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鄭縣)에 사는 복자(卜子)가 아내에게 바지 한 벌을 새로 짓게 했다. "새 바지를 어찌 지을까요?" "지금 입고 있는 헌 바지와 꼭 같게 만들어 주구려." 그녀는 새 옷감을 일부러 헐게 만들어 낡은 바지로 만들어 주었다.
어른이 먼저 마셔야 젊은이가 따라서 마시는 것은 술자리의 예의다. 노나라 젊은이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셨다. 어른이 술을 들이켜다 말고 속이 불편했는지 토했다. 예의 바른 젊은이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따라 토했다. 송나라 젊은이도 배우기를 즐거워했다. 어른들이 술잔을 남김없이 비우는 것을 보고는 제 주량도 가늠하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가 쭉 뻗어 버렸다. 배우려는 열의는 가상했지만 배울 것을 못 배웠다.
'서경(書經)'에서 "묶고 또 맨다(紳之束之)" 라 한 대목을 읽고, 송나라 사람이 허리띠를 묶은 위에 하나를 덧대어 맸다. "여보 그게 웬 꼴이오?" "서경에 묶고 또 매라 한 말도 모른단 말이오? 나야 그대로 따를밖에."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열심히 한다는 게 일을 외려 그르친다.
정나라 사람이 신을 사러 장에 갔다. 그는 먼저 발 치수를 쟀다. 막상 장에 갈 때는 치수 적어둔 종이를 깜빡 잊고 집에 둔 채 나왔다. 그가 신발 장수에게 말했다. "여보게! 내가 발 치수 적어둔 종이를 깜빡 두고 왔네. 내 얼른 가서 가져옴세." 그가 바삐 집으로 돌아가 종이를 가지고 시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발 장수는 이미 가게 문을 닫은 뒤였다. 곁에서 보던 이가 물었다. "어째서 직접 신어보질 않았소?" "자로 잰 치수는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정인매리(鄭人買履), 즉 정나라 사람이 신발 사는 이야기다.
'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外儲說)에 나오는 일화들이다. 곧이곧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똑바로 하는 것이 긴요하다. 직접 신어 볼 생각은 없고 맨날 치수 적은 종이만 찾다 보면 백날 가도 신은 못 산다. 백성을 위한다는 선량들이 나랏일 하는 꼴이 맨날 이 모양이다. 맨발로 겨울나게 생겼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