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외통인생 2008. 11. 7. 17:43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법정

5597.051006 법정

남의 앞에 나서기를 즐기지 않는 내게도 법정에 옹골지게 서야 할 그 날은 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망은 질기게 짜여졌다. 망은 내 일터인 회사에서, 그리고 그 회사가 꾸려지는 이사회에서 이루어졌다. 벗어날 수 없도록 촘촘히 짜여 옥죄니 홀로 빠져나갈 수는 전혀 없는 노릇, 법의 그물과 경영의 이름으로 짜놓은 그물은 겹쳐서 나를 덮쳤다. 그리하여 끝내는 내 어설픈 삶에서의 가설무대일망정 남 앞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도록 짜인 보이지 않는 그물이었다. 이 그물과 올무는 나를 법정에 서게 하는 영예(?)를 누리게 했고 또한 내 짧지 않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도 했으니 내 인생행로의 또 다른 한 고비요 몰아치는 풍파였다.

적법한 것처럼 우격다짐으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밀어붙이면서, 정(釘) 끝을 모르는 모난 돌이 되어있던 때다. 곡예사의 줄타기 경영으로 재주를 넘던 그 고비와 송곳처럼 날카로운 모험적 경영시기도 겨우 지났던 때, 작은 한숨을 돌리는 그 무렵이었다.

이제 평탄하고 바른 궤도를 달리는가싶던 우리 회사에 언젠가 정기세무조사 때 나왔던 낮 익은 공무원이 낯선 신사 네댓 명을 이끌고 들어 닥친 때는 햇살이 반가운 늦가을 어느 날, 우리가 막 아침 모임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와 커피 잔을 들어 올리던 참에 있었다.

수사를 맡은 그날의 손님들은 막 새벽차를 타고 올라온 우리 회사 거래 선의 지방업자처럼 숨죽은 배추 같았다. 그러나 공손한 그들의 눈빛만은 빛났다. 눈짓은 그들 서로의 행동을 통제하며 천천히 그리고 빈틈없이 움직였다. 예행연습이라도 해보고 온 것처럼 정확했다.

그들은 저들이 필요로 하는 서류가 들어있는 철제 서류함 앞에, 각 주무자의 비밀 서류가 내장되어 있는 금고 앞에, 그리고 각 당무자의 책상위에 있는 컴퓨터 앞에 서는가 싶더니 서슴없이 덮쳤다. 서두르지 않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계산된 행동을 입력한 로봇처럼 단순했지만 행동은 정확했다.

그들은 이미 자기네의 신분(身分)을 우리에게 확인시켰으니 거침이 없었다. 그 확인이 그들의 하는 일에 십분 활용되고 있음을 당하는 우리는 알 리가 없었다. 그들의 느린 행동 뒤에는 우리의 눈길을 쫓는 또 다른 감지의 직업의식이 발동되어 에누리 없이 추적 해오곤 했다. 방밖으로 나가는 우리 직원을 천천히 미행하고, 우리끼리의 통교(通交)의 눈짓을 미리 차단하거나 먼저 알아차리고서 앞질러서 들추어내곤 했다. 내 책상 서랍은 송두리째 뽑혔고 금고는 저항 없이 봉인되는가 싶더니 이내 열리고 말았다.

헬 수없이 당한 조사라서 이번에도 의젓하게, 의례적인 것처럼 대하긴 하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끌고 온 낯익은 국세청 직원은 눈짓으로 체념하라는 암시를 주었고 그도 어쩔 수 없이 소임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몸짓을 보냈다. 순간 이제는 내가 할 몫, 내 몸값이 치러질 때가 되는구나 싶었다.

압수 수색은 정오까지 이루어졌다. 우리 회사에 오신 손님들이니 늘 하던 대로 가까운 음식점으로 모시면서 비로써 그들과 가벼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앞일이 어떻게 진전될지 알 사람은 오직 그들이기에, 어색한 말머리를 꺼내려 내가 운을 떼었지만 정작 그들은 나그네처럼 도무지 아는 바가 없단다. 마치 고용된 사람들인 양 언행이 단조롭다.

