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내 입을 없앤다
봄날에 핀 꽃도
화려한 입을 없애기 위해 낙화하고
낙산사 동종도 산불에 불타면서 입을 없앤 뒤
동해에 더 맑은 새벽 종소리를 울린다
거짓의 혀를 감싸고 도는 내 입을
설악산 관음폭포에 가서 잘라 내어
폭포에 힘껏 내 던진다
설악산 산정 높이 파 묻는다
이제 나는 내 입의 무덤 앞에서
구멍 없는 피리로 피리를 부는 것처럼
줄 없는 거문고로 거문고를 켜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낮은 곳에 엎드려
입맞춤 한번 해 본 적 없을지라도
낮은 곳이 높은 곳이라고
눈물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