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이 산사일등(山寺一燈)을 아꼈다면 이상정(李象靖·1711~17
81)은 착슬독서(著膝讀書)를 강조했다. '저(著)'는 '착'으로 읽으면 딱 붙인다는 뜻이다. 착슬독서란 무릎을 방바닥에 딱 붙이고 엉덩이를 묵직하게 가라앉혀 읽는 독서를 말한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름지기 시간을 아껴 무릎을 딱 붙이고 글을 읽도록 해라. 의문이 나거든 선배에게 물어 완전히 이해하고 입에 붙도록 해서 가슴 속에 흐르게끔 해야 힘 얻을 곳이 있게 된다. 절대로 대충대충 지나치면서 책 읽었다는 이름만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편지에서도 "모름지기 마음을 누르고 뜻을 안정시켜 착슬독서 해야만 조금이라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저 유유히 날이나 보낸다면 읽어도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이재(李栽·1657~1730)는 과거에 낙방하고 상심해 있는 손행원(孫行遠)에게 부친 편지에서, "합격 소식이 끝내 적막하니 탄식할 만하다. 독서하지 않고 과거 급제의 이름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를 게 없다. 네 나이 이제 서른이니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거라. 12경사(經史)를 숙독해서 무릎을 딱 붙이고 배고픔을 참아(著膝忍飢) 익숙해질 때까지 읽어라"고 적었다.
조종경(趙宗敬·1495~1535)이 '우음(偶吟)'이란 시에서" 긴 세월 무릎 붙여 책상 절로 구멍 나니, 공부가 그제야 찰찰함을 깨닫겠네(著膝長年榻自穿, 工夫頓覺始涓涓)"라고 노래한 것도 착슬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시 중에 책상에 구멍이 났다는 말은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관영(管寧)이 요동 땅에 숨어 살며 50년간 나무 걸상 하나로 공부하자 나중에는 걸상에 무릎 닿는 부분이 깊숙이 패어 구멍이 났다는 고사다.
송나라 때 학자 양시(楊時)가 호전(胡銓)과 만나 "내가 이 팔꿈치를 책상에서 떼지 않은 것이 30년이오. 그런 뒤에야 도에 진전이 있더군요"라고 했다. 이것은 '팔꿈치가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肘不離案)'는 또 다른 고사다. 자고로 공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법이다. 사람이 노력은 않고 운 탓만 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