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외통인생 2008. 10. 2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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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5544.031123 낚시

천성이 어질다고 한다면 오만을 피는 것 같고 달리 어중간하다고 한다면 조금이나마 분수를 안다고 하겠으니, 일러서 물러 터져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이라고 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물을 앞에 놓고도 꾀어서 내 속셈을 들어 보일 엄두를 못 내는 내가 그저 곧이곧대로만 살려다보니 늘 쳐지며 밀리고 따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내가 이나마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세상만사가 음양의 조화로 높낮이의 상호보완이나 농담(濃淡)의 아우름이라든지 만상(萬象)의 융화(融和)에 순응함으로써 명맥을 이어간다고 생각 해 봄직하다. 이를테면 세상만사가 고르게 펴져 돌아가는 숨은 진리가 있어서 그 덕을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꾀를 부려봐야 제 꾀에 제가 넘어가거나 지쳐서 물러나는 간단한 이치를 나는 어슴푸레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앞에 가는 사람은 나를 기준해서 나보다 앞선 것이지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의 처지를 놓고 보면 그래도 내가 앞선 꼴이니 매사는 생각할 나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뒤에 오는 사람이 나를 앞지를 경우는 또 다르다. 이 경우 그 사람과 나의 착안점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과 행동의도가 다른 관계 일 것이기에 이 또한 개의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래저래 속편할 생각만 하는 나다.

이런 내게 생각지도 않은 고기잡이 제안이 들어왔다. 손아래 동서 하나가 제안하기를,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도맡아 틀림없이 할 테니 우리 한번 가보자는 것이다. 말투로 보아서는 자기도 처음인 것 같다. 전해 들었다는 그 말을 그렇게 풍성하게 늘어놓을 수 없다. 지금 막 나서도 고기를 두름으로 잡아 올릴 것 같은 몸짓석인 말투가 나를 슬며시 들뜨게 한다.

낚시꾼은 워낙 허풍쟁이라는 얘기를 익히 들어온 터라 믿어지지는 않지만 동서의 그 풍부한 표현, 고기의 크기는 팔꿈치를 보태고 낚시 대는 아예 손가락으로 빗대니 나는 웃음을 담아 되묻는다.

‘고기가 이디서 그렇게 잘 잡히는데?’ 내가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김포 쪽에 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 준비 없이 가서 막대기에다가 지푸라기를 매고 그 끝에 미꾸라지 한 마리를 잡아매고 물속에 넣기만 하면 망둥이가 미꾸라지와 지푸라기를 함께 물고 놓지 않으니 당기면 올라온답디다.’ 동서는 흥분하고 있었다. ‘형님 다음 주에는 일직 나서서 한번 가봅시다.’

도시의 한 복판에서 가을 들판을 거닐어본다. 메뚜기 떼를 날려 몰면서 논두렁을 거닐고, 그리고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를, 이삭 내어 키운 벼줄기와 아직 파랗게 물들어 있는 볏 잎을 만지고 싶은, 고향의 정취를 그렸다.

그리고 외마디 ‘그럴까?’ 뱉어냈다.

나는 고기보다는 들판이 그리웠다.

동서는 내 반승낙을 받아놓고 돌아갔다. 모름지기 흥분을 삭이지 못하고 일주일을 내내 보냈을 것이고 한 주일이 일 년같이 길었을 것이다. 나 또한 아직 밟아보지 못한 땅에 가 본다는 신선함에 잔잔하던 마음에 물결이 일었다.

버스는 뿌연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섰다 갔다 수 없이 반복하더니 김포평야의 어느 한 종점에 닿아서야 그 털썩거리는 소리를 멈추었다. 형형색색으로 차려입은 마을사람들 틈에 끼어 따라 내렸다. 들풀냄새가 상큼하게 코끝에 스며들었다.

