동거리며 고개를 뺀다. 반사적 동작이다. 그러나 같은 번호의 다음 버스는 또 언제 올지 모른다. 모든 번호의 버스들이 한곳에 정차하니 때로는 다른 버스에 설 자리를 내주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턱없이 못 미쳐 서거나 아니면 저만치 앞질러 가서 서버린다. 그러니 달음질해도 소용이 없다. 못 미쳐서 설지 앞질러 가서 설지를 짐작하는 것은 반반의 확률이다. 그래도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일터엔 가야 하는데, 시간은 내가 버스를 놓쳤다고 멈추어 서 있질 않다. 번개처럼 머리 굴리기를 해야 한다. 아무 버스나 타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일터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 다른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숫제 시간을 재보고 내가 탈 버스의 종점으로 거꾸로 가든지, 그도 적절치 못하면 택시를 타야 한다.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 하듯 어려우니 바랄 수 없어서, 다음날부터 숫제 시간을 더 당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하여 오밤중에 일어나야 하고 다시금 차 타기 전쟁을 치러야 비로써 회사에 닿는, 기막힌 삶이다. 한시도 마음을 늦출 수 없는 서울 사리가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날이 다르게 더 심해만 간다. 인간 부품의 양산인가?! 어떻게 해서 버스를 탔어도 고통은 여전하다. 지름 서면서 손님을 태우고, 버스는 지그재그 운전을 한다. 급정거나 급발진하며 추스르면 사람들은 뒤로 밀리고 밀리면서 밀착되고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여 다음 정류장에 닿게 마련이다. 상체는 뒤로 쏠리고 발은 제자리다. 때로는 한 발은 빼서 옮겼지만 다른 발을 옮기지 못해서 황새처럼 서 있을 수도 있다. 옷자락이 어디에 끼였는지 당겨지지 않을 때, 그날은 틀림없이 윗도리의 단추가 없어지는 날이다. 이 무렵, 도보로 출근할 수 있는 곳에 집을 마련함은 내 눈에는 황제의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부러움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숫제 버스의 종점을 따라 이사 다니는 것이 다음인데, 그것은 도심으로 파고드는 도시인의 생리를 역행하는 짓이니 그 노릇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속에다 세상을 담아서 녹이는 나름의 술수를 쓰기 시작했다. 교통수단이라곤 기차밖엔 없었던 어린 시절에 읍에 가서 버스를 타고 진 외가에 갔던 기억을 살려 그때로 나를 되돌리곤 하는 것이다. 그때 단 한 번 타본 버스는 흔들거리고 덜렁거려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오래 타고 싶었지만 아쉽게 내려야 했던 시절을 오늘에 끌어들이고, 그때로 나를 되돌리는 최면을 쓰는 것이다. 과연 난 아무런 불편이 없다. 내 안에 즐거운 그 시절을 심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실컷 타보려던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나를 유년 시절로 되돌리는 자기 최면의 일가를 이룬 것이다. 그래서 난 행복했다.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을 수 있는 특별한 나만의 요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