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 잘라내고
죽음의 문턱이란
항암 치료를 한다.
그 문턱
여섯 번 드나들 때
병실에서의 일주일은
그래도 좋은 날.
내 집인데,
내 집에 돌아왔는데,
지옥의 문턱이
내 집일 순 없는데
병원은
아내를 집으로 보내니
야속하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안내의 고통을
병원은 안 보겠단다.
왜,
그들의 삶이 따로
먼 데는 아닐 테고
그냥,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짜여서
그들도 할 수 없겠지.
하다가
역심은
내 탓이려니 하여
접는다.
그래도 살려고
고통을 참아 받는
아내 삶의 애착이
가엽다.
아내가
빠진 머리카락 한 움큼
쥐고 앉아 센다.
한 올 옮겨 쥘 때는
내 애가 타고
두 올 옮겨 쥘 때
내 간이 마르고
세 올 옮겨 쥘 때는
내 심장이 멎는다.
아내가
머리 매만질 때
내 머리카락 서고
아내가
머리카락 없어 한숨 쉴 때
내 허파가 졸아붙었다.
아내가
구토할 때
내 창자가 뒤틀렸다.
아내가, 또
마루, 네 구석
방방이, 구석구석
헤맬 때
난 짐승이 되어
네발로 기었다.
아내가
제 머리 빗고
빠진 머리카락 한 줌
그 머리카락 세면
내 있기까지의
세월을 가늠하고
아내가
머리카락 던지면
나도
앞날을 던졌다.
삶이 고통이라 하지만
아직은 환희의 삶으로
승화할 수 없어
세상을 붙들고
억울함 토하는 때
나는
영혼을 사른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