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3

외통인생 2008. 12. 1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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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2.040804 생명 3

생명을 정의하지 못하면서 생명을 음미하는 것부터가 어설픈 발 디딤인 줄 알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한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온전히 나의 생명 활동의 일부라고 여겨서, 생명을 구가하는 무리가 생명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서, 편안히 생각해 본다.

소리 내어 찬미하고 글로 써 내리고 그림으로 그려내고 길길이 뛰며 춤추고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어 환호하는, 이런 짓으로 자기를 나타내는 인간 행위를 생명의 활동으로 본다면 이런 활동을 하지 않는-하는지 어떤지를 우리가 알 수 없는- 지극히 작은 효소 활성(活性)체라던가 하는 것을 이어내는, 자기 복제와 유전능력을 갖는다고 해서 우리는 이들을 생명으로 본다면, 그들도 생명을 구가하는 어떤 몸짓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아무리 콧대를 높이고 우쭐거려도 생명의 환희와 극치의 희열로 자기 복제와 유전능력을 갖추고 수행하는 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가 하는 생명으로서의 기본 활동을 그네들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포함한 우리가 찬미하는 생명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명제에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고뇌했지만 난 아직도 나를 모른다. 그저 인간완성의 긴 인류 여정에서 어느 한 점을 잇는 한 자리에 불과한 것을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렇다면 난 개체의 독립성을 잃고 마는 것인데 그 점은 나를 몹시 고독하게 하는 대목이고 내가 전무후무한 나라면 자기 증식과 대사, 자기 복제까지는 정서적 용인 범주에 들어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유전인자의 생성은 전무후무한 개체의 독립성과 배치되므로 이 점을 떨칠 수가 없어서 생명의 개념을 나의 개체에 한정시켜야 하는지 연속성의 유전적 일직선상에서 한 점으로 인식돼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개체의 독립성을 생명으로 친다고 하면 죽음의 절벽은 두텁고 높기만 하고, 달리 생명 유전인자가 세대의 이어감을 함께 생명의 범주에 넣고 보면 죽음은 어디까지나 허물 벗는 수준이고 나비와 알, 유충과 성충 번데기의 순환과 다름없으니 죽음은 새로운 탄생일 것이기에 즐거워야 마땅한데 우리는 그것을 슬픔으로 이해한다. 아니 못 견디는 아픔이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어온 나의 존재임을 생각하면 나 또한 먼 훗날까지 이어 나가게 할 내 몫을 함으로써 내 생명을 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하면 생명을, 온전한 생명의 삶을 산 것인지 스스로 의심스럽다.

뇌사가 인간의 생명을 다하는 죽음이라고 정한다면 생명의 기본인 자기 복제와 대사, 향상성과 그 유지 기능 효소 활성의 제어 조절 등등을 생명으로 한다는 데까지 미쳐서는 뇌사만으로 한 생의 마감은 살생인 셈이다.

인간의 유전적 기능을 생명 활동의 모두로 친다면 생식(生殖)의 한계까지만 삶이고 그 나머지는 생명의 소실(消失)점으로 향하는 죽은 삶으로 여길 때, 이 또한 못마땅한 귀결이다. 그래서 난 우리의 생명은 총체적 생명 활동의 지극히 작은 어느 조직 일부분이라도 생명의 기본 활동인 효소 활성의 직접적 제어나 조절이 가능한 한 생명이라고 하는데 수긍이 가고,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생체는 존엄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인간 존엄은 말할 것도 없고 생물로서의 명을 온전하게 살았다고 하겠다.

정체된 삶과 역동적 삶을 가릴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우리는 자주 살아있는 삶을 말하고 죽은 삶을 한탄한다. 그 기준은 흔히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고 인류 발전에 공헌하는 기여도로 측정하려 드는데 빗대어 말하면, 어릴 때 운동회 때 탑 쌓기를 해 본 경험을 말한다면, 제일 아래에 여럿이 둘러서서 어깨동무하고 그 위에 사람을 줄여서 올리고 또 그 위에 사람을 더 줄여서 올리고, 그렇게 해서 맨 위에 한사람이 올라가는 것이다. 이때 맨 위에 올라간 사람만이 빛을 보고 추앙을 받아야 한다면 모순이다. 또 그 탑이 맨 위에 올라 있는 사람만이 추앙될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살이도 각자가 사는 그 자체, 어떤 의미에서는 탑을 만들기 위한 열외 예비 학생도 함께 그 탐을 만들게 한 요소의 학생들이니 마땅히 추앙받아야 한다. 이러니 생명의 끝은 직접적 자기제어의 능력과 조절 능력의 완전 소멸일 때 비로써 다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살아 있는 동안에 생명을 노래하는 것, 그것만이 참삶을 산다고 여기면서 내 노래는 무엇인지 생각을 잇게 된다. 내 노래는 남의 노래의 파장에 출렁이고 채색되지 않은 그림의 여백에서 그림을 돋우는, 정(靜)과 공(空)의 노래랄까?

세상 사람들이여! 내 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내 빈 자국이 보이지 않는가! 내 한숨의 노래가 허공을 가르지 않는가!

제자리서 눈을 감아라! 그리고 귀를 열어라!/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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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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