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외통궤적 2008. 11. 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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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한 것, 매정한 것, 그렇게도 모질게 내 곁을 떠났는가!

떠나도 그렇게 멀리,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물거품으로 되었단 말인가!

생각한다.

내 삶의 뿌리에 나를 잇는 아버지의 그 말씀을 그렇게 야속하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탯줄을 끊을 때 아픔이 있어서 어미를 알아보겠고 내 설 자리 내 있을 자리를 매기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어 나를 잇게 하겠거늘 이렇게 고통을 겪은 끝에 알아보게 하려고 무심히 흘렸단 말인가!

아픔보다 더한 절규 어린 사랑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그렇게 허공에 놓칠 수 있단 말인가!

핏속을 헤엄쳐서라도 알아야 하겠거늘 이렇게 까맣게 잊을 수 있겠는가!

잊음은 내가 그 자리에 설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 그렇다면 분명 지금쯤은 자석같이 끌리는 내 뿌리의 가닥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이제 기억은 동아줄처럼 굵게 내려 드리워서 되살아나련만 아직은 거미줄만큼도 잡히지 않으니 나와 조상을 동여야 할 끈은 언제 내 기억에서 살아올지!

언제 되살아나려는지, 아직은 감감하다.

이런 때,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난다면 나는 동아줄로 단단히 엮어 무쇠 덩이 속에 넣어서 봉하고 다시 단단히 묶어서 어디든지 떳떳하게 내놓으면서 나서리라!

이분이 우리 뿌리노라고. 그러나 아직도 난 그때의 생각을 명료하게 끄집어낼 수가 없다. 확연하게 장담할 수가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나의 기억, 나의 미욱함, 나의 아둔함에 진저리 친다.

단지 아직 철부지였던 나에게 족보의 가닥을 일러주시는 아버지의 의지를 난 잊을 수가 없다. 그 기억도 밤낮으로 몸부림치며 염원하는 나의 가엾은 몸부림을 보셨음인지 어렴풋이 생각나게 하셔서 애달프다.

내가 어렸으나 그 말씀을 꼭 붙잡을 수 있었음에도, 붙잡지 못하고 집안일에 등한하게 된 결과는 모름지기 아버지와 집안 어른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이 잘못됐다. 그래서 아직은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될 것이라는 나의 철없는 소싯적 만용이 부모를 버리고 방황의 길을 택한 나의 오만(傲慢)이 내 기억을 빼앗아 꾸짖는 것이리라.

바로 지금 보드랍게, 안개처럼 나를 감싸 촉촉이 적셔서 태질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여 아직은 기다리는데, 세월은 날 놓아두질 않는다. 난 꼭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돌아가신 분들을 뵐 수가 있다.

아버지는 문턱에 걸터앉아 신 들매 하시면서 나를 올려 보셨다. 그때 손에 힘주어 신 끈을 매셨다. 동시에 힘주어 이르신 그 말씀은 아직 내게 되돌아오지 않지만 어린 아들에게 대대로 이어온 끄나풀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난 먼 선조의 움막 거적문을 떠올린다. 그 속에서 수없이 잘리면서도 보이지 않게 이어졌을 탯줄들의 이음이 무한히 멀리, 아득한 시공을 넘어 그 한 끝머리에 내가, 오늘 여기 서 있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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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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