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2.여

외통인생 2008. 10. 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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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여

5541.031105 그림2.여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우선은 그 말을 믿고서 행동이 따라야 한다면 즉시 옮겨보면서 거기서 기쁨과 실망을 가르는, 아내의 티 없는 마음에 나는 언제나 불안하다. 혹시 하얀 도화지에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 아무렇게나 그려질 것 같은, 그런 염려가 앞서면서 아내의 행동거지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는 좁쌀알만 한 티로 그려져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늘 내 생활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작은 걱정거리의 티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내 그림이다.

으레 한 밤중이던 토요일 퇴근이련만 일찍 들어온 오늘의 나를 맞는 아내의 표정이 유달리 밝다. 웃음 짓는 아내의 가지런한 이가 눈부시게 흰데, 그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짓이 수상쩍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내의 시선을 쫓다보니 양쪽 벽에 수건너비 만한 액자 두 개가 낯설게 걸려있다.

그 액자를 향해서 바로서서 보고 비켜서서 보고 고개를 갸웃이 기울여 보다가는 그 고개를 이번에는 반대로 갸웃이 젖히고 본다. 살며시 다가가 보니 그림인지 수(繡)인지 알 수 없는, 불그스레한 선이 덧 덮여서 타원형의 모양을 수없이 반복한, 모를 그림이다. 내가 알고 있는 실물을 빌어 표현한다면 아마 꿩의 깃털모양의 큰 그림이 포개진 것이라고나 할까.

달리 공작새의 깃 같은 것을 가지런히 늘어놓은 것 같은 그림이다. 백가지가 마찬가지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더욱 백치인 내니 주물러서라도 느껴보고 싶었으나 액자의 유리 속을 촉감으로 확인 할 수 없으니 이로서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닥이 들어 났다.

두 폭 그림의 알맹이야 이렇게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기로 끝나지만 어떻게 이런 이상한 그림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지 않고는 걸려있는 그림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은 더 없게 되었기에 애꿎은 출처(出處)를 물음으로써 그림감상에 작은 도움이 될까하여 말을 건넨다. 지극히 단조로운 나의 메마른 정서를 읽는 것 같아서 쓸쓸하다.

나의 이런 태도와는 달리 아내는 그림을 감상하느라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눈을 그림에서 떼지 않고 ‘그냥 누가 준거’란다. 무겁게 가라앉아 감상할 정도의 의미 있는 그림을 주는 사람이라면 걸맞게 친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더 파고 묻는다.

혹시 이 그림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는 끈끈이가 되어서 여린 아내의 마음을 낚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이 도진다. 감성적인 아내의 행동은 언제나 깊은 감동을 내게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어떤 사연을 만드는 시발인 것처럼 생각되니 그렇다.

내놓고 말을 해서 비단결 같은 아내의 마음에 먹칠을 할까봐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기로 마음먹고서야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부디 지금 같은 아내의 마음이 상처받지 않고 곱게 물들은 가을 산야를 보는, 알차고 보람 있는 날이 펼쳐지기를 빌면서 그림에 매료된 아내의 마음과 모습을 담을 수 없는 이 무지렁이가 서글플 따름이다.

고향집에서 때마다 신주 통을 털 때 쓰던 꿩 깃털로 만든 먼지 털이 비 자루 색상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이 그림의 연유가 그와 무슨 상관이 혹시 없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매사를 고향과 결부시켜서 갖가지 몽상(夢想)에 이르는 내 어린애 같은 생각을 이루 다 털어놓을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아내와의 사이에 가로놓인다.

이 그림이 아내의 마음과 내가 생각하는 고향의 꿩 깃 비를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감의 터전은 없을지, 아쉽기만 하다. 다만, 이 그림이 그림 그대로의 색칠로 되어 남아 빛나면서, 아내의 하얀 도화지에는 전혀 작은 오점(汚點)하나라도 옮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함께 인다. 아내는 지금 백지 위에 꿩 깃보다 아름답고 공작새 깃보다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리나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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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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