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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인생 2008. 12. 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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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이 없다. 툇마루대신 가로 붙여 놓은 시멘트 불럭 디딤돌을 딛고서서야 문을 열고 방에 들어 갈 수 있는, 그저 손쉽게 한 칸 만든 방이다. 어울리게, 방에 들어가는 창호지문의 문살박이가 목수의 솜씨를 말하듯 투박하다. 부엌살림이라야 소나무 무늬가 완연한 찬장이 고작인데 황토진흙 매김 위에 니스 칠이 흐르듯 반짝인다. 가로 걸친 송판위에 꽃무늬 그릇 몇 개만 사이좋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찬장문은 유리를 달아 나란히 내리서서 두 개의 젖꼭지 손잡이를 달고 있는가 하면 그 아래로 두개의 서랍이 가로이어 붙어서 앙증맞다. 이 찬장이 그나마 밥을 끓여 먹는 신접살림집인지를 알게 할 정도다. 헌데, 열린 방문이 우리 보금자리의 현관을 장식한 새 찬장을 가려버리면 방은 영락없는 두더지의 신방으로 되어버린다.

이런! 방문을 열고 보니, 전에 없던 쇠 덩어리가 방 한쪽에 덩그렇게 봉창을 가리고서 거만하게 서있다. 눈에 꽉 찬다. 햇빛이라고는 영원히 들지 않을 것 같은, 우리 신방에 이 괴물 같은 쇠 덩이가 갑자기 하나 들어와 있다.

내가 어렸을 때다. 우리 동네 우체국에 국장 의자 뒤에 무겁게 가라앉은 쇠 덩이에 붙어있던 외짝 눈에 내 눈이 끌렸던, 바로 그런 외짝 눈이 우리 방안의 커다란 쇠붙이 농에도 붙어 있다.

예사로 집을 비우는 우리에게 마땅한 농짝하나 없어서, 늘 횃대 보에 옷가지를 걸쳐놓던 우리 살림을 보다 못한 아내의 결단이 드러났나 보다. 우리 형편에 무슨 귀중품이 있기에 저렇게 다이얼이 붙어있는 캐비닛 옷장이 필요한지. 내심 과람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좁은 방에 저렇게 커다란 쇠 덩어리 농짝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우리 형편에 저런 신제품을 들여놓는 아내의 심사를 아직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가운 척은 했지만 내 마음은 얼마 가지 않아서 우울해진다.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내의 말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캐비닛은 남이 쓰던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반값에 이 쇠장을 살 수 있는 잇 점이 있고 우리형편에 쇠장을 마련하기는 아직 힘에 부치는 일이라서 그렇게 했다는 설명이지만 나는 서글프다. 그 발상이 서글프다. 그러나 내가 즉석에서 새것으로 바꾸어 사들일 수 없는 나를, 미래를 내다보아 내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나를 알기에 더욱 우울해진다. 참으로 창피한 노릇이다. 얼굴에 모닥불을 퍼부은 오늘이다. 그러나 절치부심, 내일을 위해서는 오늘을 견디어야한다.

이런 농, 쇠붙이 장은 그런대로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 요긴하게 썼다. 몽땅 털어 넣어 잠그고 짐꾼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그대로 안심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사 짐은 쇠장하나, 양은 함이랄까 상자라 할까 그런 것 하나, 찬장하나, 앉은뱅이 책상하나가 전부다. 이 이사 짐을 손수레에 싫고 시골동네의 여러 집을 옮겨 다녔다. 그 것 뿐인가. 이 쇠 농을 싣고 대구로 서울로, 서울에서도 산동네에서 바닥동네로, 바닥동네에서 아파트로, 수 없이 이사하면서 덕을 본 셈이다. 안에 들어있는 채로 움직이니까 달리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았다. 그런데 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요놈의 농이 헌것이란 점이다.

