撫枕中宵坐(무침중소좌)
베개 베고 뒤척이다
밤중에 일어나 앉자
挑燈有所思(도등유소사)
등불 심지 돋우고서
생각에 잠겨든다.
林疏風過易(임소풍과이)
숲속이 휑해져
바람은 쉽게 지나가도
天迥雁來遲(천형안래지)
하늘이 멀어져
기러기는 천천히 날아온다.
雨意偏侵夢(우의편침몽)
비가 오려는지
꿈속까지 들이치는데
秋光欲染詩(추광욕염시)
가을빛은 시마저도
물들게 하려나 보다.
昭陽宮漏歇(소양궁루헐)
소양궁에 물시계가
그칠 무렵이면
明月下西池(명월하서지)
밝은 달은 서쪽 연못에 떨어지겠지.
선조 때의 시인 학천(鶴泉) 성여학(成汝學·1557~?)이 어느 가을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사연을 시로 읊었다. 잠을 자려고 베개에 머리를 뉘었으나 잠이 달아나서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다시 등불을 켰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밤은 깊어져 간다. 밖에서는 낙엽이 떨어져 휑한 숲으로 바람이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밀려든다. 기러기가 날아올 때이지만 가을 하늘이 높아져서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지 비가 내리는지 꿈속까지 서늘함에 젖어들고, 시마저도 가을빛에 물들어간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자기 글렀다. 소양궁(후비〈后妃〉가 거처하는 궁전)의 잠 못 드는 후궁처럼 서쪽 연못으로 달이 질 때까지 서늘함에 젖은 채 가을빛에 물든 시나 써야겠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