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때 총애하는 내시가 근친(覲親)하러 고향 집에 갔다. 지나는 고을마다 수령들이 그에게 후하게 대접하며 아첨했다. 고향 고을의 사또는 환관의 왕래에 사사로이 친교를 맺을 수 없다며 의례적 문안에 그쳤다. 환관이 앙심을 품고, 임금에게 그가 특별히 훌륭한 대접을 해주더라고 거짓으로 고했다. 임금이 그를 비루하게 여겨 이후 그의 벼슬길이 꽉 막혔다. 어느 날 경연 자리에서 임금이 그 수령이 내관에게 아첨한 일을 예로 들며 신하를 경계했다. 대신이 물러나 실상을 탐지해 사실대로 아뢰자 임금이 당장 내관의 목을 베게 했다. 윤기(尹愭, 1741~1826)의 '정상한화(井上閒話)'에 나온다.
내시는 충직한 신하를 사실과 정반대의 말로 참소해 해코지를 했다. 임금은 밝은 거울처럼 헤아려 간특함을 바로잡았다. 윤기가 덧붙였다. "아! 성대하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참소하는 간특함이 어떻게 먹혀들고, 사특한 좁은 길이 어떻게 열리겠는가? 바른 선비가 어찌 원통하게 꺾임[寃屈]을 탄식하고, 공론이 어찌 꽉 막힘[壅閼]을 근심하겠는가?(猗歟盛哉! 當此之時, 譖慝何由而售, 邪逕何由而開. 正士何歎於冤屈, 而公論何患於壅閼乎?)"
그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후세의 임금은 그렇지가 못해 겉으로는 거리낌 없이 말하라고 하고는 꺼리는 것에 저촉되면 성을 버럭 낸다. 밖으로는 받아들이는 체하면서 조금 뜸을 들였다가 내친다. 심하게는 사당(私黨)으로 의심해 지목하여 간을 떠본다. 크게는 죽이거나 내쫓고, 작게는 물리쳐서 벼슬에서 몰아낸다." 그 밑의 신하들은 어떤가? "한차례 당론이 갈라지자 세상에 공의(公議)가 없고 사람들은 저마다 속셈을 지녀, 이욕만 생각하고 의리는 모른다. 친소(親疏)에 따라 호오(好惡)를 갈라 피차간에 좋아하고 미워한다. 권귀(權貴)에게 아첨하려고 그 향배에 따라 부추기거나 억눌러, 기꺼이 사냥매나 사냥개가 된다. 저와 한 무리를 두호하려 멋대로 무함하여 꾸며 공을 세운 듯이 굴며, 교묘하게 귀신이나 도깨비 짓을 해댄다. 남몰래 사주를 받아 놓고, 겉으로는 나쁜 사람을 공격한다는 명분을 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