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외통인생 2008. 10. 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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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로 밀어붙였기에 할 수 없이 승낙 한 날. 난 초인종 소리를 듣자마자 벽친 고무공처럼 튀었다.

어제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아침이다. 어둠이 깔린 새벽인데 벌써 거리를 누비는 차들이 다시 열기를 더하고, 찢어지게 소리 지르며 잠들은 세상을 흔든다. 그중에 나도 한몫하려 든다. 같이 일하는 과장은 제 승용차로 도심을 뚫고 이곳 미아리까지 왔으니, 그도 이미 한몫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온 것만은 고맙고 대견스럽긴 한데, 도무지 행보를 가르쳐주진 않으니 답답하다. 하지만 하계(夏季:서머타임:)시간 조정으로 아직 다섯 시간이나 남아있는 아침 출근이라 느긋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작정 없이 옆자리에 타고 간 곳이 의정부 가는 길의 초입이다.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나를 운전석에 앉으라면서 태연하게 자전거보다 쉬운 것이 자동차 운전이란다. 오른쪽 페달을 밟으면 가고 놓으면 멎는다며 간단한 이치(理致)만을 가르쳐주면서 시도할 것을 권하는데, 내가 이런 간단한 것을 작동 못 하고 물러선다면 앞으로 있을 문명의 이기들을 거부하며 살아야 한다는 신호로밖에 볼 수 없는 노릇이기에 눈을 딱 감고 운전석에 앉았다.

엄청난 박동으로 갈비뼈를 두들겨 대는 심장은 엔진소리와 뒤바꿈 되고 벌렁거리는 숨소리는 단내를 뿜는다. 내가 지금 무서운 일을 하고 있다는 부담으로 흥분하고 있다.

들은 바는 있어서, 우선 변속의 절차를 물었다.

이치는 알겠지만, 손과 발동작이 걸맞게 어울릴지, 또 망설여진다.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숨을 돌리고 나서 일러주는 대로 했다. 불현듯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도 이만큼 가슴이 요동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미치니 이번에는 어깨가 처진다. 무너지는 나를 달래려고 겹으로 몸 조린다.

우선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일단에 넣었다. 클러치를 천천히 떼면서 가속페달을 같은 속도로 밟는다는 기초 동작에 진땀 나는 순간을 보내면서 이를 극복했다. 자동차는 움직였다. ‘자가용’을 몰 수 있는 바탕을 닦는 것이니 이쯤의 노력은 응당 달게 받아넘겨야 할 일이거늘 내 앞으로 쏟아지는 엄청난 아스팔트를 받아낼 담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다. 길 위를 달리는 수많은 운전자의 담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쏟아지는 아스팔트는 아직 내가 수저를 쥐는 아기의 체험에 버금가고, 거기에 머물러있을 뿐이라는 실망마저 보태어 밀려왔다. 이런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내가 객으로 탈 때는 몰랐었다.

자동차란 그저 빨리 갈수록 좋고 그래야만 신나는 것으로 여겼다. 이제 그 속도감을 느끼면서 세상의 모든 기동(機動) 물과 삶의 흐름을 가늠하는 절대적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과연 기계화되고 정보화하는 사회적 흐름인 강물 중심에서 속도감에 무디어져서 가속되는 흐름조차 잊고, 무엇이 내 주위에 있는지 무엇이 나와 연관 지어지는지를 살필 겨를 없이 흐르며 살 것인지 아니면 흐르는 강물의 가장자리에서 돌부리에 부대끼고 풀뿌리와 어르면서 물고기와 어울리고, 흐르다가 맴돌고 다시 흐르다가 멈추고, 개구리가 뛰어들면 껴안고 빗물에 씻긴 흙탕물이 들어오면 뒤집어쓰면서 쳐져 흐르는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순간을 맛본다. 아마도 난 물결의 갓에 어울릴 것 같다.

누구나 겪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앞에 타고 있으려니 세상이 내 앞에 몰려오면서 온갖 것이 밀려드는 무서운 세상임을 새삼 보는 것이다. 차는 천천히 움직일 텐데 쏟아지는 아스팔트는 멈출 줄 모르고 다가온다.

내 짧은 인생에서 처음 타본 자동차, 고향마을에서 이십 리나 기차를 타고 가서야 거기서 타볼 수 있었던 자동차, ‘추지령’을 넘어서 진외가에 가면서 탔던, 아직도 눈에 선한 그 자동차, 내가 사는 고을 전체에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 머지않아서 그런 자동차를 갖게 되리라는 것, 세월의 덕이랄까, 아니면 내 입신의 좌표랄까, 옛것에 정을 두는 나로서는 개벽(開闢)의 버금이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만이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온당한 처신이긴 하지만 눈이 휘둥그렇게 된다.

머무를 여유조차 주지 않는 각박한 세상에서 혼자 쳐지고 어물대도록 놓아주지 않는 내 생활, 그 생활의 물결에서 난 가장자리가 어울리건만 한가운데를 달리는 과장(課長)은 나를 밀쳐서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저도 함께 떠밀려서 가려는 참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물결을 도도하게 흐른다. 난 그 물결을 탄다. 그리고 내 마음과 아랑곳없이 밀려가고 있다.

‘동두천’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에서 아스팔트는 한결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고 세상의 온갖 것들도 조금씩 더디게 움직인다.

이것이 세상인가. 아침 해가 솟으면서 땅 위는 다시 열기로 차오른다. 거기에 내가 탄 차조차 열기를 보태고 있다. 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여 흘러가는 것이다. 내 심장만이 본래의 아스팔트처럼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제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린다. 조용하게./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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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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