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

외통인생 2008. 10. 1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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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낮고 단단하면 사방에서 물이 스미고 그 스민 물이 바닥에서 새는 물보다 많다면 거기에 물이 고이면서 웅덩이가 생기고 생물이 자라고 언저리엔 물기를 머금은 풀 섶이 무성하게 되리라. 그 중엔 싸리나무도 있어서 언젠가는 꽃을 피우리라. 제아무리 커도,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워도, 벌이 날아들지 않음은 꽃에 꿀이 없어서일 것이다.

난 살면서 한 방울의 물도 새 나가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웅덩이가 생기고 모래밭이었던 언저리에 풀이 나고 싸리나무에 인정의 꽃이 피면서 사람들의 왕래도 잦아졌다.

밤낮으로 나오는 뜨거운 물은 꿀물 같았고 겨우내 상온을 유지하는 실내는 모서리가 너무나 정확히 반듯한 유리 상자의 ‘우리 집’, 볼품을 상쇄하고도 남는 알찬 구실을 했던지, 손님은 끊이질 않았다.

어느 겨울날, 시골에서 일가 할아버지께서 오신다는 전갈이 있고 난 뒤에 당도하신 분은 우리의 실수로 곤욕을 치르시고도 한마디 말씀도 못 하시고 며칠을 보내시고 가시게 되었다.

화장실의 문이 잠겨있지 않았기에 볼 일로 문을 열었을 때 그 어른은 좌변기의 밭침 위에 양발을 디디고 엉덩이를 허옇게 드러내고 앉아서 물통을 양손으로 꼭 붙들고서 헛기침하시는데,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자세가 아니니 꼼짝 못 하고, 있는 그대로를 내게 보여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태연하게, 모른 척하고 계실 수밖에 없었다. 못 볼 것을 본 난 소리 없이 문을 닫았지만 이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르신도 아무 말이 없으셨다. 나도 모르게 틀에 박혀 살고 있는지, 그 뒤로도 변기의 사용법을 일러드리는 용기를 잃고 말았다.

만약 배설의 행위가 아니고 섭취의 과정이었다면 서슴없이 곧바로 일러드려서 불편을 덜어드렸을 것인데 배설의 생리적 작용에 한해서만은 왜 옹색하게 체통과 연결하게 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들이고 내보내는 것, 모두는 우리 신체 부위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차별해서 생각하고 처신하는 우리네 문화가 야속한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원시적으로 산다면 아마도 섭취와 배설을 지금처럼 엄격히 구분해서 처리하지 않았으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것도 오만한 인간의 지식문화라고 할 수밖엔 없다.

우리의 태어남과 사라지는 대응(對應) 관점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섭취(攝取)와 배설(排泄)의 대응 관점이 조금도 다를 바 없는데, 유독 섭취와 탄생은 찬양의 대상이 되고 죽음과 배설은 경원(敬遠)의 오점(汚點)이 됨은 아무리 따져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모두를 이치에 맞게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긴 하지만, 선뜻 입에 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허식에 기울어 있다는 말이 되는데 고치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을 억지로 이치에 맞추려면 그 어른께서 변기의 용법을 이미 알고 있지만 습관화된 자세를 고치지 못해서, 좌변기에 맞추어 자세를 취하면 용변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부득이 취한 자세로 보아 드려야 할 텐데, 내 마음이 옹색해서 그렇게 미치지 못하고 자꾸만 처음 당하는 것이라서 그렇게 했을 것이란 생각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물을 빼지 않아서 그대로, 뒤처리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부터다. 그래서 미지(未知)와 미 경험은 그 고비에 반드시 시행착오를 수반한다는 작은 진리를 또 한 번 깨달으면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두가 나의 깨달음에 도움이 됨을 자각한다. 그 어른의 어색한 행동에서 나의 과거를 되새긴다.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습관이 궁둥이를 붙이는 변기에 익숙해지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드렸던 거제도 수용소 시절이 회상되고, 그보다 더는 ‘보돌’이라는 이름의 간이 변기를 쓰면서 자란 내 정서엔 좌변기는 한참 먼 거리에 있었다. 이것은 내가 철난 후의 일이고, 모름지기 나도 동생들처럼 방에서 배설했고 그 배설물을 강아지가 핥아서 깨끗이 했을 것이다. ‘워리, 워리’하고 부르면 쏜살같이 들어와서 핥고는 재빠르게 나가버리는 움직이는 변기를 옛날 우리 어머니는 애용하셨다. 그래서 아무 탈 없이 자란 지금의 내가 있다. 생각하면 순수하게 자연에 맡겨진 삶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옆으로 빠져 생각해 본다.

그 뒤로도 가끔 오셨던 그 어르신은 씻은 듯이 적응하시고 이용에 아무런 불편을 호소하시지 않았다.

밀어닥치는 서양 문물을 미처 ‘소화해 내지 못해 배앓이’를 하면서 배를 움켜쥐고 뒤따랐다.

하긴 우리 누구도 거부하지 못했던 문물, 따라 일어난 생소한 체험이 없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편리한 것하고 우리의 정서하고는 너무나 ‘차(時差)가 커서 소화 불량(증)’을 앓을 때가 더러 있다.

수용소 생활에서 깡통에 든 커피 알갱이를 밥에 섞어서 비벼 먹던 때, 무지의 삶이 아직도 이어진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지 잘라 말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내가 산 한평생의 고갯마루에서 배설의 생리현상을 알알이 벗겨 보는 것은 내가 그 어느 한쪽에 아직 속해있지 못하고, 더군다나 내 고향 집을 그리고, 그 그림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뒷간 한가운데는 양발을 디딜 두 돌 위에, 내 양발을 디디고 쪼그려 앉아 변을 보고 앞에 놓인 재로 변을 버무려 뒤로 얹어 걸음을 쟁이던 뒷간이 어린 내게도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그 돌을 ‘봇돌’이라 하신 할머니의 생생한 음향이 평생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봇돌’은 내 고향이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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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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