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

외통인생 2008. 11. 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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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5.070412 인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어떤 서운한 말이라도 좋다. 다만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희망적인 말 한마디를 들으면 더없이 좋겠고, 얻어들을 수만 있으면 그 말이 어떻든지 의사의 말이니 견디고 참아 받을 수 있겠기에 그 한 마디가 듣고 싶다.

담당 의사는 아내나 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아니면 이해하니까 외면하는지 모르지만 좀처럼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환자를 매만지기만 하고 거쳐야하는 절차를 거칠 뿐, 도무지 입을 열지 않으니 애태우는 아내의 심경은 말할 나위 없고 명색이 남편이란 사람의 무능이 드러나는 현장이니 나도 죽을 맛이다.

아내야 환자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보호자에게는 속 시원하게 의사의 의견을 털어 놓아야 하련만 막무가내로 입 다물고 바삐 돌아가기만 한다. 아니다. 일부러 틈을 없애려는지도 모르겠다. 모양새가 그렇다. 환자나 가족의 심경을 배려하는 기색은 눈곱마치도 없다.

하긴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처럼 날뛴대서야 진료나 치료인들 제대로 될 리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야속한 것을 어쩌랴! 환자의 마음을 일일이 다독거리자면 의사가 먼저 지처서 병이 날 지경이 될 테지만 절박한 환자가 매달릴 곳은 의사밖에 없는데도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으면서도 병을 고친다는 진료의 현장, 이런 걸 당하는 환자와 지켜보는 가족은 허망하고 좌절한다.

늘 하는 대로 아내는 혈압검사와 체중을 재고, 채혈절차를 마치고서 지정된 장소로 가기 전에 대기하는 곳에서 자기 번호를 기다린다. 그 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내남없이 나오는 한숨소리를 티브이 소리에 숨기며 숨을 고르느라 어깨만 들썩이고, 전광판에 나오는 자기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남의 이름이고, 아내의 이름만이 내 이름인 것같이 보이는, 내 눈은 벌써 아내 외에는 세상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청맹과니가 되어 있던 것이다.

이름하여 ‘혈액종양내과!’ 그 이름이 괴상해서 궁금한데도 묻기에는 너무나 한가한 의문 그 자체다. 그냥 비슷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기죽어 있는 곳이 이곳이다. 마치 차에 가득이 실린 닭장 속 닭처럼, 보기에 민망한 곳이 이곳이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아내는 수술 후 정기 외래 검진 날을 받아서 진료 받아 온지 이태가 되었지만 정확하게 병상(病狀)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는 수술 후에 고작 외과의사의 한 번 상담이 고작이었었다. 그래서 오늘은 꼭 물어볼 요량으로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고 있다. 오늘은 꼭 무슨 말이든지 들어보고 싶다.

드디어 아내의 이름이 전광판에 올라왔다. 진료실 복도까지 진출(?)하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복도에도 또 다른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거기에도 환자들이 꽉 차 있다. 보호자도 끼어 있을 태지만 보이는 이 태반이 환자임이 분명하다. 여기에선 전자시스템으로는 환자와 의사의 신축적 시간 절약이 이루어질 수 없는지, 간호사가 환자의 이름을 불러서 빈 방으로 드려 보낸다. 방은 복도를 연해서 길게 늘어있지만 환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의사 한명이 서너 개의 방을 담당하는가 보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나오면 간호사는 그 빈방에 대기환자를 즉시 드려 보낸다.

아내 이름을 간호사가 불렀다. 금방 나온 환자의 방 열린 문 앞에 간호사가 서서 아내를 그 방으로 안내한다. 나도 늘 하던 대로 따라 들어가지만 역시 방은 비어있고 의사는 보이지 않는다. 방과 방 사이에 뚫어놓은 뒤쪽 통로를 통해서 의사는 이미 다른 방에 가버렸다. 감옥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쩌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오늘은 좀 기분이 상한다. 당연히 의사가 환자를 맞아야 하건만 의사는 없고, 환자와 보호자만 덩그러니 앉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형수가 순간순간을 이어가는, 그 꼴을 당하고 있으니 말 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낀다.

우리는 공장의 공정라인의 한 곳에 들어와 앉아있다. 공장의 벨트라인위에 있다. 다만 움직이지 않을 따름이다. 그 대신 의사가 벨트에 오라서서 두 방 세 방을 쉬지 않고 맴돌아 드나드는 것이다. 아니다. 환자도 돌아가고 의사도 돌아간다. 그러니 얼마나 빨리 짜여 지는가!

어릴 적에 베틀을 보았다. 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디는 그 속도에 맞추어서 치고 조이면서 짜여 지는 베, 그런 베 필을 늘 보아오면서 자랐다. 의사는 바디고 환자는 북에 잠긴 북 실이다.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북 실을 나르는 솜씨, 이는 간호사의 손길이다. 그 실(絲)은 환자이고 곧 아내이다. 실을 내리치는 바디는 의사다. 병원의 각종시설은 날실과 북 실을 엮어 짜 내리는 베틀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는 베틀위에서 베 짜는 이의 마음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으면 갈아 던져 버리는 것이다. 의사는 이방에서 저 방으로, 쉴 새 없이 들락거린다. 의사는 생명을 잃은 목재로 된 바디고 환자는 북 실이 되어서 복도에서 진료실 방으로 쉴 새 없이 채워진다. 모든 것이 쉼 없이, 빈틈없이 돌아가면서 짜여 진다. 곧 환자 어루만지기 공장이다. 그래서 장예식장으로 이어지는 베 필이 되어간다.

아내의 방에 의사가 들어왔다. 고작 눈인사다. 그리고 문진(問診)은 시간 낭비인지, 옆에 놓인 침대부터 처다 보면서 누우란다. 그리고 늘 하는 식대로, 그 순서대로, 배 한번 쓸어보고 '약은 잘 자시느냐' 의 그 한마가 전부다. 의사는 기계적으로 처방전에 매달린다. 의사의 눈길을 잡아야 이야기를 할 텐데, 의사의 눈은 언제나 내게서 비껴 멀리 떨어져있다. 마음먹고, 나가는 의사의 뒤통수에다 대고 뱉듯이 쏘아붙였다. '선생님! 어떻습니까?' 의사는 '더 지켜보아야합니다' 판에 박힌 대답을 하고 곧바로 옆방으로 사라진다. 말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말, '더 지켜 보아야합니다' 는 이 년 동안이나 들어왔다. 지겹다. 의사여! 그대들은 공장의 라인 지킴이인가요? 욕이 나올 것 같다. 하늘에다 대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입속으로 삼키려니 오장육부가 녹아내리고, 울분을 가라앉히느라 또 말뚝처럼 서있다.

다른 생각이 든다. 병원은 인술을 포장하는 포장 공장이고 아내는 인술을 포장하는 포장재에 지나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달리 병원이 베를 짜는데 의사는 바디가 되고 환자는 씨실이 되고 보호자는 날실이 되어서 사람 사람의 앞날에 보태 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꼬인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병원 진료길이다.

삶은 아내의 것인데, 그 삶을 병원에서 대신 살아준다? 삼켜버리고 마는 내 말을 누가 들어 담아줄 것이냐!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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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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