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스무 살만 되면 시작하리
신호만 울려라, 내달리는 선수처럼
소설보다 슬프고 절실한 사랑
요술 같은 그 날을 목 빼고 기다렸다
갈가마귀 깃털처럼 검푸르던 머리칼
바람에 함부로 헝클어지게 두고
꽃가지 입에 물고 파도치는 가슴
화살처럼 날아가리, 다짐하였다
기다리던 날들은 더디더디 오지만
풀물을 번지면서 천천히 타올라라
흐르는 세월이 나를 주저앉히고
불꽃은 삭아서 식은 재가 된단다
오기는 했었는가, 언제 지나갔는가
슬퍼도 좋은 사랑 있기나 한 것인가
스무 살은 천지간 아무 데도 없고
마파람에 종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 지금 다시 기다릴 수 있는지
번쩍번쩍 손을 들고 대답할 수 있을는지
스무 살에 대하여
스무 살 안개 같은 연애에 대하여
/이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