모든 것은 가봐야 알 것이고 지금으로서는 자기들도 영문을 모른다는 것이다. 낯익은 세무공무원은 눈만 질금거린다. 무슨 뜻인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예사로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가서 제대로 대접하고자 했던 내 권유를 물리치고 가까운 간이음식점에 들른 그들은 나의 정중한 점심값 지불의사표시를 매정하게 거절하고 기어코 그들 중 한사람이 내 점심값마저 내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조사를 받는 나조차 그들의 점심을 얻어먹는 꼴로 되었다. 이로서 일의 경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일의 심증은 점점 굳어만 갔다.

나를 끌고 가고자하는 그들의 무리 없는 권유는 신사의 도리를 다하는 듯 정중했다. 부담 없이 따라 나섰지만 그들은 다분히 의도된 절차였고 나는 아무런 준비 없는 추종자에 불과 했다.

모름지기 그 때에 내가 머뭇거리고 나중에 가려고 했다면 아마도 그들 중 누군가가 나를 지키며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을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그렇게 내가 행동함으로서 그들에게 더 큰 의혹을 사고 그로 하여 더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습의 실마리는 더 엉켰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들의 수사 기법의 일환으로 행하는, 풀어주고 탐색하는 특유의 기법에 말려들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든 것도 없었다. 회사의 그 누구도 전송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그들의 차에 동승했다. 이 행동은 천부적으로 순응형인 내 성품과도 일치하는 것, 내 철없던 운명의 그 날에 담임선생을 따라 나선 그 순수함과 상통하는 지도 모른다. 집을 떠날 때도 부담 없이 떠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따라나서는 것이다. 백치가 되어 있는 나는 그 어린 시절이나 노년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풀려질 것이고 그 순리를 왜곡하거나 역행한다면 그만큼 다른 부작용이 따를 것이란 지극히 간단한 생활 철학(?)이 내 내면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그저 따라나섰다. 아마도 그 때에 다른 사람을 대동시키려 해도 그들은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나는 감각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역할이던 내게 주어질 때는 언제나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내 위치의 좌표로 알고 거기를 기점으로 삼아 스스로 행동하고 풀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따라 나섰다. 업무의 속성으로만은 적어도 그렇다. 실질 내용이 그렇지 않다 하드래도 그 실질내용을 핑계 삼아 내가 빠지려고 구차한 몸부림을 치기가 싫었다. 몸부림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식이 벌어지는 일에 나를 순응시키고 있었다.

나는 검찰 청사의 검사실에 사실상 연금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이제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던 그들이었지만 청사에서만은 달랐다. 들락날락하면서 농담을 거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듯, 열심히 우리 회사의 창업이념과 영업방침에 대해서 의욕적으로 설명하며 정당성을 주창했다.

핵심은 교사들의 급료 외에 원고료로서 교사들에게 지급하는 출판사 원고료명목이 정당한 원고료냐는 것과 시간당 강사료가 예외적으로 많게 지급되며 그 방법이 변칙이며 부당하게 지급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하는 것에 대해서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그 위법성을 구성하는 일이 검찰에 주어졌음을 나중에 알았다.

검찰직원들은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불쑥불쑥 물었다. 정상적 조사가 아닌 한담(閑談)으로 주고받는데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팔을 저어가면서 설명했다. 내 입장은 고려대상이 아닌 그들의 언동은 사뭇 조소적이다. 나름대로 논리를 폈지만 내 주장은 그 논리가 일반인과 그들의 정서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영자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많은 부분을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처음 당하는 일. 나는 의사결정권자가 아님에도 사안의 정당성을 위해 회사의 경영권에 관하여 대변(代辯)하는 꼴이 되어있었다. 그보다는 설명과정에서 역습의 실마리를 제공한 부분도 있었음은 나중에 변호사와의 변론 준비과정에서 나타남으로써 알게 되었다.

