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나들이

외통궤적 2008. 11. 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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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눈 부시다. 영동고속도로 위의 차량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차창으로 쏟아지는 들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옷깃을 흔든다. 바람에 묻어온 고향의 쑥 냄새가 내 콧구멍을 늘린다. 분명히 어릴 때 고향 들판에서 맡았던 그 쑥 냄새다. 이대로 끝없이 달려서 망향의 설움을 바람과 함께 날리고 싶다.



말년에 와서, 조상에 못다 한 도리를 뒤늦게 뉘우치시던 속초에 사시는 일가 어른은 그래도 철이 들어 남하하신 분이건만 나와 진배없이 어둡고 막막하시다. 일찍이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자라시면서 족보에 대한 관념이나 제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네하고 달랐던 어른은 나보다 더 절박하시다. 진작 관심을 가졌던들 이렇게 다급한 일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시는지도 모른다. 뒷자리에 앉아 말없이 눈을 감고 계신다. 몇 시간 뒤에 닥칠 우리 조상의 족보에 대하여 생각하시리라. 밝게 해명되리라는 기대와 또 한편으로 있을 절망을 함께 생각하실 것이다. 역시 과거로의 여행을 감은 눈으로 이루고 있는 것일까? 후회의 빛이 역력하시다.

속초에서 알아본 바로는 우리의 파는 ‘교리공파’일 것이란 상정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러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은 희비의 교차로를 향해서 가고 있다. 분명 ‘양경공파’거나 ‘교리공파’ 중의 한 파일 것임에 틀림은 없다. 도서관에서 찾아본 바에 의하면 ‘교리공파’의 선조도 우리 고향 땅에 모셔 계시고 ‘양공공파’의 선조도 우리 고장 ‘삿갓봉’에 모셔 계시니 어느 쪽이 우리의 선조인지는 지금 내가 가는 그곳의 족보 속에 나타나길 바라면서 달려가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예상한 대로 확실한 근거로 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일가 어른은 두 파 어느 한 곳으로든 뿌리를 잇대어 족보를 만들자고 하시지만 난 수긍할 수가 없다.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그대로 그 족보 책을 빌려서 좀 더 살피기로 하고 보자기 채로 들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밀림 속을 헤치는 나에게 한 가지 심증이 굳어졌다. 분명 우리 고장의 이름이 나오고 그곳에 묻혀 계신 선조의 이름이 우리의 선조라는 심증을 토대로 가승(家乘)을 만들고 거기에 모르는 선조의 함자를 비운 채로 보관하고서 자료가 나오는 대로 달아 넣기로 하고, 그다음은 그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할 것을 작정하고 같이 가시는 어른에게 의견을 말씀드렸으나 그 어른은 서(徐)가는 다 같으니 아무 데나 달아 놓자는 것이다. 난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집대로 할 참이다. 미진한 것은 여유 있는 잘못이지만 잘못 정하게 되면 그것은 고칠 수 없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선조께 씻을 수 없는 욕을 드리는 것 같아서 더욱 싫다. 들은 말로, 조상을 팔아먹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쪽에도 조상의 줄기를 갖다 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아버지께서 하신 것 같은 말씀이 떠오르는 환상을 보고 있다.

그날은 아버지께서는 어느 일가분과 조상의 시제를 지내시러 산소에 가시면서 어린 나에게 “우리의 파는 ‘양경공’파이니라” 하신 말씀이 귀에 들리고 있다. 이 환영(幻影)이 어린 내게 심어진 아버지의 모습과 말씀인지, 아니면 족보에 대한 집념으로 일관하는 나의 고집이 아버지께서 환상으로나마 현시(顯示)하시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나중에 실현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그제야 비로써 내 기억의 정확성을 믿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의 현시는 나를 지켜보시는 평상의 일부라고 치부하고 싶어 기쁘다.

돌아오는 길, 아무 말씀이 없는 일가 어른의 한숨에는 과거 기록의 유실을 한탄하는 절절한 회한이 서려 있어 나를 당황하게 했다.

뒷머리가 간지럽다. 내가 마땅히 기억했어야 하고 내가 챙겼어야 할 몫인 것을, 내 아무리 철없는 시절,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일일지라도 아버지가 하신 뼈있는 말씀을, 내 뿌리와 줄기를, 이제 잃어버린 그 뿌리를 찾아야 할 내 고통의 몫조차 남에게 지울 수는 없다.

모두가 나 혼자 지고 가야 할 짐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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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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