세월이 가는 동안에 아내의 안목이 나와 다른 점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내 마음도 서서히 삭아 농익게 되었다. 그러든 참에 이번에는 아파트에 이사 가면서 헌 자개농을 또 드려놓는다. 이사 가면 필요하다면서 까만 칠이 된 자개장을, 삼강오륜을 자게로 새겨 넣고 하늘과 땅과 물에 노니는 온갖 동물을 새겨 넣은 이 장은 공이 꽤나 들어 보이는 장이다. 우리가 있는 집값의 사분의 일이나 하는, 꽤 비싼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또 이해할 수 없다. 적은 돈을 들여서라도 새것을 사면 좋으련만 아내는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라도 헌것을 사는 이유를 난 모르겠다. 아내의 심사는 헌것과 새것의 구분이 없나보다. 아니면 여전히 돈을 아끼려고 헌것을 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비싼 것을 왜 사려고 하는지를 더욱 모르겠다. 또 딱히 헌것을 사서 그 헌것이 내 기분에 안 맞는 것도 헤아리지 않는 아내가 이상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꼼작 없이 내가 지고 만다. 이런 일은 우리 집에서 내 눈에 띄고서야 비로써 내가 알게 되니 언제나 결과의 확인뿐이다. 해서, 나는 내 심사만 정리하면 되는 것이기에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심사만은 세월이 가면서 차츰차츰 가라앉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이제 아내의 평생, 새것이란, 새장농이란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생각해본다. 새 것이란 무엇이고 헌 것이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새것은 남이 쓰지 않은 것이 새것이고 헌것은 남이 쓰던 것이 헌것이라고 한다면 남이 안 쓴 것이 과연 새것이냐? 쓴 것은 사람만의 기준으로 말하는 것인데 사람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가? 이런 쪽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사람 기준으로 새것을 본다면 헌것은 삶을 시작으로 해서 헌것이 되고 그 전 단계에서는, 나무나 쇠붙이는 그 전에 무엇인가에 의해 의존되고 쓰여 졌으며 융합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이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누어서, 나무를 생각해보자. 나무가 새것일 때는 생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살다가 죽어 자빠진, 헌것이 된 나무가 우리의 입장으로는 새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입장에서는 헌 나무고 나무가 생명을 잃고 죽은 것이다. 그야 말로 헌것이다. 사람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역시 언짢은 대목이다. 쇠붙이를 생각해보자. 쇠붙이 역시 각 단계에서 새것과 헌 것의 구분이 없다. 생각한다. 쇠붙이가 제련되기 전에는 원광석으로 있었을 것이다. 그 원광석은 헌것이냐 새것이냐. 헌 것도 되고 새것도 될 성싶다. 캐기 전에는 다른 광석과 함께 붙어있어 헌것이고 또한 동시에 그 것이 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캐기 전에는? 그것도 새것이 될 수 있고 또 헌 것이 될 수도 있다. 헌것이란 그 덩어리가 되기 전에는 다른 형태로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성 이전에는 그것이 또 헌 것일 수 있다. 결국 사물은 전후좌우 새것 헌것 앞뒤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헌것, 새것의 기준을 우리의 지금 이 시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통 털어서 생각하는 버릇이 요구됨을 깨닫는 순간이다. 모든 헌것은 새것이다. 모든 새것은 헌것이다. 넝마가 새 솜이 되고 새 끈이 되고 새 담요가 되는 것이다. 헌 집이 무너지고 새 땅을 만들고 새 시멘트는 산이 버린 헌 때에서 비롯됐다.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나는 헌것을 사들인 아내의 경지를 지금 알아차리는 중이다. 아내는 헌것과 새것의 개념을 달리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새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헌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어떤 매체에서 본 그 주부, 그는 애들 옷을 사지 않는다고 한다. 얼른 들으면 괴이 적은 성품의 소유자라고 생각될 법한데,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가 끄떡였다. 그분은 새 옷은 화학적 처리의 뒤마누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잔류약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애들이 입다가 물려주는 것은 그런 것들이 몇 번의 세탁 과정에서 탈락되고 바래저서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헌것이 새것이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분은 새것과 헌것의 기준을 딴 데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니스 칠이 흐르듯 반작이든 그 찬장은 기억에서 사라지면서 무한이 가벼운 심사의 한 끝에서 가물거리고, 아내의 마음씨가 담긴 헌것들은 무겁게 두텁게 내 마음을 싸서 아늑하게 한다. 부뚜막도 없이 놓였던 새 찬장과 어울리지 않게 놓였던 괴물 같은 철제 농과 얼마를 어떻게 써온 것인지 알 수없는 옻칠 내 나는 자개농이 우리의 삶의 시작이었다면 그동안에 하나씩 둘 씩 사 모아 놓은 골동품은 이제 우리식구이고 우리의 손때가 묻었는데, 오밀조밀 온 집안을 차지했는데, 이것들을 나는 어떻게 하고 새로운 세상, 곧 헌것을 놓아두고 새것으로 자리바꿈 할 것인가? 그 때가 언제일까? 자못 기다려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것으로 치장하며 사는데 그 실 그것들이 죄다 헌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바로 시공(時空)의 일 순(瞬) 한 점(點)에서 모든 것이 명멸(明滅)순환(循環)하는 것인가 싶어 숙연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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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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