그 실, 누가 되어도 이 정도의 진술은 불가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그 역을 맡은 데에는 내 역할이, 내 몫이, 이것이라고 여겨서 굳이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나 더 윗사람에게 떠넘길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내 생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습성, 남이 볼 때는 미련과 우둔함과 아둔한 짓일 것이라고 여길만한 그런 행동이다. 언제나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정직하다해도 회사의 곡예(曲藝)적 경영을 정당화하는 데는 미흡한 내 좌표인 것을. 학원(學院)가에서 일어나는 정서를 순화하는 변론이 되지 못하고 법의 위법성함정을 건너 뛸 수 있는 도약대가 없음을 나중에 깨닫지만 그런 것들을 재는 잣대도 변호사와 검사의 것이 달랐고 그 두 사이에 큰골이 있어서 잣대를 고르고 골을 좁히는 데는 적지 않게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단(豫斷)치는 못했다.

내가 연금(軟禁)되어 있는 사이 또 다른 방에선 이미 우리 회사 주무자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또 다른 편에서는 회사를 왕래하면서 온갖 증거들을 수집해 들였다. 그렇게 해서 그물을 짜 둘러쳤다. 상당한 검찰직원은 검사를 둘러싸고 한 팀씩 이루어져 있었다. 그 때까지 나는 검찰 조직이 이렇게 단조롭게 짜여 지고 각 팀 사이에 별도의 방을 만들어서 운영되는 줄을 몰랐다.

내가 갇힌 방은 검사 한 명과 조사관 한 명 그리고 보조원 한 명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권력의 끄트머리지만 엄청난 힘을 실어주는, 문어(文魚)의 빨판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작은 빨판으로 빨아들인 힘이 나라를 지키고 법을 지탱하는 것이 놀랍다. 겉보기에는 여느 사무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거친 경찰서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국밥이 들어오더니 그중 한 그릇이 내 책상 앞에 놓여졌다. 내가 앉은 책상은 그들의 사무용 책상과 나란히 놓인 같은 모양의 직원책상이다. 철저하게 안배된 피의자의 심리 안정이다. 모름지기 여기서 그들의 목적한바 조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은 음산한 방으로 인도될 것이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추측은 맞았다.

일체 허용되지 않았던 외부와의 전화통화도 집으로만은 단 한 통화를 허용했다. 그러나 조건이 달렸다. 회사 일로 늦는다고만 말하라는 것이었다. 송수화기를 드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시선은 나의 입 시울을 에워쌌다.

아내의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그랬듯 힘없이 자자들었고 오늘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 들였다. 더 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이즈음의 내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고 뒤얽혀 뒤숭숭하다. 아내의 병은 나를 그냥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중병임에도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고, 안쓰럽게 애쓰는 모습이 전화선을 따라 전해졌다.

아내의 목소리는 내 귀 볼을 어르고 있다. 내 입술에 손끝을 대면서 황소 눈처럼 큰 눈을 천천히 떴다 감았다. 어느새 수화기는 아내의 몸이 되어 있었다. 살포시 보듬어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을 더한 것, 함축되고 농축된 내 감정의 표현수단이란 이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전화는 그렇게 어이없이 끝났고 수화기는 제자리에 놓였다. 그 생명력 잃은 소리, 달그락 소리만을 내면서 전화기 요철(凹凸)은 하나로 되었다. 내 얼빠진 소리와 아내의 무심한 응답은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이어가는 짝꿍의 요철을 잃어가고 있다. 수사관들은 아직 내 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얗게 변해 가는 내 입술이 그들의 눈을 붙잡았을 것이다.

종내는 우리회사 말고도 많은 학원이 우리의 들러리 격으로 조사 받고 있음을 눈치 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이 일에 관해서 밖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며 어느 만치 나갔는지를 알지 못한 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창밖엔 불빛이 완연히 줄어서 크고 작은 빌딩이 산등성이처럼 검게 이어지고 그사이로 자동차의 불빛이 띄엄띄엄 비쳤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미루어 보아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바뀌었을 성싶어서 시계를 보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의심 없는 눈총으로, 시침은 3자에 가까이 있고 분침은 9자 근처에서 머물고 있음을 본다. 눈이 아프다. 눈을 감았지만 아내의 그림자만 얼른거릴 뿐 오늘의 일은 사필귀정일 것으로 내 마음이 다듬어지고 앞일이 명료해 진다. 나는 이 일의 모든 책임을 지고 합당한 대우와 응분의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사무실에 압수수색을 할 때부터 이 시간까지 나를 위압하거나 거칠게 굴지 않는 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조사 관리는 모름지기 가정에서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명문의 후예(後裔)일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그런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뜬눈으로 새 날을 맞던 회사의 일이 어디 오늘뿐이랴 만 유달리 길고 무서운 밤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이 밤이 오히려 공포의 고요다. 초침소리만이 온방을 굉음(轟音)으로 채우고 그 굉음은 내 가슴을 헤집고 들이 쳤다.

