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모든 게 아름답고 신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희망에 가득 찼다.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들리는 모두가 새로운 의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가능한 것으로 여겨 긍정으로 반응하고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여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젊음을 구가할 수 있었다.
한데, 어느새 이런 희망은 사라지고 긴 굴속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얘기하게 되지 않는가!? 내 끝이 다가옴에 사무쳐 오싹한다. 그 끝에서 희망을 찾지만, 아스라이 절벽이 다가오는 것 같다.
한 치의 여유라도 있으면 희망으로 여기고 싶지만, 절벽은 어김없이 코앞에 다가올 것이다. 닿으면 눈을 감고 귀를 막을 것 같다. 난 이때를 당겨 본다.
눈을 떠서, 귀를 더 열어서, 이성을 가다듬어서 본다. 그러면 죽음의 벽은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환하게 비쳐온다.
옳다. 죽음은 다른 나의 출발점이니 그렇다. 더 넓게 그려보면, 무한의 내가 유한의 물적 제약 속에서 태어나서 그 한계 안에서 살다가 이제 다시 내가 있는 애초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동안의 삶이 보람차고 긍지와 희망이 다시 어릴 때와 같이 꽉 차오른다.
이는 내 안에 있는 유일의 귀속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니 불멸의 이치를 깨달았음이라, 여겨서 한없는 기쁨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