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은 언제나
적막 꼭대기에 세운다
돌층계마다 고요가
한 계단씩 높아진다
언덕 위엔 새 발자국만 한
집 한 채 얹어 놓았다
투명한 사리 몇 알 낳으시고
부처님은 출타 중이시다 /박현수
적멸보궁은 부처의 불상 대신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으로 대개 산중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시인은 오대산 상원사나 설악산 봉정암 같은 적멸보궁을 찾아갔던 모양이다. 계단을 오르며 점점 높은 곳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하늘이 가까운 곳으로 향해 갔던 모양이다.
이 시를 읽으며 적막의 높이를 생각한다. 영혼의 맑음과 고독에도 높이가 있다. 수행의 그 끝에, 구도의 그 끝에 적멸보궁이 있다. 세속의 명리를 초탈한 곳, 다툼이 없는 곳, 선정에 들어 흔들림이 없는 곳, 번잡함을 떠난 곳에 적멸보궁이 있다. 고요하고 적적한 곳, 공한처(空閑處)에 적멸보궁이 있다. 법정 스님은 "한 생각이 새로이 집을 짓고 한 생각이 있던 집을 허무니, 저마다 마음속에 적멸보궁을 지니세요"라고 대중에게 이르셨다.// 문태준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