찬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눈을 뜨고 다시 밖을 보려는데 이번에는 새파랗게 젊은,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젊은이가 사무실의 창가 테이블의 등받이 높은 의자에 책상을 등지고 비스듬히 앉아서 한참을 있더니 의자를 돌려 눈길을 내 앞의 조사관과 마주했다. 이윽고 나는 그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지고, 거기에는 굳은 얼굴의 우리 회사 경리책임자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반색을 해야 할 터인데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심히 고통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조사관한테 ‘구타를 당했노라고…,그래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나는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고도의 심리적 수사에 우리가 말려들고 있음도 그제야 알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일단 경리책임자를 거칠게 다루면서 그들의 각본에 맞도록 진술하게하고 그 결과를 내가 알도록 나와 경리책임자를 한방에 넣어서 나의 심경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내가 알아차린들 그들의 수사시간의 단축을 저해하는 작은 저항에 불과할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쯤 알고서, 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단지 우리 회사의 기록에 의거한 사실관계만을 시인할 작정이었다. 그것은 내가 부인해도 증거를 확보한 수사 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자한 의사의 결정을 내가 내 선에서 하였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위의 선에서 하였다고 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그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경우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맹추에 불과한 회사의 존재라고 하기는 싫었다. 주도적으로 회사의 영업방침에 깊이 관여하여 책임 있는 역할을 자처함으로서 이 사건의 핵심에서 단죄 받는 것이 내 회사에서의 위치일 것이라고 비중 있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단지 의도적으로 한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캐내는 것이 수사의 초점임을 감지 할 수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내가 희생양이 되겠노라고.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처벌을 감수하고 회사의 부담을 덜어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발을 굴렀다. 접의자가 뒤로 밀려났다. 경리책임자는 여전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발밑을 응시하지만 이미 지난술회를 돌이킬 수 없는 노릇, 시간도 돌이킬 수 없는 노릇임을 어찌하랴!

방은 다시 고요의 침묵이 흐른다. 젊은 검사는 정중히 나를 대했다. 아내의 동통(疼痛)이 별빛을 타고 전해오는 가운데 심문은 시작되었다. 이미 만들어진 조서에 내 이름이나 주소를 처넣는 지극히 형식적인 심문이지만 잘 짜인 조서 같았다.

중요한 것은 무슨 목적으로 원고료명목으로 강사료를 변칙 지급했으며 각종 시험문제 출제요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출판사를 설립했고, 근로 소득이 아니라 인세로서 각인(자)의 소득세를 줄이려고 했고, 비자금을 조성해서 별도로 사용할 목적으로 무기장 추계신고를 해서 탈세했다는 요지의 조서를 문답형식으로 작성하고 그리로 몰고 가며 내 진술인 것처럼 형식화하는 것이다.

