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외통궤적 2008. 11. 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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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6.040512 도서관

내 뿌리를 도서관에서 찾으리라는 믿음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에서 일요일마다 살다시피 하지만 아직 혈육의 끈은 찾지 못했고 다만 숱한 학생들과 탐구자들과 더불어 문턱을 넘나듦으로써 어깨를 맞대는 것도 집 떠난 후로 처음 있는 일이고 보니 이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든 야릇한 심경이다.

지식의 바다를 헤엄치는 순수한 무리인가.

아니면 심산유곡에서 신령의 삼 뿌리를 캐내려는 심마니의 효심인가.

어느듯 효심은 사라지고 지식에 목마른 무리로 물들어 헤엄치는 기분이다. 솜털구름 위를 걷는 듯, 무지개 여울을 건너는 듯, 사뿐함이다.

스치는 사람마다 지식의 열망은 하늘을 찌르는데, 나 홀로 발 들일 틈을 못 찾아서 서성이고 있으니 잠시의 뜬 마음은 허황한 들판에 날려 온 가랑잎이 되어서 이리 굴러 가보고 저리 비벼보지만 그들처럼 큰 그릇에 못다 채운 지식의 욕구를 채우려고 눈에 불을 켜는 무리와 견주어 서글프게 구를 뿐, 비길 데 없이 애닯다.

초조함은 아무에게도 비치지 않으니 이 역시 내 몫이고 내 호미자루 끝에서 캐어질 내 뿌리, 산삼의 뿌리인 것이니 아무도 모르게 내가 더듬어야 하고 내가 찾아야 할 몫인 것을, 남들보고 캐보라는 부탁의 말조차 할 수도, 그들을 다잡아 이끌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다.

내 평생 네 잎 ‘크로버’를 찾아본 적이 없다.

행운은 아직 먼 곳에 있고, 지금은 내 앞에 그 잎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마침내 그 잎은 말할 나위없고 뿌리마져 찾아 행운을 캐리라는 다짐으로 오늘도 도서 인출을 신청하지만 막막할 따름이다.

더듬다가 때가 되면 식당에 내려가서 점심이나 때우는 것이 고작이다.

사람마다 무아의 경지에서 훑고 뒤지는 틈에 끼이긴 했어도 나의 숨은 손등으로 쏟아지고, 숨죽은 손끝은 넘어가는 종이장조차 이길 수 없어서 제자리에 놓아 다시 보고, 그리고 소리 없이 넘어 갈 뿐이다.

어이해야 먼 과거를 끌어 올 수 있단 말인가!

전화 한 통이면 될 법한 일을 이토록 애태우면서 세월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지척에 둔 고향을 갈 수 없어서, 이렇게 엉덩이 못 박히도록 앉아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훑어도 내 뿌리는 없고, 아스라이 먼 그 옛날의 조상을 그리고만 있다.

그토록 중하게 여긴 족보를 복원하려는 내 열과 성이 어째서 물거품이 돼야하고 왜 돕는 이는 없단 말인가!

이곳에 누구하나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절망에 이른다.

일가의 모든 파의 족보를 그마다 깡그리 뒤지는 사이에 어느새 계보학의 입구에 들어서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세월은 가고, 나도 강남으로 가고, 국립도서관도 강남으로 가고, 함께 질긴 인연으로 강을 건너왔다.

난 여전히 강남 국립도서관의 높은 지붕을 올려보며 족보 속에 계시는 칠 대조 할아버지의 자리를 찾아 손때 묻은 책장을 넘긴다.

반죽 통에 집어넣어 휘저어 보고 싶은 남북의 현실이다.

힘 있게 줄기를 뻗은 나무의 뿌리를 더듬으며 내 영혼을 불을 사르리라.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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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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