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진

외통궤적 2008. 12. 7. 09:18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9299.970301 친구 진

황량한 벌판 위에 급조된 가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좁은 골목길 위에 좌판을 놓고 그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물건을 잽싸게 흘겨보며 지나가는 지게꾼과 손수레꾼, 손님들 틈을 비집고 반백의 늙은이가 손가방을 놓칠세라 옆에 끼고 부지런히 걷는다. 부닥치는 어깨엔 아랑곳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간다. 가게 안에 들은 중늙은이는 주인아주머니와 잠시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드니 곧바로 가게 문을 열어 제치고 쏜살같이 빠져나가 한 무리 속을 뚫고 어디론가 살아진다.

파노라마다!

한세월을 오직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고 잇단 또 다른 세월을 처자식을 굶기지 않으려고 마냥 방황하다. 어렵사리 인연 맺은 신용협동조합 창립일원의 자리를 천직으로 여기고 곁눈질 없이 육십을 넘겨 칠십을 바라보는 이날까지 한결같았을 친구를 상상하며 어둠을 가르는 울산행 버스 뒷자리를 얻어 탄 살아있는 친구의 마음은 아득히 흐르는 별들 속에 빨려 든다. 상념의 터널에 빨려든다.

일상에 뒤쳐져 잠자든 옛날, 살아있는 친구의 초연한 모습, 지금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화석, 야위고 힘없는 장력,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는 양옆 턱 속의 어금니, 이런 모든 것들이 스쳐지나가며 보였다.

죽음이란 생각조차 못 했을 젊은 시절, 살아있는 친구에게 들려주었든 편지 한 토막 구절에서 지금 살아 있는 친구는 죽은 친구의 기구한 극적 삶을 더듬어본다. 꺼져버릴 자기촛불을 바람막이 못하고 꺼뜨렸을까. 살아있는 친구의 의식은 죽은 이의 영혼을 애타게 찾을 뿐,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은 상통되지 않는다.

눈을 감는다.

산 친구는 이제 죽은 친구를 향해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더 살았으면 무엇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산 친구는 제게 되 묻고 죽음과 삶의 다른 의미를 찾으려고, 죽은 이에서 산 자기를 발견하고 산 자기에게서 죽은 친구를 느끼는 묘한 동질의 핵을 음미한다.

영정을 대하는 산 친구의 가슴은 메어졌고 치솟는 설음을 주체할 길 없어 상주와의 대면도 하듯 말듯 영안실 마루턱에 걸터앉았다. 누가 보든 말든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어서다. 흔들리는 어깨와 훔치는 손수건이 연달아 반복되는 순환의 울분이었다. 시간이 얼마를 지나, 다시 상주와 미망인을 차례로 만나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갈림길까지를 조심스럽게 알아본다. 산 친구의 눈에는 여전히 줄줄이 눈물이 흘러 말문을 잇지 못하는데, 상주와 미망인은 오히려 담담하게 가라앉아 자초지종을 자상하게 들려준다.

더는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어디 가서 실컷 울고 싶다. 사색엔 먹구름이 드리우고 숨결은 바람같이 불고 맥박은 노도같이 일렁인다. 살아있는 사람의 뼈도 죽은 사람의 뼈마디와 다를 바 없이 토막 뼈이건만 단지 탄력이라는 산사람의 특권을 누려 훌쩍 나가 버리려다 일순, 번개가 친 후 비가 개듯,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다시 살아있는 친구로서 죽은 친구에 대하여, 어쩌면 가족이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에 대하여, 가족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제 말하려 한다.

‘내 말을 잘 듣고 실행 하십시오.’ 가는 친구의 고결한 뜻과 가느다란 삶을 담은 혼을 동질의 친구가 전하려한다. 가족은 알 수 없는 것, 이제 친구를 대신하여 전한다.

죽은 친구의 한이 서려있는 깨알같이 쓰여 있을 육필과 소품들을 하나같이 소중히 간직했다가 언젠가는 오게 될 그 날, 고향의 죽은 친구 형제에게, 형제조차 돌아가셨다면 조카에게 전하시오.’

유족은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로 돌아오는 살아있는 친구의 눈은 온통 부어서, 무상의 인생을 차창에서 더듬는다.

친구는 어느 대학병원의 실험용으로 기증됐고, 어쩌면 지금 그 유해가 알뜰하게 보존되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친구여! 영면하라! 남을 위하여 죽어서까지 모든 것을 바치는 그 뜻을 기리어 나는 이렇게 친구를 절규하여 부르노라! /외통-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  (1) 2008.12.21
고갯마루  (0) 2008.12.09
고마운 분  (1) 2008.11.06
기억  (0) 2008.11.06
잠입충동  (0) 2008.11.04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