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벽이 심한 재상이 있었다. 그가 새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었지만 기둥이나 대들보, 처마와 서까래에 작은 흠집만 있어도 헐고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 바람에 멀쩡한 집을 세 번이나 다시 지어야 했다. 벽과 창문은 최고급품으로 한결같이 지극한 묘를 다했다. 관과 수의도 극상품만을 직접 골라 미리 마련해두었다. 바느질까지 꼼꼼히 제 눈으로 살폈다. 모든 준비가 끝나 새집에 입주하기 직전 다른 일로 지방에 내려갔다가 공주의 여관방에서 갑자기 객사했다. 도백(道伯)으로 있던 친구가 호상(護喪)이 되어 필요한 물품을 서둘러 준비해 운구해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공들여 마련한 화려한 집에서 하루도 살아보지 못했다. 격식 갖춘 축문조차 없었다. 시신은 미리 갖추어둔 비단 수의 대신 허름한 베옷으로 서둘러 염습했다. 상례(喪禮)의 절차도 대충대충 진행되었다. 그는 마침내 객지에서 구한 초라한 널에 담겨 돌아왔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과는 하나같이 정반대로 되고 말았다. 심재(1722~1784)의 '송천필담(松泉筆譚)'에 나온다. 이야기 끝에 글쓴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물은 크게 성대한 것을 꺼리고(物忌太盛), 귀신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을 싫어한다(神厭至美)."
송대의 학자 정이(程頣)가 말했다."외물로 몸을 받드는 사람은 모든 일을 다 좋게 하려 하나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만은 도리어 좋게 하려 하지 않는다. 진실로 바깥 사물이 좋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이 이미 나쁘게 되는 줄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제 몸과 마음을 딴 데 놓아두고 외물봉신(外物奉身) 즉 바깥 사물에 온통 눈이 팔려 거기에 우선순위를 둔다. 일단 주체가 허물어지고 보니 외물은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다.
부귀에 취하고 권력에 맛이 들면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어느새 물 건너가고 만다. 뜻을 잃은 몸과 마음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허깨비 인생이다. 재물과 위세는 움켜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솔솔 빠져나간다. 살았을 때 고심해 갖춰둔 마련마저 제가 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엉뚱한 사람의 차지가 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