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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밥
열지 않는 문틈 사이
그냥 와서 피기까지
아무도 봄 변덕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욱한 둑 넘어 얽힌
그 사연만 들춰왔다
바깥날 눈부신데
움츠리는 여린 것들
오래 묻은 약속이
지지 않고 또 번지는가
괭이밥 귓불 만지며
붉어진 뜰 쓸어본다 /제만자
여린 새순들이 꽃보다 예쁘게 번진다. 꽃이 지나간 자리마다 아니 채 지기도 전부터 뒤질세라 밀고 나온 새잎들도 연두를 마구 문지르고 있다. 어느 광고처럼 '연두해요~'라고 도처에서 새것들이 외치는 것만 같다.
괭이밥도 요기조기 잎을 내밀고 제 길을 내는 중이다. 조만간 노란 꽃을 재잘재잘 피워낼 것이다. 누군가의 '열지 않는 문틈 사이'도 지나치나 본 듯 '그냥 와서' 피워주기도 하겠다. '봄 변덕'이 올봄처럼 심할까만 나직한 괭이밥은 개의치 않고 제 발밑부터 착실히 넓혀 가리라.
밤이면 오소소 오므라드는 세 개의 작은 잎. '자욱한 둑 넘얽힌 사연만 들춰'와서일까. '바깥날은 눈부신데 '움츠리는 여린 것들'에 마음 쓰이는 이는 자신도 잘 움츠리기 때문일지 모른다. '괭이밥 귓불'이나 가만가만 만지며 홀로 붉었는지 뜰을 쓸어보는 바람 끝도 훈훈한 봄하구다. //정수자 시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