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溫柔)에게
교실 맨 앞에, 태극기와 나란히
‘온유(溫柔)’라는 급훈부터 진하게 내걸었다
이제 막 큰 바다로 돛을 올리며
나를 순전하게 타이르는 말
춥고 외로웠던 그 시절의 불빛
막다른 벼랑에서 짐승을 만났을 때
자다가도 쫓기어 몸부림칠 때
온유여, 그대 홀로 견딜 수 있는지
‘험산을 잘라다가 마다를 메우자’고
남들은 소리소리 기염을 토하는데
진실로 괜찮은지 의심도 하면서
알고 있는가,
겨울이 깊어 갈수록
닫힌 문들을 더 굳게 잠갔어도
얼어붙은 땅 은밀한 깊이
거기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밀물참 개펄의 도요새처럼
윤삼월 반짝이는 대추나무 새잎처럼
밝아 오는 창문 앞에 눈을 감고서
두 손바닥 오그려 햇살을 받는다
거기 담기는 노래의 곡조를
이제야 조금씩 알 것도 같은
해도 이미 흥얼흥얼 저무는 들판에서
온유여, 그대는 아직 무사하신가
/이향아