부인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미 다른 직원의 진술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검사는 '일사천리'로 끌고 나갔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퇴로는 단 한곳, 내가 오로지 회사에서의 업무가 사실상 이미 주어진 상황을 적절한 계정(計定)분개(分介)가 이루어졌는가하는 지극히 국외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대외적 명분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권자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서, 그 쓸모에 대기하고 있는 처지인 것을 익히 아는 나는 굳이 내가 빠지고 실질적인 운영핵심을 들추어서 그들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해도 종국에 가서는 우리 모두가 떠넘기기의 추한 꼴만 보일 뿐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무력한 내 위치에 순응함으로서 그 모든 사악한 추악상을 생략하고 단순화하고 싶었다. 그 실 나의 내면에는 회사에 대한 어떤 소명의식이 잠재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출판사를 설립했느냐는 부분은 부각시키려 했다. 그 부분에서 내가 직접 간여하지 않았다는 내 진술만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대표이사를 옥죄는 데는 별 소용이 없는 변두리의 것이라는 내 조서의 한계성을 검사는 인정한 것일 뿐이다. 동료들과 철저하게 차단된 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 채,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천근의 무게다. 뒤돌아본 검찰청사의 불빛이 변호사 사무실이 층층이 들어 있는 인근건물의 크고 작은 윤곽을 드러내 보일 뿐이다. 이따금씩 잡히는 다른 승용차의 미등(尾燈)이 스치고, 더러는 붉은 브레이크 등이 선혈처럼 붉었다가 흐려진다. 각혈(咯血)을 하며 멈추는 생의 행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잠시 소스라친다. 차안의 손잡이를 틀어잡고 있다. 길은 휑하니 뚫려 있지만 마음은 옹벽에 갇혀 전율한다.

희망을 쫓아 용솟음치던 젊음, 그 날의 홍조(紅潮)된 얼굴은 어디로 가고 끈 끊어진 하얀 연처럼 가라앉는 아내, 그 얼굴 하얗게 바래있다.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릴 수 없는 순결한 아내의 생의 끝이다. 연은 아직 바람에 떠서 조용히 너울거린다.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소리 없이 다가갔다. 모든 것은 이미 고비를 넘어 내리막길, 활력과 적막(寂寞)적 침전사이의 임계(臨界)점을 넘은 아내를 다만 한 눈으로 떠 바칠 따름이다. 모진 내 육신은 영혼의 인도를 무릅쓰고 하얀 얼굴을 외면하며 잠들어 버렸다.

오후에 회사에 나갔다. 정중동이라던가? 회사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어제와 다름없이 분주히 돌아가는 직원들을 포용(包容)하고 있었지만 내 사무실은 무언가 비어있는 듯 허전하다. 아직은 전말(顚末)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때다. 경리책임자가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나보다 더 늦게 풀려 나왔는가보다.

정작 일의 중심에서 자기들의 행위를 책임져야 할 위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시침을 때고, 몸을 사리고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포효(咆哮)가 그들의 고막을 뚫고 막장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내 안에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이 일에 대해서 멀리서 바라보는 국외자의 입장을 취하면서 고뇌하고 있을 것이다. 내 바른말이 그들의 바늘방석을 들쑤셔 놓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 그들은 나날이, 몹시도 길고 길었을 것이다. 이미 넘어버린 내 몫의 고비를 후련히 털고 넘어선 나는 물 바닥을 친 제비와 같이 가볍다. 허나 그들은 언제 각질이 벗겨질지 안절부절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금 나는 가련한 인간군상을 보며 내 일생의 신조가 여기서 확연해지는 것을 보고 있다. 그렇다. 나는 스스로를 위장할 능력이 못 미치는 대신 정면으로 통과함으로서 정작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움츠리게 하는 천부의 심성이 있다. 비굴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비굴함은 계산된 앞날의 오늘의 모습이다. 나는 미래를 계산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나는 주어지는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무런 후회나 원망은 없다. 모두 내가 스스로 택하여 이루는 것이니.

다시 하루가 지났다. 사장은 검찰청에 다녀와서는 좀처럼 나타내지 않는 미소를 입에 담고 들어섰다. 그리고 검사를 원망하는 눈치도 없었다. 아마도 마음 편하게 모든 것을 실토했는지도 모른다. 거기서 거짓을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법적용이나 법해석이나 범의(犯意)를 다룸에 있어서는 당사자는 언제나 국외자(局外者)이기 때문이리라. 해서 나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사장은 모든 것을 순순히 응했다고 했다. 그리고 무인(拇印)했다고도 했다.

