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속의 바다
사천 한여름의 바닷가
세 살 난 손자가
누군가 버린 소라 껍질 속에
바닷물을 담고 있다
뒤뚱뒤뚱 바다까지 걸어가선
조그만 장난감 그릇에 물을 떠서
소라 껍질에 조심스레 붓는다
걸어오는 동안
모래사장 위에 물을 거의 흘리지만
열심히 오고 가고 하다 보니
빈 소라는 바닷물로 채워진다
손자가 만든 소라 속의 바다
손자는 그의 바다를 천진스레 들여다보고
바다는 꿈의 세계를 손자에게 펼치고 있다
이제 손자의 바다는 소라 속에 있다
나의 바다는 어디에 있는가
너무 큰 바다를 가슴에 안으려다
삶의 황혼녘에 다다를 때까지
한 움큼의 바다조차 갖지 못한 나를
쓸쓸히 돌이켜 본다
/박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