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82.040804 생명 3
생명을 정의하지 못하면서 생명을 음미하는 것부터가 어설픈 발 디딤인 줄 알면서도 생각 할 수 있는 한 생각해보는 것 또한 온전히 나의 생명활동의 일부라고 여겨서, 생명을 구가하는 무리가 생명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서, 편안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소리 내어 찬미하고 글로 써 내리고 그림으로 그려내고 길길이 뛰며 춤추고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어 환호하는, 이런 짓으로 자기를 나타내는 인간행위를 생명의 활동으로 본다면 이런 활동을 하지 않는-하는지 어떤지를 우리가 알 수 없는- 지극히 작은 효소 활성(活性)체라던가 하는 것을 이어내는, 자기 복제와 유전능력을 갖는다고 해서 우리는 이들을 생명으로 본다면, 그들도 생명을 구가하는 어떤 몸짓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아무리 콧대를 높이고 우쭐거려도 생명의 환희와 극치의 희열로 자기복제와 유전 능력을 갖추고 수행하는 이들을 무시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가 하는 생명으로서의 기본 활동을 그네들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포함한 우리가 찬미하는 생명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명제에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고뇌했지만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그저 인간완성의 긴 인류여정에서 어느 한 점을 잇는 한 자리에 불과한 것을 어림짐작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개체의 독립성을 잃고 마는 것인데 그 점은 나를 몹시 고독하게 하는 대목이고 내가 전무후무한 나라면 자기증식과 대사, 자기복제까지는 정서적 용인범주에 들어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유전인자의 생성은 전무후무한 개체의 독립성과 배치되므로 이 점을 떨칠 수가 없어서 생명의 개념을 나의 개체에 한정시켜야 하는지 연속성의 유전적 일직선상에서 한 점으로 인식돼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개체의 독립성을 생명으로 친다고 하면 죽음의 절벽은 두텁고 높기만 하고, 달리 생명의 유전인자의 세대 이음을 함께 생명의 범주에 넣고 보면 죽음은 어디까지나 허물 벗는 수준이고 나비와 알 유충과 성충 번데기의 순환과 다름없으니 죽음은 새로운 탄생일 것이기에 즐거워야 마땅한데 우리는 그것을 슬픔으로 이해한다. 아니 못 견디는 아픔이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어온 나의 존재임을 생각하면 나 또한 먼 훗날까지 이어나가게 할 내 몫을 함으로써 내 생명을 다 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하면 생명을, 온전한 생명의 삶을 산 것인지 스스로 의심스럽다.
뇌사가 인간의 생명을 다하는 죽음이라고 정한다면 생명의 기본인 자기복제와 대사, 향상성과 그 유지 기능 효소 활성의 제어 조절 등등을 생명으로 한다는 데까지 미쳐서는 뇌사만으로 한 생의 마감은 살생인 셈이다. 인간의 유전적 기능을 생명활동의 모두로 친다면 생식(生殖)의 한계까지만 삶이고 그 나머지는 생명의 소실(消失)점으로 향하는 죽은 삶으로 여길 때, 이 또한 못마땅한 귀결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생명은 총체적 생명활동의 지극히 작은 어느 조직의 일부분이라도 생명의 기본활동인 효소 활성의 직접적 제어나 조절이 가능한 한 생명이라고 하는데 수긍이 가고,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생체는 존엄 돼야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인간존엄은 말 할 것도 없고 생물로서의 명을 온전하게 살았다고 하겠다.
정체된 삶과 역동적 삶을 가릴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우리는 자주 살아있는 삶을 말하고 죽은 삶을 한탄한다. 그 기준은 흔히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고 인류발전에 공헌하는 기여도로 측정하려드는데 빗대어 말하면, 어릴 때의 운동회 때 탑 쌓기를 해 본 경험을 말한다면, 제일아래에 여럿이 둘러서서 어깨동무를 하고 그 위에 사람을 줄여서 올리고 또 그 위에 사람을 더 줄여서 올리고 그렇게 해서 맨 위에 한사람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살때 맨 위에 올라간 사람만이 빛을 보고 추앙을 받아야 한다면 모순이다. 또 그 탑이 맨 위에 올라 있는 사람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살이도 각자가 사는 그 자체, 어떤 의미에서는 탑을 만들기 위한 열외 예비학생도 함께 그 탑을 만들도록한 한 요소의 학생들이니 마땅히 추앙 받아야 한다. 이러니 생명의 끝은 직접적 자기제어의 능력과 조절능력의 완전 소멸일 때 비로써 다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살아 있는 동안에 생명을 노래하는 것, 그것만이 참 삶을 산다고 여기면서 내 노래는 무엇인가고 생각을 잇게 된다. 내 노래는 남의 노래의 파장에 출렁이고 채색되지 않은 그림의 여백에서 그림을 돋우는, 정(靜)과 공(空)의 노래랄까?
세상 사람들이여! 내 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내 빈 자국이 보이지 않는가! 내 한숨의 노래가 허공을 가르지 않는가! 제자리서 눈을 감아라! 그리고 귀를 열어라!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