기다란 수로의 둑 음지에는 아직 이슬이 남아 있고 어둠이 남아 있다. 퍽 일찍 나선 덕으로 우리는 안개 속을 거닐 수 있었다. 아직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이슬에 가랑이를 적시면서 둑길을 마냥 걷고 있으려니 바다로 가는지 산으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느낄 뿐, 대책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없으니 물을 수도 없다. 동서의 머릿속에 든 그림으로 걸음을 옮길러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가 망둥이가 잡히는 곳인지 메뚜기가 잡히는 곳인지 분간조차 어려운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얼마를 허둥대다가 따가운 햇볕이 안개를 몰아내고서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가늠 할 수 있었다. 아직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훤히 트였는데 망둥이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버스를 잘못 탔거나 아니면 잘못 내린 것이 틀림없다고 짐작되는데도 동서는 통 가늠을 못한다. 그러니 동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마냥 걸어서 사람을 만나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 참을 걸어갔을 때 농부를 만났는데 그 농부의 대답은 망둥이의 낚시터는 어디에도 없고 바다는 아직 십리나 더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들판 구경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한껏 들이킨 들 냄새가 좋아서 마냥 걷기를 바라건만 동서는 초조한 나머지 무엇인가를 결심하는듯하더니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면서 봇도랑의 둑 밑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아마도 봇도랑을 막아 논으로 물을 대는 널빤지 두 장을 보고 결심한 듯하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미꾸라지라도 잡아야 한단다. 연장이라고는 두꺼운 널빤지 두 장이 고작인데 이것으로 봇도랑을 막고 물을 퍼내야 한다니, 어찌어찌 둑은 막는다고 하더라도 물은 무엇으로 퍼낼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봇도랑에 발을 드려놓는다.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을 풀만한 그릇은 보이지 않는데, 일단 물을 막아놓고 볼 일이라는 생각 같다. 흐르지 않는 물이니 두 군데를 막아야하고 그사이의 물을 퍼낼 속셈인 듯하다.

떠내려 오다 걸린 신짝이나 주위의 허수아비를 비롯해서 손으로 움켜쥐어 뗄만한 흙뭉치, 뜯어 나른 잡풀, 이런 잡동사니를 쌓아서 물을 막기는 했다.

다음, 물을 퍼내는 일이다. 동서는 논두렁을 타다가 봇도랑을 타고, 이리저리 헤집고 뛰어다니면서 무엇이든지 주어 날랐다. 빈 비료 포대, 흙 속에 묻힌 조각난 바가지, 빈 깡통, 허수아비, 이것들이 동서의 의도를 충족시킬 것들이다.

아마도 이것으로 물을 퍼내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바지를 벗어서 가랑이를 묶어 물을 퍼 낼성싶은 올곧게 미칠 것이 틀림없다.

말 그대로 혼신을 다하여 물을 펐다. 한 방울이 되었든 한 동이가 되었든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줄어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으로 쉼 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나는 흙냄새가 좋았다. 그리고 발의 촉감이 옛날의 모내기를 실감하게 해서 더욱 좋다.

하고자 하면 이루어지는 것인지, 물은 차츰 줄어들었다. 바지는 온통 진흙투성이로 젖었고 얼굴은 흙탕으로 범벅되어 볼만하게 문드러져 칠해졌으니 이쯤 되면 비 온 뒤 동네개구쟁이 진흙 놀이를 보는 듯하다.

허나 여기는 우리 단둘이만 있으니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망둥이든 땅강아지든 잡혀야 할텐데, 보는 이 아무도 없기 망정이지 혹 한 마리도 못 잡으면 무슨 창피를 당할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기면서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곳에서 흙탕물로 범벅이 되어 날뛰는 우리가 그들 보기에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기도 하고, 잡기도전에 이 고기를 어떻게 처치하는가 하는 의문도 일었다.

웅덩이에서 미꾸라지를 손으로 건지기도하고 둑 위에 동댕이쳐진 붕어를 줍기도 해서 웅덩이 한쪽에 가두어 둘만한 구덩이를 파고 거기다가 몰아넣기는 했는데, 햇살이 굵어지고 이마를 따갑게 할 즈음 힘도 빠지고 시장 끼도 있어서 요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거 야단이다.

땀 흘려서 잡은 고기니 꼭 먹어야 하겠다면서 깨어진 바가지다 주어 담아 오리나 됨직한 주막을 찾아가서 넉살좋게 그것을 끓여 달랜다. 과연 낚시광다운 발상이다. 나는 나를 볼 수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동서는 오지그릇 차고 검댕이 칠하고 한쪽 바짓가랑이 걷어 올리고 절뚝이는 각설이와 어디하나 다를 게 없는데, 남이 우리 둘을 본다면 신판 각설이라고 뉜들 하지 않으랴!

인심 좋은 주막집 아주머니는 기꺼이 우리를 맞았고 뒤란에서 우리는 열심히 고기도 씻고 몸도 씻고 마음도 씻었다. 그리고 내 향수도 씻어 달랬다. 어중간한 내 처신도 한물을 벗겼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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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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