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외통인생 2008. 10. 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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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6.031014 졸업식

물어 물어서 이름만 듣던 성동중학교 정문에 닿았다.

눈 없는 겨울을 나본 적이 없는 탓에 올 눈 없는 겨울은 어색하다. 지금은 눈이 없으니 겨울다운 겨울이 아니다. 아마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작은 운동장이 있는 학교를 그린 듯싶다. 아무도 밟지 않은 운동장의 눈밭에 내 발자국 내는 즐거움, 환희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계절은 겨울을 못 벗어난 듯 뒤돌아서 어느 눈 덮인 산을 핥고 온 찬바람이 볼을 엔다.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교사의 창문과 벽돌 눈금이 또렷이 보이는 청명한 날씨다.

나는 아직 우리 애 졸업식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을 치르는 날에 가고 있다. 조카를 만나 위로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외길을 가고 있다. 부모 슬하를 떠나 누구보다 힘겨운 삶을 사는 내 처지에서 이해되는, 조카의 외로움을 위로하려는 나의 대리만족인지도 모른다.

오늘에, 부닥친 조카는 모든 감정을 주체할 수 없도록 절망할 것이다.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자기의 졸업식에 나타나지 못하는 부모,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의 가족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홀로 쓸쓸히 운동장 한가운델 걸어 나오는 조카, 고개를 숙이고 안대를 둘러치고 세상을 외면하려는 조카, 이윽고 눈물을 흘리는 조카, 불현듯 이런 조카를 생각하다가 직장의 의자를 저치고 일어나 달려온 곳이 여기다.

점심이라도 함께하려는 것이다. 교문에서 작은 선물을 사 들고 교정으로 들어섰다. 새까맣게 몰려나오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저마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햇살이 닿아 다갈색으로 변한 촉촉한 운동장 바닥이 아직 녹지 않은 황갈색 운동장을 가지런하게 한 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저 그늘이 없어질 때면 이 운동장엔 아무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나는 초조해졌다.

가장 가까이 있는 졸업생에게 물었다. 그는 조카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있는 곳은 모르겠다고 한다. 그 학생의 부모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학생을 낚아채 가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다시 한 학생을 붙들고 물었다. 그 학생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에 든 것도 없었다. 그 학생은 내 말이 떨어지자 쏜살같이 달려가서 조카를 데리고 왔다.

목이 메고 앞이 흐려졌다. 갖고 온 작은 선물과 함께 격려의 말을 전하며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외사촌 누나가 저기에 와 있다면서, 누나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나는 함께 자리할 수 없는 특별한 처지를 생각하여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조카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누나가 있는, 아직 녹지 않은 운동장 저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그 누나는 먼 산을 보고만 있었다.

난 고개를 돌리고,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운동장 한쪽의 농구코트가 눈에 들더니 두 개 중 한쪽 농구대가 점점 흐릿하게 작아졌다. 마침내 눈에서 사라지고 다른 한쪽 농구대는 짝을 잃은 슬픔에 어깨가 처지면서 수그리고, 앞에 있는 농구대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환각이 실제의 투영이었으면! 내 바람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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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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