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 ‘술 회사’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막걸리를 파는 곳인 줄은 알았지만, 그 이름이 하필 ‘술 회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집 가호(家號)인 ‘괸 돌집’처럼 아리송하였지만, 그 뜻을 풀어줄 사람은 없었다. 늘 혼자 터득하는 버릇이 있던 터다. 거기다 수줍음을 타서 그랬겠지만, 모르는 것을 입 밖으로 내질 못했기 때문에 그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어린 시절이 흘렀다. 그러면서 그 이름이 내 호구지책(糊口之策)과 맞물려서 그 뜻을 알아야 하도록 나를 밀어붙이는 때까지 마음속에 담고 있었는데 우리 집 가호는 풀리지 않았지만 한 가지‘술 회사’만은 풀렸으니 이렇다.
제주(祭酒)는 집에서 빚어 넣어 방의 아랫목에서 익혔던 내 어릴 때니 굳이 술 안 잡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그 ‘술 회사’까지 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 오갈 때에 보면 하얀 옷을 입은 인부들이 키만큼 커다란 단지를 굴려서 집안으로 들이고 한쪽에선 다른 인부들이 물이 흥건하도록 바닥을 적시며 독을 닦고 또 다른 사람들은 연신 술을 퍼서 주전자에 담아주고 더러는 나무통에다 담아서 소달구지에 싣는 것을 보았다. 술을 실어 나르는 우차(牛車)가 드나들고 주전자를 들고 드나드는 사람들로 보아서는 술을 만드는 곳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회사’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때는 그래서 그냥 얼버무렸고, 어느 한때까지 새록새록 생각났던 적이 있는 이 ‘회사’라는 이름의 말뜻이 뜻밖에 풀렸다.
내게 뿌리내린 ‘술 회사’ 낱말을 우여곡절 끝에 일하게 된 ‘술도가’에서도 이 말은 쓰이지 않았고 그냥 ‘도가(都家)’로 불렸다. 이쯤 해서 보면 ‘회사’는 신식 말이고 ‘도가’는 옛말로 여김 직하다. 그 무렵 다른 술도가 주인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직원에게 어려운 사무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그 가르쳐 준 것이란 내가 하는 일 따위를 그렇게 자랑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종업원에게 알아보았더니 그 술도가는 ‘법인’이라면서 그 사무가 조금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후비기 시작해서 그나마 짐작은 하게 됐다. 그게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이상하게, 장사는 사람이 하는데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법에 걸맞은 유령의 사람인 것이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런 보이지 않는 법의 형체를 가진 주인이 사람처럼 행세한다는, 그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고 또 사람처럼 행세하는 법으로 묶인 이가, 곧 사람의 격을 갖추고 사람처럼 벌도 받고 상도 탄다는 것인데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왜정 때, 동업하는 사람을 ‘가부(株かぶ.) 들었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가부’는 법으로 뭉쳐진 사람이란 의미와는 상통하지 않는 우리네 시골의 통용어였으니 어린 내가 알 까닭이 만무하다. 이런 것들이 내 앞에서 내 생업과 관계되어 다가오니 나로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꼴이다.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았다.
상법을 들추고 회계학을 읽고 법인세법을 훑는 과정에서 그것이 어름 잡혔다. 옳거니! 그래서‘회사’구나! 회사도 가지가지 형태로, 사람이 여럿이 모이는 형태, 돈을 얼마씩 대서 꾸미는 형태, 나무그루를 심듯이 심어서 그루를 모으는 형태, 그래서 ‘법인’이구나! 또 거기에도 장사만 해야 하는 법인, 장사해선 안 되고 남을 돕기만 하는 법인,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술도가가 하는 법인의 장부를 그 방법으로, 그래서 어렵다고 했고 가르쳐주었다고 했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무진 애를 써가면서 홀로 터득했지만, 그것이 쓰인 적은 그때엔 없었다. 그로부터 관심과 흥미가 더하여서 법인 사무와 장부가 나의 본업이 되기 시작했고 그 길이 그때엔 어렵다고 했기에 아무나 대들지 않았던 터여서 비교적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회사를 설립해야 한다. 더군다나 그 일을 남에게 맡길 수 없고 오로지 내가 감당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고 이를 뚫고 나가야 하는 현실에 막 닥뜨렸다. 그만큼 나를 통달하도록 만들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 이유도 있었다.
아무리 실무의 경험이 따른다 해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근간인 ‘설립’에 있어서는 또 문외한이다. 천애(天涯) 고아가 아님에도 이 땅에는 아무도 의논할 상대가 없다. 언덕이 있어야 비빌 텐데 그 언덕은 학연과 지연과 혈연으로 엮어져서 내 몸이 닿지 않는 먼 곳에만 즐비한데 좀처럼 다가갈 수가 없다. 걸어서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멀리 도망가고 천신만고 끝에 한곳을 붙잡아도 뚫을 수가 없고 ‘바늘구멍’은커녕 그 실마리조차 찾을 수가 없다. 오직 끊이지 않는 배움과 쉼 없는 일과 오류 없는 실행을 함께하는 고통만이 나에게 있을 뿐이다. 난 숙명으로 감내할 몫으로 여기고 정진할 뿐이다. 정지할 수도 없다. 물러서면 내 앞길은 그것으로 오므라들고 말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순간이 이어질 뿐이다.
법은 빈틈없이 반듯하여 덜고 보태고 할 수 없을 텐데 재는 사람에 따라서 잣대와 저울이 다르고 거기다가 자를 쥐는 방법에 따라서 다르거나 저울추 눈금을 보기에 따라 또 다르고, 재고자 하는 사안에 따라서 다르다고 하는, 떠도는 말이 그럴듯하게 내게 와 닿는다. 사람의 키를 재는데 신과 양말을 신은 채로 재는 사람, 벗기고 재는 법, 옷을 입고 무게를 다는 법, 벗기고 다는 법, 이렇게 다르다고 하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기에 발버둥 친다.
살아남겠다고 발돋움하는 콩나물시루에서도 누워서 크는 놈이 있다는 말과 같이 세상은 솟을 구멍을 언제나 터놓고 있는지, 내게도 작은 빛이 있어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서 세상을 배워나갔다. 모름지기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직면한 사람들은 그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을 다하여 생각하고 힘을 다하여 쏟을 텐데 나만이 거저 쉽사리 되리라고는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세상의 뒤틀림이 예사가 아니다.
사람이 만든 갖가지 법이 서로 엮이고 얽혀서 그물을 만들고 연줄인 것들이 서로 도우면서 그 그물을 붙들고 싸잡아 주면서 저들이 아는 사람은 빠져나가도록 구멍을 알려주고, 더하여 그 구멍을 서로 손잡고 늘려서 큰 고기도 빠져나가게 하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닌데도 용케 모두 빠져나가고 있다. 나도 해 댔으니까 말할 나위 없이 뚫으면 뚫리는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른 뒤에 그것도 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깨친 간단한 ‘술 회사’의 말뜻이긴 하지만 이 회사가 갖는 의미의 한 울타리에 발을 디디고 이제까지 살고 있으니 ‘회사’는 내 밥줄이고 지극히 작은 내 몸을 의지하는 안식처였다.
스스로 요람을 만들어서 먹고 애들 키우고 집 사고 땅 산, 회사는 평생 잊지 못할 내 안식처였다. 이제 통일의 그날이 되어 ‘괸 돌집’의 가호를 알아보려면 더 큰 체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날이 오기만 한다면 만난을 무릅쓰고 끝을 맺을 것이다.
얼마든지 기다리고 참겠노라./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