모든 학원의 조사가 끝날 즈음 갑자기 구속영장의 실질심사가 있을 것이라는 좋지 않은 소식이 있으면서 이 사건의 정치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구속이란? 도주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인데도 사안의 정치적 목적달성, 즉 모든 학원의 법 준수의 경고성 희생물이 학원가의 두각(頭角)인 우리 회사에 서릿발처럼 내린 것이다.

회사는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로선 아무런 도움도 방법도 제시할 수가 없다. 오직 미루어 행동했다면 이런 경우에 내가 법정구속이 되거나 책임을 지고 제재를 받아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다. 이때까지 욕심(?)을 부렸지만 허사가 되어버리고, 내가 오히려 밀려나고 말았다. 아마도 법적 책임은 대표이사가 져야한다는 사회에 대한, 특히 학원(學院)가에 대한 효수(梟首)효과의 성격일 것이다.

면목이 없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대표이사가 구속되기 전 까지만 해도 내 행동거지(行動擧止)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이해와 의당(宜當)한 처신으로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상황이 바뀜으로 해서 내 입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반전되고 있었다. 아무리 아랫사람인 경리책임자가 실토를 했다 해도 나만은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했어야 되지 않았느냐 하는 식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려면 나는 내 위치를 바르게 밝힘으로서 다른 두 사람의 간부가 실질적인 범행(犯行) 당사자로 노출되고, 나는 완전히 무혐의자, 무책임의 실질위치로 돌아감으로써 회사가 아니 대표이사가 점지한 궁극적 내 용도를 망각한 처신이 되겠기에 미리 내 갈 길을 가는 것이었는데, 역전되고 말았으니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국면이 되었다. 사장은 한 달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동안 몇 차례 면회를 했어도 별 다른 책망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어쩔 줄 몰라서 서성이기만 했다. 변명의 여지를 찾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굳이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은 영어(囹圄)의 입장을 헤아려서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면회는 늘 겉도는 것이었다.

일반 면회가 아니라 접견실을 닮은 꽤나 무게 있는 인사들의 접견장소인 거기는 소파가 놓여있는 특실이지만 입회자의 눈과 귀는 우리의 면회 장면을 놓침 없이 청취 기록하기 때문에 더욱 어쩔 수 없었다. 다만 동기간인 변호사를 통해서 항변하는 눈치를 챌 수가 있었을 뿐이다. 변호사는 별도로 따로 만나는 눈치였다. 사장은 몹시 경계의 눈빛을 흘렸고 말은 극도로 아꼈다.

국면은 학원가의 모든 비리의 온상이 우리 회사인 것처럼 몰아가고 거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협조한 것처럼 굳어지는 것이 몹시 괴로웠다. 내 딴에는 회사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세로 걸었는데 엉뚱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세상사의 꾀고 틀어진 일이 보잘것없는 내게도 밀려오고 있었다.

몇 차례의 보석신청이 있은 후에 대표이사는 풀려 나왔다. 그로부터 사건 혐의의 반전을 위한 법리논쟁이 벌어졌다. 가장 불리한 것은 회사의 누구하나 검찰의 심리에 저항하거나 반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직원이야 매에 못 이겨서, 모르고, 아니면 고의로, 그도 아니면 아둔해서, 그렇지 않으면 검사와 짝꿍이 되어서 그렇게 이끌렸다고 치더라도 최고 책임자인 대표이사 스스로는 그것을 부인했어야 옳지 않느냐는 변론자의 요지이다. 궁지에 몰린 것이다.

동기간이라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동생인 변호사는 빠지고 전관예우를 비교적 두텁게 받으며 사건을 잘 풀어간다는 다른 분에게 사건은 위임되었다. 이번 선임한 변호사는 벌써 이 사건의 두 번째 변호사이다. 적은 승소율을 가지고 풀려는 그 분의 노력이 딱하게 보이는데, 직업상 송사를 외면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그 세계의 또 다른 일면이 엿보인다. 변호사는 안간힘을 다해서 변론준비를 하면서도 연신 승소는 쉽지 않음을 실토하곤 하였다. 결과는 패소였다.

