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를 벽에 걸다
문득
벽이 말하기 시작한다
머드나무도 수초들도
덩달아 노래를 시작하고
물오리들도 시나브로 헤엄치기 시작한다
벽에 거는 일이 중요하다
허공에 파란 연기가
날아가면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지나가던 강아지가 그걸 보고
컹컹 짖어대기 시작한다
짓는 소리에 잠을 깬 화가가
다시 붓질을 시작한다
가만히 있던 사물들이 깨어나
호수에 물끄러미 얼굴을 비춘다
그제야 슬며시 태양이 실눈을 뜨고
물갈퀴 질 지치던 호사비 오리 원앙이가
서서히 깃을 펴기 시작한다
한쪽 벽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액자가 갑자기 떨어진다
호수가 와르르 엎어지자
수초들도 버드나무도 태양도
몽땅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림판 아래 붙어 있던
서명만 홀로 남아
무너진 벽을,
망연자실 울고 있다
화가가 잠자코 다시 시작 한다
울지 마라!
곁을 지키는 붓 자루가 있으니
/나병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