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걸음

외통궤적 2008. 11. 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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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0.040521 포천걸음

이번에는 인천 형님께서 일가소식을 듣고 청해오셨기에 경기도 포천의 어느 마을을 찾아 나섰다. 늘 그렇듯이 일요일 하루의 짬을 낸 것이니 넉넉지 않은 시간은 형님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직장을 갖고 있으니 일요일 하루의 빡빡한 시간에 일을 마쳐야 하기에 서둘러 다닐 수밖에 없어 마음조차 바쁘다. 옆자리에 앉은 형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흐뭇한 표정으로 기대에 찬 눈치다. 아직 형님은 족보에 관한 진행과정을 속속들이 모르고 속초 할아버지 벌되시는 집안어른과 함께 무엇인가 금방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계시나 실정과는 조금 못 미쳐 동떨어져 계시다.

우리 일가가 산다는 소문을 들은 형님께서는 그 마을 주소를 적은 쪽지만 들고 오셨다. 그 쪽지만 가지고 찾아 나선 우리의 나들이는 수월치 않았다. 마을 이름이 비슷한 곳이 두 곳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같은 면이 아니라 서로 반대방향에 있으니 물어 물어서 가는 길이 온 군을 다 헤매는 꼴이 되어 시간을 많이 허비하였지만 다행이 종가 집은 찾았다. 그 종가 집은 ‘교리공파’다. 당초부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나는 ‘양경공파’를 찾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래도 일가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고향의 어느 일가 집에라도 찾아든 것처럼 아늑하고 평온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여기서 무슨 실마리라도 얻지 않을까 해서 차츰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우리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되고 있음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절박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집 저 집을 돌면서 찾은 이 종가 집은 동네 한가운데 파묻힌 퍽 오래된, 꽤 큰 초가집이었다. 가슴에 닿는 쌀독이 세 개씩이나 마루에 놓여있고 다른 집들보다 푹 꺼져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고 세월을 이고 버텨온 듯, 두터운 이엉으로 보아 그렇다. 오랜 내력을 말하는 집이었다.

마루를 건너가서 네 귀가 문틀에 맞지 않아 들어 여닫고, 새까맣게 그을린 문을 잡고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서 책 궤 속에 깊이 들어있는 족보를 싫은 기색 없이 갖고 나오는 일가 분의 성의는 가히 우리일가의 선하심을 그대로 갖춘 분임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갖고 나온 족보는 내가 수없이 보아온 ‘교리공파’의 족보로서 내가 들고 간 사본과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켜켜이 해를 쌓은 초가지붕의 두께가 굼벵이를 뱉어낼 것 같은 두엄 내를 풍기고, 떨어진 빗물자리에는 씻긴 흙이 모래가 되어 점점이 나란하다. 모래조차 녹물이 배어있다. 퇴적된 지붕의 썩은 지푸라기를 배어 물든 모래, 성상을 이기고 고난을 견딘 일가의 내력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마당에 놓인 디딤돌이 사립문으로 이어지고 그 디딤돌마다 대대로 이어온 이 집 대주의 발자국이 겹으로 새겨져 있는 듯 보였다.

큰길까지 배웅 나온 일가 분은 나보다 삼 세(世)나 낮으니 어색하게, 어르신 올 가을에 시제 지낼 때 오시면 좋은 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당부와 함께 허리를 굽혔다.

나는 아직 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마치 내 어렸을 적 오두막 우리 집에 들렀다 온 것 같이 애절하고 허전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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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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