재판정에서였다. 이 사건 심리의 현장에 등장한 내 각오는 비장했다. 내가 법정구속이 됨으로서 나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담당검사와 삿대질하고 싸웠으니 말이다. 그 때 나는 극도로 흥분되어 있었다. 대표이사의 구속까지 이르게 된 사건을 뒤집던지 뒤집히던지 하면서 내가 이 사건의 중심축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검사는 조목조목 진술조서의 내용을 들이댔고 나는 조사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경리책임자의 구타와 그밖에 가혹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버텼다. 또 조사당시의 나의 진술은 아내의 우환으로 인한 집안사정으로 해서 내 정신은 착란상태에 있었다는 점과 빨리 아내에게 돌아가서 간호를 해야겠다는 일념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이 사건은 사필귀정으로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빨리 장소와 시간을 벗어나기 위하여 취한 행위였고, 허탈한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아무런 의식 없이 행하여졌다는 점을 들이댔다. 달리 말하여,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이루어진 조서이니 무효이며 변호사를 통하여 진술하고 바로 이자리, 여기에서 진술하는 이 내용이 바로 내 올바른 진술이라고 항변하는 것이었다.

내 목청은 한껏 돋아 있었다. 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관행대로 이차삼차 공판의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다만 진술서에 서명 날인한 것은 틀림이 없다는 말만 일관되게 주장할 뿐이다. 나는 법정구속을 감수하고 계속 고함을 질러댔다. 앞에 앉아있는 피고가 된 대표이사는 이미 병 보속(補贖) 상태로 있었음으로 수의(囚衣)를 입지는 않았지만 몹시 굳어 있었고 뒤에서 증언하는 증인으로서의 내 증언을 경청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판사는 나의 진술을 제지하였다. 그리고 내 귀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법정소란 죄는 적용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의도는 실패했다.

법은 냉정했다. 주범의 범의(犯意)를 집요하게 캐고 있었지만 대표의 대답 역시 당시의 조서는 깊이 있게 읽어보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기명날인 했다는 되풀이 말뿐이다. 그래서 재판은 거듭되어갔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 대표의 진술이나 증인으로서의 나의 진술이나 일관된 것은 검찰에서의 조서 불복인데도 불구하고 판결은 징역과 집행유예 벌금형으로 떨어졌다.

허구한 날을 들볶이면서도 나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내가 회사 운영의 실질 핵심은커녕 직함에 걸맞는 업무의 장악을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명목상으로만 두었다가 결정적시기에 걸맞게 '토사구팽'의 몫을 이미 마련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 또한 이런 흐름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불만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관련당사자들의 몸가짐은 몹시 불한 해 보였고 될 수 있는 대로 내 눈길을 피하려는 태도를 끊임없이 이어야하는 형벌 없는 모진 심리적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모든 서류에 그들의 의사 표시가 증거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리라. 반면 나는 그들의 결재과정의 하자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결정된 사항들이 현행법에 어떻게 접근 할 수 있는가를 가려서 맞추어나가는 하수인의 구실이었지만 둔갑해서 나를 최고의 의사결정권자로 만들고자 하였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짊어지려고 해도 내가 짊어질 수 없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서 그들의 비인간성이 노출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은 몹시 기죽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할 수 있었다. 모두 내 선천적 품성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시조 할아버지께서 사냥꾼으로부터 사슴을 구해준 보상으로 후손이 발흥했다는 우리 일가의 기원에 뿌리박고 있음을 감사한다.

퇴직 후에도 사건은 계속 지루하게 공방 되었다. 변호사도 또 바뀌어 위임되어 상급법원에 항소하여 결국은 승소했다. 따라서 부과되었던 많은 액수의 세금도 되돌려 받았다는데 대해서 나는 위안을 받고 있다. 비록 내가 국외자로 있지만 한 때 깊숙이 관련되었던 일인데다 아내의 투병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세월을 타고 견디어서 무혐의로 되는, 유형무형의 모든 것의 순환 이치를 되새겨보는 이즈음이다. /외통-



'외통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결  (0) 2008.11.09
재탕  (0) 2008.11.08
설립  (0) 2008.10.28
운전  (0) 2008.10.27
낚시  (0) 2008.10.26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