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여름밤 호수의 표면을 들여다보면
생을 다한 물고기떼 은빛 비늘들이
아픔을 다 감추지 못해 물살로 일렁인다
그 빛에 어쩌다 마음 적신 사람들은
상심도 거두며 먼데로 사라져가고
비늘은 여태 키워온 달빛을 지워간다
살아온 길 너무 멀어, 소매 끝이 다 닳아
지느러미 사이사이 아득하던 바람소리
그 밤에 맑게 씻으며 나 먼저 잠이 든다 /이경임
칠석 지나 처서 즈음이면 여름도 끝물. 뜨겁던 열기 식혀주던 호수에도 어느새 서늘한 가을빛이 끼친다. '생을 다한 물고기떼 은빛 비늘들'처럼 수면도 한층 늙어 보인다. 극심한 가뭄과 불볕을 건너온 호수는 녹조와의 싸움으로 더 지쳐 있다. 물의 위로를 받기 전에 우리가 먼저 호수를 위로해야 할 것만 같다.
그래도 '그 빛에 마음 적신 사람들'이 '상심'을 안고 떠날 때 호수는 또 스스로를 씻어 내리라. '비늘이 여태 키워온 달빛을' 지우는 소리도 귓등에 스치리라. '소매 끝이 다 닳아' 자주 '아득하던 바람소리'들 접으며 그렇게 가을로 간다. 대책 없이 하품이 밀려오는 여름의 끝자락, 잠 보약이라도 잘 채워야 할까. 그러다 보면 맑아진 밤의 민얼굴에서는 별들도 더 맑게 쏟아질지니!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