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중(成大中·1732~1809)이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말했다. "초목을 시들어 죽게 하는 것은 서리다. 시들어 죽게 하는 것은 거두어들이려는 것이다. 사물이 어찌 언제나 왕성할 수만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초목에만 서리가 있지 않고 사람에게도 있다. 전염병은 일반 백성에게 내리는 서리다. 옥사로 국문하는 것은 사대부의 서리다. 흉년은 나라 절반에 해당하는 서리이고, 전쟁은 온 나라에 내린 서리다. 사람에게 서리가 있음은 거두어들이려는 것일 뿐 아니라, 하늘이 경고하여 위엄을 보이는 것인데, 교만하고 방종한 자는 이를 재촉한다(草木之肅殺者, 霜也. 然肅殺所以收斂也. 物豈能長旺哉. 故非惟草木之有霜, 人亦有之. 癘疫編氓之霜也, 鞫獄搢紳之霜也, 凶荒半國之霜也, 兵燹擧國之霜也. 人之有霜, 匪惟收斂, 天以警威之也. 驕溢者, 速之)."
푸른 잎에 서리가 내려 단풍이 된다. 뻗쳐오르던 기운을 거두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나날이 꽃 시절이요 단풍철일 수는 없다. 인간에게 내리는 서리는 그간 너무 지나쳤으니 낮추고 돌아보라는 일종의 경고음이다. 하지만 교만하고 방종한 사람들은 이 소리를 무시한다. 여전히 오뉴월로 알고 설치다가 하루아침 된서리에 준비 없이 얼어 죽는다.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늦가을 유감(秋晩有感)'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서리 이슬 풀덤불에 내리더니만, 정자 언덕 나뭇잎 땅에 떨어지네. 기러기는 물가 추위 깜짝 놀라고, 벌레는 산창의 밤 조문하누나. 유인(幽人)은 소슬한 새벽 느낌에, 홀로 앉아 길게 탄식하노라. 젊은 시절 간대야 얼마나 되리, 세월의 빠름은 믿기 어렵네. 근심은 배움에 진전 없는 것, 성하고 쇠함은 불변의 이치. 힘써서 촌음조차 아껴 쓰면서, 자포자기하지는 말아야겠다(霜露塗草莽, 亭皐木葉下. 鴻驚水國寒, 蟲弔山窓夜. 幽人感蕭晨, 獨坐長歔欷. 少壯能幾何, 光陰疾難恃. 所憂學不進, 盛衰固恒理. 勉勉惜分陰, 毋爲自暴棄)." 선득한 추위에 깬 새벽잠이 다시 들지 않는다. 나는 너무 늦어버린 느낌이다. 공부에 아무 진전 없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래도 그는 다짐한다. 이제부터라도 더 시간을 아껴 쓰고,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